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천구 (문단 편집) === 산업 === 과거 성장기 제조업 중심 도시에서 이후 서비스업 중심의 도시로 완전히 탈바꿈한 서울 시내에서 그나마 제조업을 담당하고 있는 자치구다. 혹자는 서울 시내 제조업의 마지막 보루라고 표현하기도 할 정도. 일단 동네 발전 자체가 공업단지와 함께 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라면 이야기다. 이 지역 제조업의 시작은 당시 영등포구 구로동과 가리봉동에 [[한국]] 최초의 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시작되었다. 산업보국과 경제발전이라는 기치 아래 당시 [[박정희]] 정부는 수출산업을 장려하였고, 그 일환으로 [[1964년]]에 [[구로공단]][* 정식 명칭은 한국수출국가산업단지. 이 정식명칭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고, 다만 [[인천광역시|인천]] [[부평구]], [[서구(인천광역시)|서구]], [[미추홀구]]에 있는 한국국가수출산업단지 4, 5, 6단지와 구별을 위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를 병기한다.]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정부의 세제혜택과 지원에 힘입어 많은 기업들이 공장을 설립했고, 이후 가리봉동에 1967년 2공단, 1970년 3공단을 조성하면서 구로공단은 그 규모를 키워왔다. 1960년대~70년대 초기에는 면사, 봉제, 인쇄 등의 경공업, 저부가가치 산업군에 속한 기업과 공장들이 이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1960년대]]까지는 저부가가치 위주의 경공업 생산품 수출 위주의 정부정책이 펼쳐졌다. 바로 중공업 육성 위주의 정책으로 넘어가기엔 필요한 자본의 규모도 굉장히 크고, 선진기술을 가진 국가들이 이미 해당 분야를 선점한 상황에서 함부로 진입하기엔 위험성이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0년대 후반 [[오일쇼크]]와 중공업 과잉생산 문제로 인해서 한국 경제는 큰 불황을 겪게 된다.] 정부 정책이 중공업 육성으로 바뀐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중공업 중심의 산업단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물론 [[울산광역시|울산]]이나 [[여수시|여수]]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규모의 석유정제공장이 들어선 건 아니고 [[석유]]에서 정제된 원재료로 2차 가공을 하는 업체, 아니면 전자제품 조립공장이 주로 들어섰다.] 이후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운동권 대학생들의 노동참여, 노동자대투쟁 등을 거치면서 민주화의 성지로도 거듭났지만[* 실제 [[심상정]], [[노회찬]], [[김문수]], [[유시민]] 등 한때라도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민주화 운동 인사들은 이 지역을 거쳐가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변화를 눈 앞에 맞닥뜨리게 된다. 아무래도 제조업의 산업고도화는 기존의 노동력 투입을 자본으로 대체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를 위해선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킬 수 있는 대규모 공장 설립에 필요한 넓은 부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구로공단]]은 그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엔 너무나 좁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당장 1, 2단지 다 합쳐야 기아 소하리공장 크기가 겨우 나온다.] 이 때문에 여전히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과거 경공업위주의 저부가가치 공장들이 인건비를 견디지 못하고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정부와 [[서울특별시]]의 골칫거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파일:가산디지털단지 야경.jpg|width=450]] 이런 암울한 상황에 한줄기 빛이 된 것이 바로 1990년대 후반 [[IT]]붐이었다. [[국민의 정부]] 들어 정보통신산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삼고 집중 투자하면서 벤처붐이 일고 있었는데, 이 때 설립된 벤처기업들은 일차적으로 [[테헤란로]]를 위시한 [[서울/강남|강남]]권에 주로 터를 잡았다. 그러나 급속하게 오르는 임대료를 버티지 못한 벤처기업들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대체재로 부상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죽어가던 [[구로공단]] 일대였다. 당시 정부의 각종 지원과 저렴한 지가를 토대로 많은 아파트형 공장들이 공급되었는데 이런 공간이 벤처기업의 필요와 딱 맞아떨어진 것. 