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마궁수 (문단 편집) === [[한국]] ===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궁기병을 상당히 중요시했다.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에서도 말 위에서 효시로 보이는 화살을 그것도 어려운 배사([[파르티안 궁법]])로 날리는 궁수들이 등장하며, 고려시대 몽골과의 전투 이후로 이러한 궁기병은 더욱 더 중요시되었다. [[조선]]에서는 그냥 궁술도 아니고 기마궁술이 무과시험 중 하나였고 무인으로써 마땅이 익혀야 할 기예로 인식하였다. [[조선통신사]]에서도 일본인들 사이 유난히 인기있던 건 일본에서 좀처럼 보지 못하는 조선인들의 마상재와 기마궁술이었다. 조선 전기 [[창기병]]이 건재할 때에도 주력 병종은 궁기병이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양반]] 의병장 [[정문부]]도 주력 부대가 궁기병이었기에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를 유격전과 기습 매복으로 굴복시켰다. 실제로 왜군은 조선에서 겪은 의병쇼크와 화포쇼크 덕분에 개전 1년만에 병력 히데요시에게 벌써 병력 1/3을 잃었다고 장계를 올렸는데, 현대전에서 이 정도 손실은 전멸로 취급된다.[* 의병장들이 더욱 활약할 수 있던 배경으로는 조선사회와 일본사회 간 차이도 있었다. 수백년 간 이어져온 [[사무라이]]의 압제와 60~90% 세율을 자랑하는 [[가렴주구]] 속에 무기력한 일본 백성들에 익숙했던 왜군들은 조선의 백성도 반항하기를 두려워할 줄 알고 본국에서 하던 대로 안이하게 약탈을 즐기려고 종종 흩어졌다가, 의병대에게 [[각개격파]]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기사 스포츠 역시 평가가 좋은데, 현대에는 유사한 스포츠인 활쏘기나 승마에 비하면 비교적 [[http://www.youtube.com/watch?v=FFR6EuaN5og|규모가 작긴 하지만 아주 없진 않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