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딸 (문단 편집) == [[그리스도교]] == 많은 종파에서 자위를 금지하거나 최소한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데, 사실 비종교인의 가치관과는 매우 큰 차이가 나는 분야다. 이는 세속의 죄악 개념은 가해자-피해자라는 개념, 즉 행위를 통해서 선악을 판별하며, 피해자가 없다면 마약과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죄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는 '행위'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나쁜 마음'을 먹기만 하더라도 이미 죄한 것으로 간주한다. 여기서 종파에 따라 해석이 약간씩 달라지는데 가톨릭의 주장대로 '생명과 격리된 성'을 죄악이라 가정한다면, 이러한 마음을 먹는 자위행위는 죄에 해당한다. 반면 성경에서는 성관계가 반드시 생명 잉태와 연관되어야만 한다는 내용이 없고[*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 유다와 그의 과부된 며느리 다말의 일화를 보고 생명 잉태를 배제한 성관계는 죄악이라는 생각을 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는 당시 행해지던 형사취수제상에서 재산분배에 얽혀 일어났던 사건으로 돈 문제에 가깝다. [[형사취수]] 문서의 실존인물 항목에 적혀있는 '오난' 문단으로.], 성경에서 가능한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개신교의 특성상 개신교에서는 자위를 통해서는 임신이 안 되기 때문에 죄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다만 신약을 찾아보면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태 5,28)라는 예수의 언급이 있다. 이러한 언급을 기준으로 하면 그 누군가가 배우자가 아닐 때는 모두 간음으로 간주할 수 있다.[* 다만 이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그리스도교계에서 널리 회자되기는 한다. '우리는 새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새가 머리에 둥지를 틀지 않게 할 수는 있다.' [[마르틴 루터]]가 한 이야기로 알려져있으나 정확한 출처는 검색을 통해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사실 신의 관점에서 까다롭게 따지는 죄에 대한 문제를 제외한 인간 사이의 도덕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도 세속의 윤리학의 기본 관점과 크게 다른 것이 없다.'''[* 애초에 다르면 이상하다. 그리고 신학과 윤리학도 근대 이전에는 거의 한덩어리로 발전했기도 하고.] 특정한 행위의 발생을 놓고 그 행동의 결과와 그 행동의 의도를 심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윤리학]]의 관점이 아니라 [[법학]]의 관점이다. 윤리학의 일부 분야에서는 행위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대상으로 삼는다. 가령 칸트적 관점에서는 행위와 무관하게 의지의 선악을 따진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설령 성경적 입장에서 자위행위가 죄악이라 할지라도, '''자위행위 자체가 죄악이라기보다는 음욕을 품는 것을 죄악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음욕을 품는 것만이 죄악인 것이 아니라 타인을 증오하고 시기하며 조롱하려는 마음 모두가 똑같은 수준의 죄악이다.'''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로마서)을 보면 타락한 인간의 대죄들을 열거적으로 사실상 동어반복까지 하면서 무수히 나열하고 있다. '음욕'이 강간의 음욕인지, 간통의 음욕인지, 구체적으로 행위를 상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발기|성적 흥분상태에만 빠져도]] 음욕으로 보는 것인지는 전혀 나와 있지 않다. 결국 예수의 핵심 메시지를 통해서 해석해야 한다. 신학적으로 보면 자위행위가 죄악이라 할지라도 본질적인 죄악도 결코 아니며, 자위행위를 하는 청소년 크리스챤을 깔보고 [[교만]]한 태도를 품으며 날선 답변을 하는 인터넷상의 답변자들이 더 대죄를 저지른 것이다.[* [[교만]]이 그리스도교에서 얼마나 큰 죄악인지는 해당 문서로.] 물론 더 큰 죄악이 있다고 해서 작은 죄악은 당연히 용서받을 수 있는 것도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더 큰 죄악의 마음을 일상적으로 저지르면서 더 작은 죄악에 집착하는 것은 예수가 가장 증오했던 율법학자 바리새인들처럼 위선과 모순의 태도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어진다. 사실 이는 자위행위 뿐만 아니라 성도덕 전반에 그대로 적용된다. 복음주의적이며 정통적이라고 분류될 수 있는 성공회 신자이자 유명한 작가인 C.S 루이스의 저서에서도 교만한 도덕가가 사실은 창녀보다 더 지옥에 떨어질 죄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게다가 성경이 학술서가 아니므로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 분위기나 핵심 주제등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하는데, 진보적 관점에서는 결코 혼전순결 자체가 성경에서 내세우는 도덕률이라고 보지 않는다. 물론 해석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며 가톨릭 등에서는 성경 외에도 거룩한 전승, 교회의 전통을 강조하므로 또 좀 달라지게 된다.] 또한 [[혼전순결]]을 어기는 것을 일군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전쟁]], [[착취]]에 대해 그것만큼 적극 저항하지 않거나, [[교만]], [[증오]] 등의 죄악의 마음에는 그리 자유롭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면서] 집요하게 집착하는 것은 순결 이데올로기와 보수적인 감성 등 딱히 그리스도교가 아닌 요소의 영향이 크게 더해진 것이다.