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독교 (문단 편집) ==== 죽음과 부활 ==== [[예수]]의 죽음 이후 충격과 허무에 빠진 그의 제자들은 예수 운동을 멈췄다. 그러나 충격도 잠시,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 체험'을 하였으며[* 부활 자체는 역사적으로 입증할 수 없지만, 예수의 제자들이 '부활'이라고 표현되는 무언가 특별한 충격적 사건을 겪었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렇기에 학계에서는 이를 '부활 체험'이라 표현한다. 이는 직접적인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이 아니면서도, 동시에 "제자들이 어떤 무언가를 체험하였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진심으로 믿었음"을 함의하는 표현이다.] 이는 선험하는 어떤 심리적인 기대와도 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의 제자들은 '믿음'을 통해서 현실을 이겨내고 재해석할 만큼의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십자가형 당시 스승을 버리고 도망칠 정도였으며, 복음서는 부활을 제자들조차 기대하지 않았다고 진술한다. 여기에 대해 '제자단에 대한 묘사는 부활을 부각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우스꽝스럽게 각색된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오히려 복음서의 텍스트는 제자단을 그래도 덜 한심하게 묘사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베드로와 동료들은 십자가형 당시 예루살렘에 머무른 게 아니라 아예 갈릴래아까지 도주했으며, 갈릴래아로 도주한 핵심 제자들과 예루살렘에 머문 여제자들이 별개의 루트로 부활 체험을 한 것이다.{{{-2 (참고: Gerhard Lohfink 《예수 마음 코칭 - 평신도를 위한 역사 비평학》''Jesus von Nazaret - Was er wollte, wer er war'' 제18장.)}}} 즉 역사적으로 제자단은 복음서 텍스트보다 더 소시민적이고 더 우스꽝스럽고 더 한심한 모습이었을 것이며, 이런 제자단의 '내면'이 아닌 '외부'에서 어떤 충격적인 체험이 온 것이다.] 다음은 불어권 주석학자들의 논문 모음집[* Odette Mainville · Daniel Marguerat 등 지음. 안영주 옮김.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88976353245|《부활》]]]의 머리말과, 거기에 실린 논문 발췌이다. >[[https://fr.wikipedia.org/wiki/Jacques_Schlosser|자크 슐로셔(Jacques Schlosser)]]는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증언하는 체험을 어떤 수준으로 분류하여 이해하는 것이 좋은지를 찾고 부활하신 분의 발현과 관련된 신약성경의 자료들을 연구한다. ... 그는 심리학, 역사학, 문학적 지시들을 모두 수렴하면서, 역사학자가 초세기 그리스도인의 체험을 보고하는 경우 이 지시들만으로 충분한가를 자문한다. 달리 말해, 이 체험은 주관적 체험에 속하는가? 또 만일 그렇다면, 파스카 신심은 하느님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보통 기준에 입각하여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파스카 신심을 말하기 위해, 종교사에서 반향을 찾을 수 있는 주변의 본보기들에서 표현을 끌어온 것인가? >슐로셔는 파스카 체험이 독특한 표시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이 체험을 보충적인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한다. 그는 예수의 죽음으로 인해 제자들에게 들이닥친 위기와 급변에 대한 역사적 상황을 살펴본다. 제자들에게 예수가 살아 계시다고 확신하게끔 하는 무엇인가가 일어났던 것일까? 슐로셔는 중요한 증언인 1코린 15,3-8을 개략적으로 살피면서 '오프테'{{{-2 (''ophthē'')}}} 동사 형태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이어서 그는 체험의 특성이 들어 있는 추가 지시들을 수집한다. >'''슐로셔는 연구를 마치면서 제자들이 눈으로 본 것이 심리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거나 또는 그것이 파스카 이전에 제자들이 기대했던 것들로 형성된 어떤 것일 뿐이라는 견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그는 그것을 "특별한 체험 ... 무엇인가 아무 이유 없이 뜻밖의 방식으로 외부에서 그들에게 들이닥친 것"이라고 말한다.''' >---- >-Odette Mainville · Daniel Marguerat 등 지음. 안영주 옮김.