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모노 (문단 편집) === [[헤이안 시대]] === [[파일:external/noah-tips.com/%E5%B9%B3%E5%AE%89%E6%99%82%E4%BB%A3-290x300.jpg]] 독자적인 귀족 문화가 발달한 [[헤이안 시대]]는 세련된 생활 양식과 귀족 문화의 기반을 다진 일본 문화의 황금기로 꼽히는데, 헤이안 시대가 의외로 길었기 때문에 시대별로 옷차림이 계속해서 바뀌어 갔다. 전기에는 나라 시대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어 의례, 예법, 복식이 여전히 당나라식이었다. 왕실의 복식은 곤면, 십이장, 구장, 예의 등의 예복 제도를 갖추었는데, 이것이 당의 영향이었다. 894년 견당사가 폐지된 뒤 일본은 헤이안 시대 하면 떠올리는 독자적인 문화를 펼치기 시작하는데, 이를 와후(和風) 또는 일본풍이라고 불렀다. 연회나 사냥 같은 유흥이나 사치가 유행했으며 직조와 염색 기술이 발달하면서 옷의 색상, 무늬, 디자인이 크게 발전하게 된다. 복식도 세분화되면서 격식, 형식, 색채미를 강조하였고 옷을 많이 겹쳐 입는 것으로 위엄을 드러내었다. 또 옷에다 풀을 강하게 먹여 뻣뻣하게 하는 고와쇼우조쿠(講和装束)의 작창법으로 외관에 큰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파일:external/www.junihitoe.jp/sokutaitop.jpg]] 공가 남자는 정식 예장으로 [[소쿠타이]][束帶]를 입었다. 중국에서 유입된 단령과 복두가 일본화된 것으로, 남자의 정식 예복 차림을 대표하는 정장이 되었다. 시츠샤칸, 호우, 한삐, 시타가사네, 아코메, 히토에, 우에노하카마, 시타바카마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관모와 의복의 색상과 무늬로 신분을 표시하였으며 가문 별로 특정한 무늬를 사용하였다. 세키타이(허리띠), 타치(큰 칼), 교타이(어대), 샤쿠(홀), 다토우(부채, 첩지)까지 모두 갖춰져야 덴노부터 신하들까지 공식적인 모습이었다. 시토우즈(버선), 리 또는 화. 무관은 호우 위에 우치카케를 덧입었다. * 시츠사칸 : 복두가 변화한 것으로 건자와 에이로 구성되어 있다. * 호우 : [[단령]]이 변화한 것이다. 이 중 봉액포는 왕, 문관, 삼위 이상 무관이 입었으며 궐액포는 사위 이상 무관이 입었다. * 한삐 : 포의 안쪽인 시타가사네 위에 입는 소매 짧은 옷, 직령, 도련에 란 * 시타가사네 : 한삐 속에 착용, 직령, 옆트임 있는 상의를 말한다. 10C중반부터 뒷자락 길어져 끌렸고, 신분에 따라 길어졌다. 아름다운 색상과 무늬가 특징이며, 지금도 [[일본 황실]]에서 성인식과 즉위식에 사용해 옷이 길게 끌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아코메 : 속옷역할, 직령, 옆트임, 붉은색, 녹색, 연두색 등, 필요에 따라 여러 벌이 겹쳤다. 속옷인 고소데를 입게 되면서 형식적인 옷이 되었다. * 히토에 : 아코메 속 붉은 상의로, 홑옷이다. * 우에노하카마(겉) : 여미는 형식, 가랑이 사이 당, 겉감은 흰색, 안감은 붉은색이다. * 시타바카마(속) : 바짓부리 넓은 대구고, 붉은색, 흰색, 황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 세키타이 : 검정색 옻칠 가죽, 백석, 마노, 대모 등의 장식으로 되어 있다. * [[타치]] : 큰 칼. 당시 일본에서 사용되던 검. * 히라오 : 칼을 차기 위한 납작하고 넓은 끈목을 말한다. * 시토우즈 : 발가락이 갈라지지 않은 흰색 버선이다. * [[타비]] : 발가락이 갈라진 버선이다. * 리, 화 : 검정색으로 옻칠한 가죽 신을 말한다. 소쿠타이의 약식 예장으로는 호우코(布袴)와 이칸(衣冠)이 있었다. 호우코(布袴)는 전체적으로 소쿠타이와 유사하게 생겼는데, 하급 관리, 상급 비상시, 관료의 입궐 시 약식 예복으로 사용되었다. 관을 쓰고 스이에이가 달렸으며, 호를 걸치고 세키타이라는 허리띠를 둘렀다. 