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독교방송 (문단 편집) == 역사 == * 관련 자료: CBS 기독교방송의 어제와 오늘 ([[http://blog.daum.net/jc21th/17780114|1화]], [[http://blog.daum.net/jc21th/17780115|2화]]) 사실 방송국 설립 추진 시도는 1949년부터 있었으나, 이듬해 발발한 [[6.25 전쟁]]으로 무산되었다가 1954년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후원을 받은 [[미국인]] [[선교사]] 에드워드 오토 디캠프[* 한국 이름 감의도(甘義道), 1911~2001. 미국 북장로회(현 PCUSA)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미합중국 육군|미 육군]] [[군종 목사]]로 참전한 경력이 있다. 1976년경에 한국에서의 소임을 모두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의 주도 하에 서울 종로 2가 '기독교서회' 건물에 연주소와 사무실을, 연희동에 송신소를 각각 두고 개국하였다. 기독교 계열 민영방송으로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제1공화국]] 시절부터 [[대한민국 정부|정부]] 입맛대로 활동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KBS 뉴스]]를 방송하다가 1957년부터는 [[미국의 소리]]와 제휴해 VOA의 뉴스를 중계했고, 1958년 2월 1일부터 동화통신과 제휴해 독자적 뉴스를 제작하기 시작, 1960년에는 방송부 산하에 '보도계'를 개설하였다. 1963년부터는 전체 방송시간의 30%를 상업방송으로 편성하였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쫓겨날 때도, [[5.16 군사정변]] 이후 [[한일관계|한일수교]] 당시에도 [[6.3 항쟁]]에 침묵하던 관영방송[* 1960년대에는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 체제가 되기 이전이었다. 사실 공사화가 진행된 이후로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국영방송]]이나 다를바 없이 운영되었기도 했다.] [[한국방송공사|KBS]]와는 다르게 CBS는 정부 눈치를 보지 않고 속보를 마구 날려댔다. 물론 CBS만 이런 것은 아니다.[* [[동아방송]](DBS)은 아예 15분마다 한 번씩 실황중계를 했을 정도다. 심지어 DBS는 1964년 소위 '앵무새 사건'으로 간부들이 기소된 상태였다.] 이처럼 그 당시 정권에는 눈엣가시였음에도 불구하고 CBS는 [[대한민국 제3공화국|제3공화국]], [[대한민국 제4공화국|제4공화국]] 시기 대표적 저항언론 중 하나였다.[* 이 때문인지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중 이례적으로 기독교방송 창사기념회에 두 번이나 참석했다. 과거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 때 후원금을 보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런 행보는 당연한 셈이긴 하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기성 언론사들이 알아서 [[자체검열|자기검열]]을 할 때 기독교방송은 외신 기사를 인용하여 [[군사정권|군부정권]]을 대차게 까기도 했다. 또한 사회문제 고발에도 적극적이었는데, [[전태일]] 열사 분신자살 사건 때 [[강원용]] 목사가 설교 방식을 빌려 고발연설을 한 것도 기독교방송을 통해서였다.[* 이 때문인지, 전태일 열사 서거 50주기에 특별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해당 다큐멘터리는 2021년 방송콘텐츠 대상을 수상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전두환]] 신군부의 학살을 좌시하지 않고 위험한 현장에서도 발군의 취재를 했다고 한다. [youtube(tnL0vVvbPa4)] 1980년 11월 25일 진행된 마지막 CBS 낮 종합뉴스. 당연히 [[신군부]]는 기독교방송을 곱게 볼 리 없었다. 1980년 8월 11일에 [[전두환]]의 신군부 군홧발의 탄압 아래 CBS는 언론자율정화에 따라 양심적인 기자 15명을 해직시켰고, 결국 신군부가 시행한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11월 25일부로 보도기능을 잃어버렸다. 이때 보도기능을 중단한다고 여자 아나운서가 방송하면서 울먹이는 바람에 신군부는 11월 30일 마지막 방송이 예정된 [[동아방송(라디오)|DBS]]와 [[동양방송|TBC]]에 <고별방송에 관한 지침>이란 희한한 걸 내보내 단순한 고별인사만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등의 감성적 내용을 배제할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TBC 폐국 당시에 울었다는 이유로, 가수 [[이은하]]는 신군부로부터 '''TV 방송 3개월 출연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후 160명의 인원을 감축했는데, 이 중에서 '''130명'''은 KBS로 이직했다.[* 이때 [[CBS 성우극회|자사 성우들]]도 [[이상춘|단 1명]]을 제외하고 모두 [[KBS 성우극회]]로 흡수되었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 시절 CBS는 종교, 음악위주의 방송만 했다. 보도기능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래도 보도국을 아예 없앤 것은 아니었고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취재리포트를 방송하기도 했으나, 1980년대 당시 CBS 기자(대외적으로는 PD 직함을 썼다.)