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마궁수 (문단 편집) === 전술적 운용 === 일단 궁기병과 궁보병의 순수한 사격전은 보병의 승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컸다. 기마궁사들의 실제 전투거리는 1m~20m 내외로서 보병궁사에 비해서 사정거리가 매우 짧았다. 일부 전술서에서는 25m에서 일제사격을 시키라는 등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달리는 마상에서 활을 정확히 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마상사격의 사거리는 보병궁사보다는 확실히 짧았다.[* 더불어 상대가 갑옷이라도 차려입었다면 화살로 뚫는 게 어려워서 도보 궁병들조차 일부러 가까이서 쏘기도 했다.] 이는 [[말(동물)|말]]이라는 동물이 아무리 잘 훈련시키더라도 궁술 같은 섬세한 행동을 하기에는 동물의 호흡 같은 들숨날숨 등으로도 조준이 흔들리고, 말 위에서 활을 당긴다는 것 자체가 지상에서보다 2배는 많은 힘과 허릿심이 필요한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 게다가 말 위에서는 일반적으로 크고 강력한 활을 사용하는 것이 어려웠고, 보병은 여차하면 활보다 더 멀리 쏠 수 있는 쇠뇌까지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강성한 유목민족이라도 전술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마케도니아 왕국]]과 싸운 스키타이인들처럼 정주민족한테 참패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기마궁수는 단순히 활을 쏘는 기병이라는 전술적인 기능만 따졌을 때는 무적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평지에서 방패와 쇠뇌로 무장한 보병들에게 패주하는 일도 의외로 많았으며, 이로부터 [[전투 마차]]가 고안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거리가 짧은만큼 활의 장력을 매우 강력하게 조절했고, 경무장 보병은 화살 한방만으로 죽일만큼 강력한 근접궁술을 사용했다. '''기마궁술은 원거리 싸움법이지만, 기마창술에 가까운 근접 운용'''을 애용했다는 것이 다수의 기록에 남아있다.[* 반대로 창은 사거리가 제한되는 비소모성 원거리무기로 취급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랜스(무기)|기병창]]을 쓰는 서유럽 기병문화 상 중기병이 궁기병의 영역을 일정 부분 선점한 셈이다. 이에 관해서는 [[창(무기)]] 문서를 참고할 것.] 어차피 보병들은 기마궁사들의 기동력 탓에 일방적인 선제공격만으로도 즉사당할 위험을 안고 싸워야했으므로, 기마궁사의 전투거리도 전혀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전근대의 보병들은 단독으로는 거의 쓸모가 없고 대열을 맞춰서 단체로 정면공격을 해야 했는데, 기마궁수들은 보병의 대열이 회전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측면을 칠 수 있고, 보병들의 공격이 닿을락말락한 10m 내외에서 강력한 화살을 날리고 도망쳤으므로 보병들의 대열이 반격을 하려고 방향을 바꾸면 이미 저 멀리에 있었다. 게다가 잡으려고 달려가면 더 빠른 속도로 멀리 도망가고 그렇게 도망가면서 [[파르티안 궁법|활을 쏴대니]] 골치가 아프다. 마치 스타크래프트의 [[뮤짤]]을 당하는 바이오닉 같은 처지인 셈이다. 이 경우 중요한 건 사거리가 아니라 기동력이었다. 이렇게 몰려와서 퍼붓고 가는 전술을 [[스웜 전술]]이라 부른다. 결국 궁기병을 상대할 때는 똑같이 기마궁수를 쓰는 것이 매우 좋았다.[* 마치 현대전에서 저격수를 상대하는데는 저격수가 좋은 것과 비슷하다.] 전 세계적으로 기병을 상대하는 법으로 가장 효율적인 건 결국 동수의 기병을 육성해 맞대결을 펼치는 것이었다. [[십자군 전쟁|예루살렘 십자군]]은 무슬림 궁기병을 상대하고자 현지 튀르크 궁기병인 [[투르코폴레스]]를 용병으로 고용하였으며, 유목민과 싸우던 조선 북방군은 기병-보병 비율이 8:2가 되기도 하는 등 기병을 육성하였다. 유명한 장수들이 기마궁술에 능한 사례도 많았는데, 어유소는 단기필마로 기마궁술로써 급습해오는 여진족 수십 명 발라버렸고, [[신립]]도 기마궁술이 뛰어난 사람이었으며, 중국 후한말 장군인 [[공손찬]] 역시 기마궁수들로 백마의종을 편성해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밖에 삼국시대 때부터 고구려나 신라도 기마궁수를 육성했다. 조선전기 [[조선군]]은 토지문제로 [[세병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국제정세가 안정적으로 변하자 군비 부담을 줄이고자 군축을 하면서 궁기병 비율이 높아지기도 하였는데, 이 또한 유목민족을 상대할 때 가장 효과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 모든 것은 '''유연한 기동성'''을 보장받는다는 전제 하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궁기병들이 제대로 날뛸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같은 궁기병으로 맞상대하지 않더라도 이들을 이길 수 있었다. 10세기 [[레히펠트 전투]]나 11세기 [[귀주 대첩]], 13세기 [[아인 잘루트 전투]], 14세기 [[크레시 전투]] 등 무수히 많은 전투에서 기동력을 상실한 기병들을 궁기병은커녕 설령 중기병이라도 순식간에 궤멸당하고는 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이름을 날린 기병대와 그 지휘관들은 탁 트였으며 충분히 넓고 평탄한 전장에서 싸우려고 했다. 게다가 궁기병으로서는 생존성과 기동성의 대가로 파괴력이 부족했던 까닭에, 기마문화를 지닌 정주민족은 물론 유목민족조차 여건이 된다면 대규모 중기병을 육성하고 기마충격전술을 구사하였다. 중기병 충격대와 경기병 기마궁수들은 상호보완적 존재로서, [[카르헤 전투]]처럼 돌격시 제병협동전술을 구사하고는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