바지는 우에노하카마 대신 마포로 된 사시누키였으며 사시누키는 점차 특정한 복장 차림으로 변한다. 쿄(시타가사네)가 옷 뒤에 빠져나온 뒤 홀을 들고 있었다. 이칸(衣冠)은 숙직 시에 입다가 후에 관료의 평상 입궐 시 착용하는 약식 예복으로 자리잡게 된다. 소쿠타이에서도 한삐, 시타카사네 같은 받침옷을 대폭 생략했다. 바지는 사시누키에 세키타이 대신 천으로 만든 허리띠를 둘렀으며, 관모와 의복 색상 및 무늬로 신분을 표시하였으나 문, 무관의 구별 없이 봉액포였다. 시츠사칸이라는 관모에 호우라는 옷을 입었으며 안쪽 옷은 히토에였고, 옷 사이에는 다토우라는 것을 끼웠다. 시토우즈라는 신발을 신었다. [[타치]]는 차지 않았으며 평소에는 쥘부채를 들거나 아무것도 들지 않았지만 신에게 배례 시에는 홀을 들고 있었다. 공가 남자의 평상복은 노우시(直衣)였는데, 후에는 조정에 나가 일을 할 때도 입었다. 사시누키와 함께 착용하고 세키타이 대신 천으로 된 허리띠를 둘렀다. 호우는 소쿠타이와 같지만 정해진 색과 무늬는 없다. 뒤에는 소쿠타이와 위포로 된 잡포로 바뀌었다. 관모는 에보시였다가 에보시노우시로 바뀌었으며 엄숙한 의례 시에 사용하던 시츠사칸도 간무리노우시로 바뀌었다. 에보시노우시는 관, 스이에이에 노시로 된 옷과 우치기누(內衣)를 안에 입었고 바지로는 사시누키를 입었다. 훗날 노우시는 다테에보시라는 관과 아코메라는 안감, 노우시라는 정장, 사시누키를 입었고 부채를 들고 있었다. || [[파일:external/blog-imgs-45.fc2.com/il-hime.gif]] || [[파일:external/image.rakuten.co.jp/12-shk-308_4.jpg]] || || 구성 || 모형 || * [[쥬니히토에]]十二單 궁중 여자의 정장은 [[쥬니히토에]]로, 카라기누모[唐衣裳]라고도 불렀다. 안쪽에는 히토에와 하카마, 우치기, 우치기누, 우와기, 카라기누를 입고 모를 길게 늘린 뒤 다토우와 부채를 들었고 생머리로 매우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 이 때 우치기, 우치기누를 걸치고 나라시대때 도입된 표가 변형된 히레(比禮)를 걸친 뒤 군타이(裙帶)를 매고 보관을 쓴 모습을 모노노구(物具)라고 했다. 여자들은 평상시에는 불편하기 때문에 우치기(袿)나 우치기까지 입은 상태에서 코우치기(小袿)를 껴입는 차림이었다. 먼저 카라기누(唐衣)는 가장 겉에 입는 옷으로 뒷길이가 앞길보다 짧고, 넓은 반소매, 섶이 없고 곧은 깃을 접어 바깥쪽으로 꺾어 입었다. 여미지 않고 소매에 손만 끼운 채 걸쳐 입었고 원래는 옷감과 색상으로 신분을 표시하였으나, 헤이안 시대에는 예장의 상징이 되었다. 우치기[袿]는 카라기누와 모 안에 입는 겉옷의 일종이다. 길고 소매가 넓으며, 같은 형태를 여러벌 걸쳐 입었다. 우와기(가장 겉), 가사네우치기(중간)로 나누었고 [[헤이안 시대]] 전성기에는 스무 벌까지 겹쳐 입었지만 말기부터는 다섯 벌을 입어 이츠츠기누라고 했는데, 이는 [[가마쿠라 막부]] 시대 원칙이 되었다. 평상시에는 흰색을 안에 그 위에 색상있는 것을 한두 벌 겹쳐 입음 성장시에는 가사네우치기 수를 늘려 깃과 소매부리의 배색의 미를 보였다. 우치기누는 옷감을 다듬이질하며 광택을 낸 것으로, 카사네우치기 중간에 섞어 입다가 11세기 말엽에, 우와기와 가사네우치기 사이에 입었다. 히토에(單)는 우치기 안에 입는 홑옷, 우치기보다 길어 겉으로 보이며, 전체조화를 고려하며 다채로운 색상을 띄었다. 카사네이로에는 이런 색상들이 깃, 소맷부리, 도련등에 드러나 보이는 것이며 히토에가사네라고 여름엔 우치기를 생략하고 히토에를 몇 벌씩 겹쳐 입었다. 가라기누와 모 차림을 통상 [[쥬니히토에]](十二單) 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본래는 히토에가 속옷 역할을 하였으나, 헤이안 말기 히토에 안에 코소데(小袖)를 입었다. 하의로는 하카마를 입고 그 위에 옷자락이 끌리도록 뒷치마인 모(裳) 를 둘러입었다. 처음엔 허리에 감아 몸을 감싸는 앞치마 형태였다가 허리 뒤를 장식하게 되었고, 모 안에 속옷으로 착용하던 하카마가 일부 드러나게 되었다. 