[* 심지어 모 그리스도교 심리학자는 혼전순결에 '''집요하게''' 집착하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취존]]을 넘어서 정신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진지하게 지적했는데, 심리학적 관점에서는 틀린 말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이자 가톨릭 신자인 영국의 테리 이글턴은 [[개독교|근본주의적 개신교]]에서 연 아버지들과 딸이 참석하는 혼전순결 서약 행사에 담긴 아버지와 딸들의 근친상간적 감성을 조롱했다. 사실 교회의 전통 등을 논외로 하고 성경만 보면 [[낙태]]도 명확히 죄악이라고 명시되지는 않았고[* 생명윤리적인 부분을 파고들어야 하며, 당연히 어디부터가 생명인지는 생명과학도 없던 성경 시대에 제대로 논해질 수는 없었다.물론 낙태가 죄악이 아니라는 근거 역시 없다.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기본 가치를 두고 여러가지 세속 학문의 도움을 받으며 진지하게 토론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사실 혼전순결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피임을 해도 만에 하나 임신되었을 경우 태아의 인권이 보장되기 힘들다는 근거로 대는 경우가 많은데, 임신의 위험만 피하는 걸 목적으로 하면 애무나 유사성행위를 하면 된다. 물론 가톨릭이나 보수적 개신교에서는 성에서 쾌락만 분리하는 것 자체를 위험하게 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반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진도를 어디까지 나간 것이 혼전순결 위반인지가 의문이 된다. 엄격하게 하자면 음욕을 품으면 전부 혼전순결 위반인데, 애인을 보면서 음욕을 안 품을 수 있는지, [[발기|몸에서 성적 반응]]이 안 나올 수 있는지, 설령 반응이 없다 해도 사랑과 성욕이 허위의식이나 낭만적 감성 등을 떨쳐내고 사실 그대로 따지자면 과연 완전히 분리된 것이기만 한지 등의 여러 의문이 속속들이 나오게 된다.], 피임의 죄악성은 더더욱 성경에 근거가 없다.[* 성경에 근거가 없기 때문에, 상당수의 개신교 교단과 성공회에서는 피임을 허용한다.] 결국 종교적 신념은 개인의 자유이자 취향[* 어감이 좀 가볍지만, 넓은 의미에서이다.]의 문제에 들어가며, 자신이 따르는 종파와 신학적 경향에[* 하나의 종파인 가톨릭만 하더라도, 자위에 대해서는 많은 신학적 견해가 있다. 죄라는 관점에서는 대부분 합의가 되어있지만, 이것이 고해성사가 필수인 대죄인지 혹은 참회기도로 용서가 되는 소죄인지는 논란이 있다. 소죄라는 견해를 간단히 말하자면, "너희들은 거짓말 할 때마다 고해를 보냐? 사람의 입은 거짓말하라고 만들어진 부위가 아니야. 그런데도 거짓말에 사용하는게 모두 대죄인 것은 아니잖아? 이게 성욕을 이상한데 쓰는 자위와 뭐가 달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엄연히 가톨릭의 교도권은 자위를 중죄로 보지만, 자위를 소죄로 보는 관점이 무슨 이단 사이비의 관점인 것은 아니다.] 따라 판단하면 된다. 하지만 너무 자기 주변의 신앙 공동체에서 권위적으로 강요하는 것만을 듣고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폭넓게 경청해보고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분명 자위행위는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죄악일 수 있고, 다른 여성을 상상하며 음욕을 품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본다면 자위행위도 죄악이 맞다. 그러나 그런 보수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자위행위보다 더 크고 피해야 할 죄악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 이왕이면 모두 다 피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태도이겠지만 적어도 큰 죄악은 대충 넘어가고 작은 죄악에만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은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특히 현실적으로 설령 자위행위가 죄악이라고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타고난 무성욕자, [[고자]], 성욕이 적은 사람, 초 근성가이라면 예외] 적어도 청소년기에는 정말 자위행위를 한번도 안해 본 경우는 매우 적을 것이며, 사실 한번 뿐만 아니라 여러번 해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때마다 고해성사나 회개를 했더라도 말이다. 특히 생물학적 특성상 성욕의 절정기가 일반적으로 빠르게 오는 남성 청소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해도 2차성징은 오히려 여성이 빨리 오므로 성적으로 빨리 눈떴을 경우에는 여성 청소년도 남성 청소년과 별 다를바가 없이 고민을 하게 된다. 게다가 교회나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하는 성적 금기가 훨씬 차별적으로 가혹하므로 더더욱 자기혐오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청소년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며 고아적으로 대하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자기혐오와 심지어 [[신경증]]이나 인격장애를 낳는 경우가 많다는 점,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질 생각이 있느냐는 점, 정작 자기도 청소년기에는 종종 했으면서 이제 나이를 더 먹어서 성욕이 줄고 결혼을 해서 성욕해소가 쉬워져서 그렇게 "나도 힘들었지만 이제 초탈했어"라고 말할 뿐이 아니냐는 점 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들의 개인적 성숙이나 신앙생활, 그리고 그리스도교인으로서의 올바른 방향은 아닐 것이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위선자]]는 성경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결코 가볍게 타성적으로 발언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