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barcode=9788976353245|《부활》]] 머리말 18-19쪽. >마르코는 체포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끝낸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2 (마르 14,50)}}}. 여기서 '그들'은 명백히 예수의 동료들을 말한다. 의인이 친구들에게 버림받는 것은 "고통받는 의인" 이야기에 나오는 전통 모티브라 하더라도, 이 간단한 진술을 십중팔구 당시에 일어났던 일과 일치한다. ... 광야의 예언자인 요한에게 일어났던 것과는 달리, 예수에게 맞선 소송은 하느님 백성의 고위성직자들이 추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하느님께서 예수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일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어쨌든 매우 다양한 파스카 이야기에는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 이야기들이 증언하는 것은 제자들이 어찌할 수 없이 보이는 것 앞에서 체념했으며, 부활이 완전히 "뜻밖의 사건"'''[* (논문내 주석)R. Penna, ''I ritratti originali di Gesù il Cristo. Inizi e sviluppi della cristologia neotestamentaria. I. Gli inizi'' (Studia sulla Bibblia e il suo ambiente), Milan, san Paolo, 1996. pp. 180-181 참조.]'''으로 소개된다는 것이다.''' ... '''"실패라는 견딜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는 환상 곧 집단적 강박관념의 산물로서 부활을 만드는 것은 텍스트들의 분명한 방향을 거스르는 일이다."'''[* (논문 내 주석) D. Marmuerat, "Cequ'ils n'ont pas dit de Pâques", ''MB'' 25 (marsavril 2000), pp. 31-35(p.32).] ... [[https://de.wikipedia.org/wiki/Ulrich_B._M%C3%BCller|뮐러]] 자신도 인정하듯이, 예수의 죽음은 제자들에게 진정한 충격이었고, 그들의 새 출발은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었기에, 이렇게 돌변한 강력한 동기를 추정케 한다. 뿐만 아니라 [[https://en.wikipedia.org/wiki/David_Strauss|슈트라우스]]는 이미 같은 말로 문제를 제기했다. '''제자들의 돌변은 "만일 그 사이에 특별히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곧 십자가에 못 박인 메시아가 다시 살아났다고 그들을 확신시켰을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논문 내 주석)R. Pesch, "La genèse de la foi en la résurrection de Jésus. Une nouvelle tentative", dans M. Nenzerath, A. Schmid et J. Guillêt èds. ''La Pâque du Christ, Mystère de salut. Mélanges F. X. Durrwell'' (Lectio Divina 112), Paris, Cerf, 1982, pp. 51-74(p.54)에서 인용.] >---- >-Jacques Schlosser. 〈환시, 무아경 그리고 부활하신 분의 발현〉 {{{-2 (위 책 215-217쪽)}}} >'''파스카 체험은 보통의 환시들과는 달리 선행된 기대나 신앙의 결실로 보이지 않는다.''' >---- >-같은 논문{{{-2 (위 책 236-237쪽)}}} 즉 '부활 체험'은 심리적인 기대를 위해서 고통을 이겨냈다거나, 예수의 죽음을 재해석한 결과라던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가 죽었을 때 제자들은 정말로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생각했고, 바로 그런 상황에서 제자들조차 하지 않았던 뜬금없고 충격적인 사건으로서의 '부활 체험'이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제자들은 곧이어 예수가 바로 예언되었던 '인자'라는 생각이 그들은 휘잡았다. '부활 체험'을 통해 과거를 다시 되짚으면서, 예수가 '메시아-인자'라는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이다. 빌헬름 부세트에 따르면, 루가 6:22과 요한 9:34는 예수 제자 공동체가 인자에 대한 신앙고백을 통해 유대교 회당과 구별했음을 보여주며, 여기서 제자들의 심판 이해(메시아-인자를 따르는 자들과 그를 거부하는 자들의 분리)가 드러난다. 또한, 그노시스파적 공동체에서 그리스도는 아담과 동일시되었으며, 여기에서 "태고의 사람의 반신적인 모습에 관한 다양한 사색들[* 위-클레멘스, ''Hom''. 3.20, ''Rek''. II, 22. ''Hom''. 17.4. 에피파니우스, ''Haer''. 30.3]이 뒤따랐다." (Bousset, 1913)[* Bousset, 《퀴리오스 크리스토스(상)》 pp. 67-75 (1913; Trans. 