헤이안 시대 전기에 일반적 길이에서 길고 끌리는 형태가 되었다. 하카마는 하리바카마(풀먹여 빳빳하게 만든 하카마), 우치바카마(생견[정견, 명주, 실크]을 다듬이질한 하카마)로 나누어졌다. * 코우치기(小袿) 남자의 직의에 해당하는 차림이다. 쥬니히토에에서 카라기누와 치마를 생략한 우치기(袿)를 여러벌 덧입은 차림으로 궁중의 평시나 일반 공가에서의 사적인 예장이었고 헤이안 시대 말기 이후에는 직의와 마찬가지로 공적인 경우에도 사용하였다. 코우치기는 준 정장에 해당하는 것으로 우치기보다 길이가 조금 짧다. 코우치기에 대한 기록으로는 헤이안 시대 말기 도화예엽이라는 문헌에 따르면 중납언 중장의 신부가 진한 소방색의 이중 직물 귀갑문의 코우치기를 입고 그 아래에 귀갑문(龜甲文)의 우와기(表着)와 우치기누(打衣), 그리고 흰색의 우치기를 8장 겹쳐 입고 다음에 히토에와 나가바카마(長袴)를 맨 밑에 받쳐입었다는 결혼 피로연 시의 차림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에도 코우치기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점차 예장인 청장속으로 사용되면서 카라기누와 같이 사용하는 등 착장법에 혼란이 생기기도 했다. 치마는 입어도 카라기누를 생략하거나 카라기누는 사용하고 치마를 생략해 사용하기도 하며 예장인 청장속(晴装束)과 약장인 설장속(褻装束)의 중간 차림이 에마키에 자주 묘사되고 있다. 코우치기의 형태는 우치기와 비슷하며 옷감은 문양이 있는 직물과 나(羅)가 주로 사용되었고, 색은 흰색, 자색, 이남, 포도, 맹황, 소방 등이 사용되었다. 또 소규 차림에서 소규를 생략한 규 차림도 공가의 설장속으로서 사용하기도 했다. * 호소나가(細長) 20세 전후 여성들의 사적인 예장으로 코우치기와 비슷한 형태지만 임이 없으며 깃은 카라기누와 같은 수령으로 접혀 있어 호소나가 안에 입은 코우치기의 다양한 색의 표현, 즉 카사네이로메(重ね色目)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게 되어 있다. 옷의 길이는 착용자의 신장보다 길어 자락이 길게 끌린다. 2폭의 뒷길은 허리 부위에서 각각 한 폭씩 뒤 중심을 기점으로 트여 있어, 뒷길의 두 자락과 앞길의 두 자락은 모두 뒤로 향해 끌리도록 되어 있다. 또 소매는 한 폭으로 되어 있어 세장 안에 입은 코우치기의 소매 길이보다 짧아 수구 부위에 겹쳐 입는 것으로 나타나는 카사네이로메가 잘 나타나고 있다. 허리에는 대(帶)를 맨다. * 카자미(汗衫) 본래 홑으로 된 속옷이었지만 점차 하급인의 겉옷으로 사용되었다가, 다시 장대 화되어 공가 미성년 여성의 정장으로 입게 되었다. 단령 옷깃으로 되어있으며, 섶이 있고 옆선은 트여 있는 궐액으로 되어 있으며, 길은 2폭, 소매가 2폭으로 되어 있다. 의복의 뒷길 길이는 약 4m 50cm, 앞길의 길이는 3m 60cm 정도로 매우 길어 뒤로 끌리도록 되어 있다. 카자미의 옷깃은 본래 카리기누나 소쿠타이와도 같이 제대로 여며입었지만, 이것을 허리에 맨 대 부위부터 수령으로 넓게 접어서 입었다. 이는 안에 입은 옷깃의 카사네이로메를 표현하기 위해서 본래 착장법이 아닌 변형된 방법으로 사료된다. * 코소데(小袖) 본래 서민복이었지만 헤이안 시대 말기에 그려진 에마키 중 하나인 병초지(病草子)에 공가 여자가 우치기의 아래에 흰색의 코소데를 입은 모습이 묘사된 것으로 보아 헤이안 말기에 이르러서는 공가 여성도 속옷으로서 코소데를 입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가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이는 공가 계급이 헤이안 시대 말기 이후 쇠퇴하면서 궁핍해진 탓으로 보인다. 즉 이 시기 여자들은 우치기에 고만을 입든지 우치기도 생략하고 흰색 코소데에 고만의 차림을 한 경우도 많았으며 이에 대한 차림을 벌거벗었다며 하다카이(はだか衣) 라고 부르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