들은 사실상 '불법'으로 취재하는 '사이비 기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도 CBS 기자들이 이 시기에 일궈낸 것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전두환]]으로 시작해 [[이순자]]로 끝나는 그 따위 '''[[땡전뉴스]]'''"라는 표현을 지상파 방송 전파에 실어보냈고, 1987년 1월 26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에는 "CBS 월요특집 -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라는 주제로 1시간 15분동안 '특별 [[생방송]]'을 하기도 했다. 사실 원래는 2시간동안 방송하기로 기획했었는데 방송 도중에 당시 CBS 간부진들에 의해 방송이 강제적으로 중단되어 버려 실제로는 1시간 15분밖에 방송되지 못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084139#home|#]] 참고로 특별 생방송이 방송되기로 예정된 날 아침에 당시 CBS 편성국장의 '''특별 생방송의 주제를 다른 것으로 바꿔서 방송하지 않으면 방송을 허가하지 않는다'''라는 지시가 갑자기 떨어지는 바람에 방송이 불방될 위기에 놓였으나, 당시 '''CBS 평직원들이 당시 주조정실에 있던 간부진들을 집단적인 힘을 이용하여 강제로 내쫓고, 주조정실 입구를 가로막아 CBS 간부진들의 주조정실 출입을 원천적으로 막게 하면서까지 방송을 강행시키는 위엄'''도 보였다.[[https://m.nocutnews.co.kr/news/4861175?source=https%3A%2F%2Fko.m.wikipedia.org%2F#_enliple|#]][[https://youtu.be/NNg4jnxtfZU|#]]그리고 더 대단하고 대담한 것은 교회 설교방송을 가장한 시위현장 중계도 했다는 것이다.] 광고도 하지 못하게 해서 교인들의 헌금으로 방송국을 간신히 유지해 나갔다고 한다. 그래도 보도기능 회복을 위한 의지는 사라지지 않아서인지 1983년 말 유화국면 형성 이후 1984년부터 사측과 개신교계, KNCC는 CBS의 보도기능 회복을 위한 건의서를 정부와 [[국회]]에 내는 한편, 1986년부터 보도기능 정상화를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을 벌여나갔다. 19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 이후 언론[[민주화]] 바람에 따라 그해 10월 19일부로 보도기능 및 광고방송 일부를 회복하여 7년간의 숙원을 달성했고[* 이 때문에 2017년 CBS는 보도기능 정상화 30주년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1988년에 스포츠중계[* [[프로야구]] 라디오 중계를 했었고, [[CBS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약칭 CBS배)를 1989년부터 열고 있다.], 1989년 1월 1일부터 보도기능 전반이 각각 회복되었으며, 1992년에는 22년간 정들었던 연지동을 떠나 [[목동(서울)|목동]] 신사옥으로 이전하였다. 그런데 이후에도 사정이 어려웠는지 1990년대 말까지 CBS ARS 후원광고가 꾸준히 나왔다고 한다. 현재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요즘은 매 연말에 특별 모금 생방송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TV에서 목사들과 연예인들이 출연해 후원전화를 걸으라고 한다. 이는 재정이 안정되지 않다보니 벌어지는 현상이다. 언론통폐합으로 보도기능이 거세되었지만, 이후 '월요특집'이라는 시사 프로그램이 호응을 얻었고, 훗날 이 프로그램은 '시사자키'로 확대 개편된다. 1995년 CBS 음악FM(93.9MHz)이 개국했다. 그리고 1998년 표준FM(98.1MHz)이 개국하고, 2002년 3월 1일에 CBS TV가 [[스카이라이프]] 출범과 함께 개국한다. 여담으로 CBS 음악FM과 표준FM의 개국일은 모두 12월 15일로 동일하다. 2013년 12월 30일, 갑자기 [[방송통신위원회]]가 종교방송은 보도를 할 권리가 없으며, 'CBS 뉴스', '김현정의 뉴스쇼',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등을 유사보도 프로그램으로 규정하고 이를 바로잡겠다고 언급해 정치적으로 논란이 일었다.([[http://media.daum.net/politics/administration/newsview?newsid=20131230160508341|#]]) 이에 대해 CBS 노조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32&aid=0002426294|강력히 반발하고 있다]].그런데 [[이경재(1941)|이경재]]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삐삐밴드]] 출신 [[이윤정(가수)|이윤정]]의 아버지로 유명한 정치인이다. 그런데 기독교도인 그가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행사에 정치인으로서 참여한 적이 있어, 친박계 인사라는 점에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은 2014년 1월 7일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CBS의 보도는 계속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428392|기사]] 2014년 1월 14일, 창사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CI로 변경했다. 2014년 5월 [[청와대]]로부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27&aid=0000018504|당했는데]], 이에 대해 CBS 노조 측에서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656016|그야말로 위엄찬 성명을]] 내면서 소송을 환영(...)