진규선)] 예수는 죽었으나 그의 제자들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며 기존 유다교와는 구별되는 공동체를 이뤘다. 공관복음서가 아직 작성되지 않았던 1세대 교회에서도 이미 예수가 '선재하는 하느님'이자 '사람이 되신 분'으로 고백되고 있었다. ||<-2> ^^6^^ὃς ἐν μορφῇ θεοῦ ὑπάρχων οὐχ ἁρπαγμὸν ἡγήσατο τὸ εἶναι ἴσα θεῷ, ^^7^^ἀλλ’ ἑαυτὸν ἐκένωσεν μορφὴν δούλου λαβών, ἐν ὁμοιώματι ἀνθρώπων γενόμενος· καὶ σχήματι εὑρεθεὶς ὡς ἄνθρωπος ^^8^^ἐταπείνωσεν ἑαυτὸν γενόμενος ὑπήκοος μέχρι θανάτου, θανάτου δὲ σταυροῦ. ^^9^^διὸ καὶ ὁ θεὸς αὐτὸν ὑπερύψωσεν καὶ ἐχαρίσατο αὐτῷ τὸ ὄνομα τὸ ὑπὲρ πᾶν ὄνομα, ^^10^^ἵνα ἐν τῷ ὀνόματι Ἰησοῦ πᾶν γόνυ κάμψῃ ἐπουρανίων καὶ ἐπιγείων καὶ καταχθονίων ^^11^^καὶ πᾶσα γλῶσσα ἐξομολογήσηται ὅτι κύριος Ἰησοῦς Χριστὸς εἰς δόξαν θεοῦ πατρός. || ||{{{[}}}가톨릭 새번역{{{]}}} ^^6^^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개신교 새번역{{{]}}} ^^6^^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9^^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10^^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11^^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2> 필립비서 2장 13절-53장 12절[* 필립비서는 역사비평적으로 AD 55년쯤에 작성된 바울로 친서로 여겨진다.] || 물론 이는 후대의 세계 공의회들처럼 헬라스 철학의 용어를 사용한 삼위일체론 정의는 아니다. 그러나 초기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어떤 식으로든 하느님의 위치로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위의 필립비서 2장의 그리스도 찬가에서도, '하느님의 모습을 지녔으나 사람의 모습을 취한' 예수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선포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는 유다인들이 피조물에게는 결코 쓰지도 않았고, 써서도 안되는 표현이었다. 또한 이 찬가는 바울로가 창작한 것도 아니며, 전해 받은 찬가를 바울로가 인용한 것이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유다계 그리스도교에 기원을 둔 전례적 기법의 운율을 가진 찬가이다. ... 찬가의 어휘는 바오로의 것이 아니다. 특히 예수의 하강에서 상승으로 이어지는 사고의 움직임은 "하강했다가 승천하여 하느님의 오른편에 높여진"{{{-2 (사도 2,33; 5,31)}}} 예수에 대한 유다계 그리스도인의 도식에 근거하고 있다. >---- >-샤를르 페로{{{-2 ''Charles Perrot''}}} 씀,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 주석학적 그리스도론》{{{-2 ''Jésus, Christ et Seigneur des premiers chrétiens''}}}, 백운철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1, 311-312쪽 공관 복음서 전에 작성된 바울로 친서인 고린토 1서에서도 예수에게 예사롭지 않은 고백을 한다. ||<-2> ἀλλ’ ἡμῖν '''___εἷς θεὸς ὁ πατὴρ___''' ἐξ οὗ τὰ πάντα καὶ ἡμεῖς εἰς αὐτόν, καὶ '''___εἷς κύριος Ἰησοῦς Χριστὸς___''' δι’ οὗ τὰ πάντα καὶ ἡμεῖς δι’ αὐτοῦ.[* all hēmīn '''___heis theos ho patēr___''' ex hou ta panta kai hēmeis eis auton,[br]kai '''___heis kyrios Iēsous Christos___''' di hou ta panta kai hēmeis di autou.] || ||{{{[}}}가톨릭 새번역{{{]}}} 우리에게는 '''___하느님 아버지 한 분(heis)이 계실 뿐입니다.___'''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___주님(kyrios)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heis)이 계실 뿐입니다.___'''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개신교 새번역{{{]}}} 그러나 우리에게는 '''___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한 분(heis)이 계실 뿐입니다.