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나라 (문단 편집) === 역사 === 전설에 따르면 [[하나라|하 왕조]] 때부터 [[후작]]의 작위로 분봉을 받은 국가로 하 왕조의 시조인 [[우(하나라)|우]]의 후예가 다스리며 [[자작(작위)|자작]]의 [[작위]]로 분봉을 받은 국가였다. [[상나라|상 왕조]] 말기에 망했다가 주나라 무왕이 우의 후손 동루공을 얻어 봉했다. 국성은 사(姒)성이며 우의 후예라고 칭했다. 기는 소국이었기 때문에 사서에서의 기술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사기(역사책)|사기]]》에는 진기세가의 기술이 있지만 기에 대한 기술은 불과 270자이며 '기는 작고 약하여 기사를 쓰기에는 부족하다'고 다루어지고 있다. 본기에도 가끔씩 언급되기는 하지만 정말 분량이 적다. 이와 같이 국력도 영 충분하지 않은 소국이었기 때문에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 안에서 [[천도]]를 반복하였다. 기는 비록 소국이었지만 하 [[왕실]]의 후예이고 하례를 보존하고 있어 유가에서는 큰 의의가 있었다. [[공자]]도 하례를 배우기 위해서 기를 방문한 기록이 있다. 기의 공자 중 한 명이 [[제(춘추전국시대)|제나라]]를 섬겨 [[포]](鮑)의 땅을 받은 데에서 포씨를 자칭했고 그의 후손 중에서 현신으로서 유명한 [[포숙아]]를 배출하였다. 포숙아의 후손인 포씨는 대대로 [[제나라]]에서 벼슬을 살았다. 《[[춘추]]》에서는 기후(杞侯), 기자(杞子), 기백(杞伯) 등으로 불러 일관적이지 않은데, 전통적으로는 기나라가 원래 [[후작]]이나 [[오랑캐]]와 섞여 살았기 때문에 폄하돼 [[자작(작위)|자작]]이 됐다가 [[중원]]의 패자와 협력하면서 [[백작]]이 됐다고 한다. 애초에 기후(杞侯)가 또 다른 기나라인 기후(紀侯)를 잘못 적은 것으로 이 기나라는 후작인 적이 없었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 기원전 722년에 이(夷)나라를 정벌했고 기원전 719년에 거나라와 싸웠고, [[초(춘추전국시대)|초(楚)나라]]의 공격을 받아 약소국으로 전락하였으며 간공 원년 기원전 445년 초(楚)나라의 [[초혜왕|혜왕]]의 공격을 받아 [[멸망]]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