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산군 (문단 편집) == 역사 == [[백제]] 때 진잉을군(進仍乙郡)이었고 [[신라]] [[경덕왕]]의 지명 한화정책 때 진례군(進禮郡)으로 개명했다. 고려시대 [[5도 양계]] 체제에서는 진례, 진동 모두 전라도의 소속이었다. 1895년 6월 23일 [[23부제]]로 개편되면서 진산군(현 진산면, 추부면, 복수면 일대.)과 함께 공주부에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이듬해 13부제로 개편되면서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따라 [[전라북도]]에 편입되었다. 그러다 1914년 3월 1일 부로 진산군이 금산군에 통합되었다. 그후 박정희 정권시기인 1962년 12월 12일[[http://www.law.go.kr/lsInfoP.do?lsiSeq=2670#0000|서울특별시, 도, 군, 구의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법률(법률 제 1172호)]]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청남도로 소속이 바뀌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5.16 군사정변]]에 가담한 [[육군사관학교]] 8기 출신의 [[길재호]](1923~1985)가 주도하였다는 말이 있다.[* 한때는 충남 부여 출신인 [[김종필]]이 그 배후로 지목된 적이 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종필은 1987년 [[13대 대선]] 당시 전북을 방문했을 때 그때 자신은 [[4대 의혹 사건]] 등으로 안팎으로 견제를 당하고 있어서 그와 관련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입장이 아니었으며, 자신이 전북과 연고가 없는 것도 아닌데(외가가 [[군산시]]이었다.) 그런 일을 벌이겠느냐며 해명했다고 한다.][* 정작 이 일을 주도한 길재호는 [[평안북도]] [[영변군]] 출신이다. 즉 금산과 아무 연고도 없는 셈. 다만 이유가 없지 않아 있는데, 이북 출신인 그가 지역구로 출마하며 자신의 정치적 고향을 선택하는데 전국에서 길 씨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금산을 택했고 내친 김에 행정구역도 변경시켰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혈연]]이 만연한 사회였고, 공교롭게도 야당 거물이자 금산에서 자란 지역 유지였던 [[유진산]]의 지역구였다. 그러나 그가 슬그머니 지역구를 떠나 전국구로 선회하는 시점인 1963년 1월에 금산은 충남으로 편입된다. 이 과정에서 유진산과 길재호의 묵계설 시비가 일어났다.] 1977년 2월 박정희 정권의 행정수도 이전 백지계획 수립 당시, 천안, 청주, [[세종특별자치시|연기]], 공주, 논산, 보은, 옥천 등과 함께 이전 대상지로 검토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