저렴한 임대료[* 이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건물주의 횡포가 훨씬 덜한 편인데, 디지털단지와 같은 산업단지에 공장을 지으면 정부로부터 각종 세제혜택과 지원을 받지만, 동시에 각종 권한을 산업단지공단이 가져가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임대료를 매길 수가 없다. 게다가 원체 부지가 넓어서 임대료가 올라간다 싶으면 이 임대료를 노리는 새로운 사업자가 다시 아파트형 공장을 지으면서 지속적으로 공급이 이뤄져 임대료 안정이 이뤄진다.]와 편리한 교통을 무기로 삼아 IT업체들이 속속들이 이 지역으로 모여들었고, 이러한 아파트형 공장 건축 외에 일부 대기업공장부지도 R&D센터나 기업본사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금성사(현 [[LG전자]]) 공장(주로 금성사 오디오 공장)이 위치했던 공장자리에는 MC사업본부[* 구 LG정보통신. 여기서 사이언을 처음 출시했는데, 대략 [[2000년]] 전후로 [[LG전자]]에 피합병되었다.]나 [[R&D]]센터가 들어 섰고, 과거 [[후지필름]] 공장은 현재 한국후지필름 본사로 사용 중이다. 또한 2단지 중심으로 과거 봉제/섬유 공장이 위치해 있던 곳은 현재 아울렛으로 많이 전환되어, 과거 까르뜨니트 공장은 [[마리오아울렛]]으로, 대우어패럴 공장은 [[현대백화점|현대아울렛]] 등으로 새롭게 건물이 올라갔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과거 간판도 바꿔달아 구로동에 위치한 1단지는 [[구로디지털단지]], 가산동(舊 가리봉동)에 위치한 2,3단지는 [[가산디지털단지]]가 되었다.[* 단, 정식 명칭은 여전히 [[한국수출국가산업단지]]이고 여기에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병기까지가 정식 명칭. 가산디지털단지니 하는 건 애칭에 가깝다. 참고로 면적으로 보면 대략 구로디지털단지가 20% 가산디지털단지가 80%정도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수출의다리에서 독산역 사이의 3단지 중남부를 중심으로 해서 과거 봉제, 인쇄[* [[교학사]], [[천재교육]]의 인쇄 공장도 이 곳에 있다.], 금형, 전자부품조립 공장들이 위치하고 있다.[* 실제 [[경향신문]]이나, [[세계일보]] 등이 여기에 인쇄소를 두고 있고, [[세계일보]]는 용산본사 철거 초기 윤전소가 있는 이지역으로 왔다가 몇 년 후 기자들의 반발로 도심으로 다시 이전했다.] 왜 이리 [[구로공단]]의 창립에 대해 길게 썼냐 하면 '''이 역사가 여전히 금천구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산디지털단지역의 경우에는 관내 지하철 역 중 역사가 크고 가산디지털단지라는 특성에 맞춰 아예 이런 구로공단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물도 세워놨다.] 일단 금천구 지역의 주택단지의 조성 목적이 구로공단 노동자의 배후 거주를 지원하기 위해서였으며[* 이는 바로 옆 [[광명시]](특히 철산동, 하안동)도 마찬가지다.], 주거지역에 사람들이 입주하니 자연스럽게 상권이나 각종 편의시설도 형성되면서 오늘날의 금천구의 구조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파일:금천구 가산동 G밸리 입주업체 현황.jpg|width=450]] 이러한 역사를 가진 덕에 여전히 많은 공장이 금천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조업 생산액도 상당한데, [[2013년]] 기준 제조업 생산액이 대략 7조 2,000억원 정도로 전체 [[서울특별시]] 생산액인 31조의 25%가까이 점유하고 있다.[* [[강원도]] 제조업 생산액이 11조원이고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의 제조업 생산액이 1조원 가량이다. 제조업 생산액 하위 15개 구의 총 합계와 비슷하다.] 참고로 2위는 4조 3,000 억의 [[성동구]][* 성수2가3동에 성수공단이 위치해서 각종 수제화 등이 만들어진다.], 3위는 의외로 4조원 규모의 [[강남구]]다.[* 청담동/역삼1, 2동의 생산액이 강남구 생산액의 대부분을 차지 했는데, 청담동은 유명 부띠끄가 많아 봉제 생산액이 잡혔고, 역삼1, 2동은 일부 전자제품 부품제조나 인쇄업이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가산동 지역에서 혼자서 '''6조원'''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고, 롯데알미늄공장 및 각종 작은 공장이 많은 밀집한 독산1동이 '''1조원''', 나머지 지역에서 2,000억을 생산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독산3,4동의 주택가 사이사이에 의외로 소규모 미싱공장, 봉제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과거 이 지역에 정착해서 [[구로공단]] 봉제공장으로 출근하시던 분들이 구조조정 이후 여기에 많이 자리잡아서 봉제공장으로 유명한 창신동 만큼이나 소규모 생산장이 많다. 다만 이러한 소규모 사업장은 주로 개인사업장으로 등록해서 그런지 제조업 생산액으로는 잡히지 않는다. (이건 창신동도 마찬가지다.) 아래는 관내 입주 기업 현황이다. 본사 소재 기업은 '''볼드체'''로 표시하며, 난립을 최대한 막기 위해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른 외부감사 의무 대상 기업들만 작성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