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주법 (문단 편집) == [[러시아]]의 금주법 == [youtube(0Ts0RAo1bD0)] [youtube(ynYjVWxTvIM)] 1985년의 금주법을 풍자한 러시아 락 밴드 [[마이크 나우멘코|주파르크]]의 노래 'Трезвость — норма жизнь(금주를 생활화하자, 1987/88)'[* 참고로 저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이었던 마이크 나우멘코는 80년대 중반부터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했다.] > Как очищается политура, это всякий младенец знает. Почему-то в России никто не знает, отчего умер Пушкин, а как очищается политура — это всякий знает. (Венедикт Ерофеев, «Москва — Петушки») > ----- > 어떻게 하면 광택제에서 독을 빼낼 수 있는지는[* 원문은 "광택제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지는"] 하다못해 갓난아기들조차 알았다. 어째선지 이 러시아 땅에는 [[푸시킨]]이 어떻게 죽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광택제에서 독을 빼내는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베네딕트 에로페예프, "모스크바-페트루시키")[* 베네딕트 에로페예프(1938-1990)는 소련의 포스트모더니즘 시인이자 반체제 운동가로 풍자적 작품을 많이 발표하였다. 그의 작품 "모스크바-페트루시키"는 자서전의 성격을 띄고 있는 산문시로 1969년 가을에 저술을 시작하여 1973년 이스라엘에서 발표되었으며, 소련에서는 체제 말기인 1988년경에서야 발표되었다. 한국에서는 광택제나 로션 등으로 대표되는 "알코올 대용품"은 고르바초프의 금주령을 틈타 유행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부터 이런 대용품들은 민간에서 널리 소비되고 있었다.] 단순히 보드카를 위시한 주류의 생산 및 배급 관련해서는 이전에도 몇 차례 제재가 있었으며, 금주 캠페인은 소련 시기 내내 끊이지 않았다. 보통 러시아의 금주령이라고 하면 러시아 제국 말기~소련 초기에 있었던 금주령과 고르바초프 시절 금주령이 유명하다. 우선 1914년 여름 당시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는 군 내 음주로 인한 문제를 없애고자 러시아 전역에 보드카 등 주류의 생산 및 판매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단 교회용 포도주 및 상류층들이 이용하는 식당/클럽은 예외였다.]. 처음에는 동원령 기간에만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이동안 노동생산성은 약 15% 증가했으며, 이 외에도 예금이 증가하고 범죄 건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국가 두마의 농민 대표들이 차르에게 주류 판매를 영원히 금지해 달라고 청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허나 이 금주령으로 인해 미국처럼 음성적 주류 제조업자들이 활개를 쳤고, 이들 중 일부는 젊은 공산주의 혁명가들의 자금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볼셰비키들도 금주령을 철폐하지 않았고, 페트로그라트 혁명군사회의에서는 [[10월 혁명]] 직후인 1917년 11월 8일 "추후 지시가 있기 전까지 모든 주류 및 알코올성 음료의 생산을 금한다(впредь до особого распоряжения воспрещается производство алкоголя и всяких „алкогольных напитков“)"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는 1923년 8월 26일 최고인민회의 등에서 주류/알코올성 음료 생산 재개를 명할 때까지 계속된다[* 제정 러시아 말기처럼 소련에서도 이러한 제한 조치로 인해 밀주가 판을 치는 바람에 철폐했다는 말이 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선전물 중엔 [[https://knowyourmeme.com/memes/нет-no-poster|보드카를 권하자 'нет'(싫어)라고 말하며 거절하는 사람이 그려진 포스터]]가 있는데, 2000년대 후반에 재발굴되어 지금까지도 인터넷 밈으로 쓰이고 있다. 그 이후에도 1929년, 1958년, 1972년 세 차례의 대규모 금주 캠페인이 실시되었다. * 1929년의 금주 캠페인은 '노동자들의 요구'에 기반하였으며 당시 많은 술집들이 카페로 바뀌었고 많은 양조장들이 문을 닫았다. * 1958년의 금주 캠페인은 중앙위원회 지시에 기반하였으며 "음주에 맞선 싸움을 강화하고 도수가 센 알코올성 음료의 거래에 있어 질서를 확보(Об усилении борьбы с пьянством и о наведении порядка в торговле крепкими спиртными напитками)"하고자 식당을 제외한 기차역/공항의 공공 장소 및 아동 시설 등의 장소에서 보드카 판매를 금지하였다. * 1972년 금주령은 361호 명령 "음주 및 주류에 맞선 싸움에 대한 조치(О мерах по усилению борьбы против пьянства и алкоголизма)"에 기반하였으며[* 당시 슬로건은 "음주에 맞서 싸우자(Пьянству — бой)!"