했다. > '''CBS노조 성명서 전문''' >CBS에 대한 청와대의 소송을 적극 환영한다. >청와대가 CBS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CBS의 보도로 김기춘 비서실장과 박준우 정무수석 등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8천만 원을 내놓으라고 한다. 그리고는 언론중재위원회에도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조문 연출 의혹과 관련한 “‘조문연출’ 논란 할머니, 청와대가 섭외”라는 CBS의 보도를 문제삼은 것이다. >정부에 대한 울분으로 가득한 분향소를 태연히 방문한 대통령, 그런 대통령에게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다가가는 정체불명의 할머니, 그 할머니를 따뜻이 위로하는 대통령의 모습, 이에 대한 유족들의 의문에 따라 언론은 응당 그 사실관계를 밝혀야 할 책무가 있었다. 이후의 취재과정에서 핵심 취재원으로부터 “청와대 측이 당일 합동분향소에서 눈에 띈 해당 노인에게 ‘부탁’을 한 것은 사실”이라는 말을 들어 기사를 썼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에 이름 한자 등장하지도 않으면서 명예가 훼손당했다는 김기춘 실장과 박준우 수석의 주장을 공들여 논박하지는 않겠다. 어차피 법의 사유화를 지향하는 정권인 까닭에, ‘공직자의 공직 수행이 충분히 의심을 받을 만할 때 언론보도로 인해 공직자 개인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수 있다 해서 명예훼손이라 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례 역시 떠올려봐야 의미 없다. >이 모두를 차치하고, 청와대가 CBS를 ‘받아쓰기’ 언론이 아니라고 공식 인정해주어 그저 반갑다. 거의 모든 기존 언론이 대중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가운데, 유독 CBS는 정부와 한통속이 아니었다고 청와대가 나서서 증명해주니 감읍할 뿐이다. >또한 정정보도를 청구한 것은 CBS의 보도기능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CBS의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에 대해 ‘유사보도’ 딱지를 붙였던 정부가 늦게나마 이를 스스로 거둬들이는 것 같아 더욱 반갑다. >나아가 잊혀질 만하면 CBS를 때려줌으로써, 권력과 언론의 긴장관계가 늘 유지될 수 있도록 해주는 청와대의 세심함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CBS의 모든 구성원은 늘 그래왔듯 이번 싸움에도 한치 물러섬 없이 임할 것이다. 퇴행하는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의미를 곱씹고 또 곱씹으며 당당하게 걸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단련하면 단련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강철의 진리를 보여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송 당사자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의 이름만큼은 지워줬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해 본다. 유신정권의 주역이자, 초원복집 사건의 주인공이자,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선봉장이자, 유신회귀의 실세인 김기춘 실장이다. 60년 역사 동안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았던 CBS가 그런 김기춘 실장과 소송에서 마주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 >그는 “우리가 남이가?”하고 싶을지 몰라도 우리는 남이다. >'''2014년 5월 1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CBS지부''' 이 소송에서 [[참여연대]]와 [[민변]]이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27&aid=0000018573|변호를 맡았고,]] 2015년 4월 2일, 청와대 손해배상청구 1심 소송(서울남부지법 민사 15부, 재판장 김홍준 부장판사)에서 CBS가 일부패소했다. 항소심은 기각되었고, 2016년 8월 28일 열린 상고심(대법원 2부, 주심 [[조희대]] 대법관) 선고에서 대법원은 '''1심 원심을 확정, "손해배상 건은 기각, CBS 노컷뉴스는 72시간 내 정정보도를 할 것."'''이라고 판결했다.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160828/80008254/1|관련기사]] 2015년 3월, 드디어 HD방송을 시작했다. HD방송 시작과 함께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관찰보고서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이 첫 타자로 나섰고, 밤 9시 50분에 방송하는 교계뉴스가 7월말에 HD로 뒤늦게 전환했다. 같은해 9월 14일부터 대폭의 라디오 가을 개편과 함께 24시간 온라인 음악채널 ‘CBS JOY4U’를 개국한다.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시사와 음악 콘텐츠를 강화하면서 스마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 젊은 층을 공략하겠다는 취지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834|#]] 본사를 고양시 능곡송신소 부지로 이전할 계획이 있었는데[[https://www.nocutnews.co.kr/news/4932990|기사]], 그린벨트 해제 문제와 관련해서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4427|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