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독교신학 (문단 편집) ===== [[기독교신학#s-3.2.2.1|영지주의의 도전]]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영지주의)] || [[파일:Saint Irenaeus.jpg|height=150]][br]{{{-2 [[이레나이우스]]}}} || 영지주의,,Gnosticism,,는 크게는 기원전 2세기부터, 작게는 기원후 1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종교 운동이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 안에서 하나의 보편적 가르침으로 이끄는 혼합주의화 현상이었던, 영지주의는 우주적인 영적인 앎([[영지]],,gnosis,,)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 반우주적으로 여겨지는 물질과 육신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특징을 가지곤 했다. 영지주의는 [[신플라톤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로 인해 영지주의 철학에서는 [[이데아]]의 유출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이데아가 희미해지거나 소멸된다는 경향을 가졌다. 이데아가 많은 존재일 수록 영적이고 신성하며, 반대로 이데아가 적을 수록 물질적이고 악한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이렇게 영과 물질의 이원론적 대립을 주장했다. 당대 많은 영지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악한 창조신([[데미우르고스]],,demiurge,,)과 선한 최고신 (모나드,,Monad,,) 간의 대립 사이에서 데미우르고스의 창조에 의해 영,,''pneuma'',,이 물질,,hyle,,에 갇히게 되었다. 이 악한 물질로부터 영을 해방시켜줄 존재가 모나드인데, 모나드는 구원자인 동시에 지혜의 불꽃으로 여겨졌다. 영적인 지혜는 물질의 악함을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계층의 꼭대기에 있는 모나드를 향해 영을 해방시켜 준다. 신플라톤주의의 사상을 차용했을 뿐만 아니라 악의 현존을 설명해주기까지 한, 영지주의는 자연스럽게 당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항한 반영지주의 신학자들은 이원론과, 물질을 악하게 보는 견해가 기독교의 사상에 부적합하다고 여겼다. [[이레나이우스]],,Irenaeus,,(c. 130 – c. 202)는 영지주의에 맞서 '정통'과 '이단'을 분리시킨 최초의 신학자다. 그는 교회가 사도들로부터 넘겨받은 신앙의 규범을 정통으로 규정하며, 영지주의자들에게는 사도들로부터 전해진 전통 규범이 없음을 주장했다. 이레나이우스에 의해 성서에 대한 해석이 '특정 일부의 성서 이해'에서 '교회의 보편적 성서 이해'로 옮겨가게 되는 토대가 놓일 수 있었다. 영지주의는 초기 교회에 의해 많은 핍박을 받게 되었으나, 중세와 근대에 가서 정신적 흐름이 살아남게 된다. ---- {{{+2 '''더 읽어볼 만한 글'''}}} {{{+1 1차 문헌}}} * 이정순 (ed.): ⟪나그함마디 문서⟫. 동연출판사, 2022 (trans. 이규호). * 이레내우스: ⟪에피데익시스⟫. [[부크크]], 2022 (trans. 김광채). {{{+1 2차 문헌}}} * 조재형: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동연출판사, 202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