였다.] 50/56도 독주 생산 금지, 30도 이상 독주의 판매 시간 제한, 보드카 가격 인상, 알코올 중독자의 교정 시설 격리 등의 조치가 시행되었다[* 원래는 보드카 등 독주의 유통을 제한하려 하였으나 맥주 등 낮은 도수의 주류도 점차 제한 대상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제정 시대나 스탈린 시대 다 합쳐봐도 1인당 한 해 알코올 소비량이 5리터를 넘지 못했는데 1950년대 중반 이후로 사회분위기가 풀어지고 소득수준이 증가하면서 보드카 소비량도 같이 증가했고, 결국 1960년대 중반 이후로 평균수명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침체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1984년 1인 소비량이 그 두 배를 초과하는 10.5L를 찍는 등[*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수치이며 수치를 잡기 힘든 밀주 소비량까지 포함하면 1인당 14L까지 뛰어오른다고 한다. 이 정도면 소련의 성인 한 명이 연당 90-110병의 보드카를 비운다는 뜻인데, 실제로는 이 소비량 중 1/3만이 보드카고 나머지는 포도주, 맥주, 크바스, 밀주 등이라고 한다.] 제대로 된 효과는 보지 못했다. 오죽하면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소련의 국방비와 맞먹는 금액이 술값 지출에 쓰였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으며 소련중앙텔레비전과 프라우다같은 관영언론을 통해 계도갬페인을 펼쳤고, 여러차례 술값 인상도 단행했지만 어차피 남아도는것이 돈인지라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1970년대 당시 소련의 구매력은 매년 상승했던 데 반해서 상품생산량의 증가량은 구매력의 상승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에 남아도는것이 돈이었다.] 이에 1982년 가을 소련 정부에서는 금주 관련 위원회를 창설했고, 위원회에서는 '어차피 술 못 마시는 건 불가능하니' 단순히 알코올 섭취량을 줄이는 데서 그치지 말고 사람들의 음주 패턴 자체를 프랑스 등 타국과 유사하게 바꾸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보드카 등 독주에서 상대적으로 도수가 덜한 맥주/크바스/포도주 등으로 돌리고 술집을 카페로 바꾸는 등의 정책이 실시되었고 이는 그럭저럭 성공적이라 1980년대 초반 소련의 보드카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줄고 맥주/포도주의 소비량은 늘었다.[* 참고로 당시 소련 서기장이었던 안드로포프는 당시 소련 경기의 침체는 공산주의 정신의 쇠퇴와 만연한 알코올 중독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던 사람이었다.]. 2번째 금주법은 1985년 6월 1일 당시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서명 하에 시행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금주령까지는 아니고 단지 술의 구매[* 21세 미만 주류 구매 일절 금지, 주류 판매 시간을 '오후 2시부터 오후 7시까지'로 제한, 1인당 보드카 2병 초과 구매 불가, 술의 종류 축소 및 가격 대폭 인상]에 제한을 두었을 뿐이며 1972년의 사례처럼 전례가 없었던 일도 아니었지만, 안드로포프 시절과 달리 도수가 높든 낮든 주류 전체의 생산량이 줄어들었다는 차이가 있다. 법의 시행 목적은 [[알코올 의존증]] 문제로 인한 평균 수명 상승 적체 현상 해소[* 지금도 러시아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해 평균 수명이 현저하게 낮은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주류로 꼽힌다. 물론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거야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그런 것치고도 차이가 너무 크다.]와, 술을 만드는 데 쓰는 곡물을 줄여 소련의 고질적인 식량 문제도 일정 부분 해결하고, 의료 비용도 줄여 정부 예산을 아끼려고[* 러시아의 기후 특성상 소련의 전 인민을 먹여살릴 만큼의 곡물을 전부 재배할 수 없었다. 이에 아르헨티나,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상당수의 곡물을 수입해 와야 했으므로 술을 증류한다는 건 그만큼의 곡물을 허공에 날려버리는 것이며 또한 외화 낭비이기도 했다. (참고로 냉전 시기 소련이 수입한 곡물의 출처를 분석해 보면 미국이 타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거기에 소련은 무상 의료 제도를 시행했기에 알코올 중독이나 음주로 인한 성인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상당한 재정이 지출되었다.] 시행한 것이었다. 초기에는 효과가 없진 않았다. 합법적 주류 소비가 60%나 감소했는데, 소련의 남성 자살률이 감소했고, 평균 수명이 증가하고 범죄율이 감소하였다. 