___''' 만물은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___한 분(heis) 주님(kyrios)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___'''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습니다.|| ||<-2> 고린토 1서 8장 6절 || 물론 주님(Kyrios)이라는 말 자체는 그냥 높은 사람에게도 쓸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유일한 주님'이라는 표현은 1세기 유다인들이 하느님 외에게는 쓰지도 않고, 써서도 안되는 표현이었다, "주님은 X 한 분이 계실 뿐"이라는 말에서 X에 들어갈 말이 뭐냐고 물으면, AD 1세기 유다인들은 당연히 '하느님'이라 답변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1세대 교회가 예수를 유다인 나름의 표현 방식을 통해 하느님의 위치로 설명한 것은 분명하다.'''[* 그 외에, 글의 구성에서 보더라도 의도적으로 '한 분 하느님'과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대응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견 사소해보일지라도 고린토 1서 8장 6절이 예수를 "유일한 주님(heis kyrios)"으로 표현하는 것도 눈여겨봐야한다. >사소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성서에서 희랍어 heis(유일한)나 monos(홀로)는 하느님께 주로 부여되는 표현이다.{{{-2 (마태 23,8~9; 로마 3,30; 요한 8,41)}}}. "들어라 이스라엘" 기도에서 고백하듯 하느님은 유일하시다. 한편 1코린 8,6에서 "유일한"이라는 수식어는 하느님과 주님에게 공히 적용된다. 더욱이 이 구절은 어떤 다른 신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유일하신 분{{{-2 (4절)}}}만이 존재한다는 선언 다음에 나타난다. >---- >-샤를르 페로{{{-2 ''Charles Perrot''}}} 씀,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 주석학적 그리스도론》{{{-2 ''Jésus, Christ et Seigneur des premiers chrétiens''}}}, 백운철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1, 331쪽 이런 표현들은 "1우시아{{{-2 (실체)}}} 3휘포스타시스{{{-2 (위격)}}}의 하느님", "1휘포스타시스{{{-2 (위격)}}} 2퓌시스{{{-2 (본성)}}}의 그리스도"라는 이후 교부 신학의 철학적 설명은 아니지만, 1세기 유다인이 하느님에게만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 이미 1세대 유다계 교회에서 예수에게 적용된 것이다.[* 상기한 성경 인용들은 의도적으로 헬레니즘적 텍스트들과 요한 복음서를 배제하고 발췌한 것이다.] 이들 1세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하느님의 위치로 고백한 것은 "유다 표징세계의 근본 원칙에 모순되지 않았다. 오히려 거기서 귀결되는 필연적인 '확장'이자 '완결'이었다."[* Gerd Theißen, 《Die Religion der ersten Christen. Eine Theorie des Urchristentums》, Gütersloh ^^4^^2008, 73쪽.] 하느님의 오른쪽에 좌정한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고백한 이들은 '''"이방인들이 아니었다. 유다인들이었다. 이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유다이즘의 유일신주의를 저버린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완성시킨다는 의식을 가졌다."'''[* Theißen, 같은 책, 같은 쪽] 물론 다음과 같은 질문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1세대 그리스도인의 증언이라 하지만 모두 바울로의 저작 아닌가? 지나치게 바울로의 신학에 의존함으로써 다른 계통의 1세대 신학을 등한시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2 (애시당초 최초의 신약 저술들이 바울로 친서들이거니와)}}} 바울로 이후의 교회가 겪은 역사를 본다면, 이는 지나친 기우이다. 할례 논쟁에서 보듯 1세대 교회는 신학적 다원성이 있었지만, 이것이 아예 다른 교단을 차리고 남남으로 살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애당초 할례 논쟁은 "교회에 받아들여진 이방인은 이제 유다인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맥락에서 나온 논쟁이다. 곧, 이방인과 유다인이 함께 종말론적 이스라엘에 속한다는 전제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논쟁이다.] 당장 바울로부터가 예루살렘 공동체와 계속 교류하는 관계였으며, 예루살렘의 야고보가 부활 증인에 속함을 분명하게 명시한다.