하지만 레닌 시절에 알코올 중독 문제를 줄이겠다고 민간에서의 보드카 제조를 금했다가 오히려 밀주가 성행하는 바람에 보드카 민간 제조 금지 법이 철폐되었듯, 고르바초프가 금주령을 시행한 뒤 '사마곤'(Самогон)[* 스스로(Сам) 증류하여(огонь: 불) 먹는 것]으로도 불리는 [[밀주]]가 성행하는 문제점 역시 발생하였고, 여기에다 [[레드 마피아]]가 사마곤을 공정화시켜 유통시키는 바람에 강력범죄는 폭증, 기대했던 예산 절감도 경찰 밀주 단속반 운영에 대부분을 까먹고 주세 감소로 인해서 있으나 마나한 효과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고로 남자들 사이에서 고르바초프의 인기가 엄청나게 떨어져버린 건 당연지사였다. 이때 설탕부족 현상이 갑자기 일어나기도 했다. [[크바스]]를 오래 묵히면 알코울 도수가 올라가서 진짜 술이 되는데 설탕을 많이 넣으면 넣을수록 알코울 도수가 올라가기 때문에 알코울 도수를 올릴려고 애주가들이 설탕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아예 증류를 해서 보드카를 만들려고 작정을 하기도 했고, 그래서 사탕생산에도 큰 차질이 빚어져 상점에서 사탕공급이 줄어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고르바초프도 버티지 못하고, 1987년에 금주령이 철회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옐친 시절에 공공 의료 보건 시스템의 붕괴와 함께, 옐친이 인기를 위해서 보드카를 의도적으로[* 마침 옐친도 애주가였다.] 값싸게 보급하는 정책을 펴면서 다시 평균 수명이 58세(남성 기준)까지 추락해버렸고[* 이는 1960년대보다도 더 낮아진 거다.], 이 여파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이어졌다. 러시아가 경제가 어느정도 나아지고 보드카의 소비량도 차차 줄어들어 2020년 현재 남성 평균수명은 68세로 러시아가 한창 막장을 달리던 시기보다는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러시아가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나 전반적인 소득수준에 비하면 월등히 낮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맥주]]나 [[크바스]] 정도는 허용하면 되지 않냐는 의문을 가지는 경우도 있는데 '''러시아는 2011년까지 맥주를 음료수로 분류한 나라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엄연한 주류인 크바스[* 알콜도수가 0.5~1%정도다. 하지만 한국 주세법으로도 주류가 아닌데 그 이유가 도수가 1%를 기준으로 주류기 때문이다.]도 그냥 애들 음료수 수준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http://cafe.daum.net/truepicture/Qt7/1188948|소련 시절 어떻게든 술을 구하려던 남자들의 발버둥]][* 단순히 (위에 서술된) 보드카 2병 + 맥주 무제한이 모자라서는 아니고, 당시 소련은 만성적인 공급 부족에 시달려 돈이 있어도 물품을 마음대로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사마곤 정도는 그냥 양반이고, 링크에 따르면 '''산업용 알코올, 향수, 로션, 광택제, 살충제, 접착제, 신발 크림''' 등 온갖 기상천외한 수단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물론 저런 위험한 대체품들을 마시고 실명하거나 아예 사망하는 경우도 흔했다. 이 중에서 특히 특기할 만한 것은 '''[[MiG-25]]기 엔진 냉각용 알코올'''인데, 소련 공군의 히트였다고 한다[* 대부분은 공군 내에서 유통되었지만 바깥 민간인들에게 유통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시 병사들과 정비사들은 해당 기체를 "날아다니는 슈퍼마켓(Летающий гастроном)"이라고, 해당 알코올은 "마산드라(Массандра)"[* 원래는 휴양지로 유명한 [[크림 반도]]의 지명 이름이자,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유명 고급 포도주 브랜드]라고 불렀다. 미군의 어뢰 주스[* Torpedo juice. 2차 세계대전 당시 [[어뢰 스캔들|미 해군 잠수함의 어뢰에 사용된 알코올 화합물을 기반으로 제조한 술]]을 말한다. 높으신 분들도 바보가 아니라 붉은색 염료를 섞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병사들은 배급받은 식빵을 말려 필터로 쓰거나, 부품을 빼돌려 만든 거름 장치로 어떻게든 걸러낸 뒤 배급되던 파인애플 주스에 섞어 마셨다고 한다. 여담으로 당시 미군에서는 주류 배급을 금지했으나 영국군은 범선시절부터 내려오는 전통으로 주류를 공급했기에 두 해군이 어쩌다 만나게 되면 미군은 코카콜라나 아이스크림을, 영국군은 술을 서로 맞교환했다고 한다.]와 달리 "마산드라"는 순수 에탄올이었으므로 안전 면에서나 수고 면에서나 더 우위였다고 한다. * 위의 내용은 러시아어 위키피디아 문서 "[[https://ru.wikipedia.org/wiki/%D0%90%D0%BD%D1%82%D0%B8%D0%B0%D0%BB%D0%BA%D0%BE%D0%B3%D0%BE%D0%BB%D1%8C%D0%BD%D1%8B%D0%B5_%D0%BA%D0%B0%D0%BC%D0%BF%D0%B0%D0%BD%D0%B8%D0%B8_%D0%B2_%D0%A1%D0%A1%D0%A1%D0%A0|소련의 금주 캠페인]]" 및 [[http://www.rus.or.kr/_common/boardSkin/bbs_down.asp?BID=cisfocus&BoardSeqNo=493&FilesSeqNo=248|칼럼(pdf 자동 다운)]] 문서에 의거 작성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