{{{-2 (1고린 15,7)}}}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바울로가 말하는 필립비서 2장의 찬가는 명백히 유다계 그리스도교의 찬가이며, 예수에 관한 신성 고백들은 유다 표징세계의 귀결이었다. 그리고 바울로 이후 교회는 유다계 공동체와 이방계 공동체의 급속한 혼합이 있었다. 이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 헬레니즘화된 유다인인 루가가[* 정확히 말하면, 루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가 역사적 루가인지는 확정할 수 없다. 그러나 두 책이 동일 저자의 저술인 건 주석학적으로 확실하며, 이 저자는 헬레니즘화된 유다인이거나 혹은 이방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저자를 관습적으로 '루가'라 부른다.] 저술한 사도행전이다. 사도행전에서 묘사되는 1세대 교회에는 유다계와 이방계의 신학적 긴장이 매우 부드럽게 희석되어있다. 이것을 역사적인 1세대 교회의 상황이라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붙겠으나, 루가의 시대에는 이런 긴장이 없었다. 즉 루가는 자기 시대의 교회 상황을 1세대 교회로 소급시킨 것이다. 동시에, 루가의 시대에는 바울로와 예루살렘 그리스도인이 할례 문제로 논쟁한 것은 이미 먼 과거의 일이었고, 유다계 그리스도인에게도 바울로는 당연히 사도였다. 무엇보다도, 현대인들이 읽는 27권의 신약성경에 유다계 문헌과 이방계 문헌이 공존한다는 것부터가 이러한 혼합의 증거이다. 그러므로 후대의 에비온파를 바울로와 대립하던 예루살렘 그리스도인과 동일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오류이다. "교부들을 통해서 에비오니스트 그룹에 대해 알게 된 내용을 기원 1세기의 현실에 쉽게 투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샤를르 페로{{{-2 ''Charles Perrot''}}} 씀,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 주석학적 그리스도론》{{{-2 ''Jésus, Christ et Seigneur des premiers chrétiens''}}}, 백운철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1, 142쪽] 2세대 그리스도인에게 교회란, 예루살렘의 유다계 공동체와 안티오키아의 이방계 공동체, 바울로가 개척한 공동체, 마태오 복음서가 탄생한 시리아의 유다계 공동체가 모두 포함된 실체였다. >네로 이후 그리고 성전이 파괴된 후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지중해 세계에 점차 흩어져서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와 90년대까지 상대적으로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그때는 마태 13,52의 표현처럼 "하늘나라의 율사"들에 의해서 크고 작은 형태의 글로 전해진 과거의 전승들을 집성할 수 있는 시기였다. 더욱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다인들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결별이 더욱 심화되었고 교회와 회당 제도 사이의 거리가 점차 벌어졌다. 대회당과 장로가 있는 회당 제도 역시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었다. 그 시대는 갈라 2장이 반영하듯 바오로 생전에 알려진 공동체들 간의 강한 긴장이 부분적으로 완화되던 시기였다. 약 85년경에 루가는 처음부터 완전하게 일치된 공동체의 모범을 신도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이 격동의 역사를 거의 잊어버리고자 했다. 교회 활동은 이제 말씀의 전파에 온전히 흡수되어 버렸다. ...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계 그리스도인들 간의 관계는 상호 소통을 지향하여 개선되고 있었다. 다양한 공동체를 배경으로 하는 공관복음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유다계 그리스인 출신의 마태오 복음사가는 마르코 이야기를 기초로 작업하였고 루가는 그리스계 그리스도인의 맥락에서 동일한 작업을 수행하였다. 다른 교회들과는 격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요한 전승과 루가 간에는 여러 연결점들이 존재한다. 요한 전승에서는 단지 사랑받는 제자만이 아니라 베드로의 위치도 격상되어 나타난다'''{{{-2 (요한 20,5 이하와 21장)}}}. >---- >-샤를르 페로{{{-2 ''Charles Perrot''}}}, 《예수 이후 - 초대교회의 직무》{{{-2 ''Après Jésus - Le ministère chez les premiers chrétiens''}}}, 백운철 옮김, 가톨릭출판사, 2002, 108-109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