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생 (문단 편집) == 기타 == 기생의 출석부를 ‘기생안’이라 한다. 부를 땐 이름을 풀거나 수식 혹은 이름을 수식하는 말을 붙여 시처럼 호명했다. [[춘향전]]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중추 칠월 십오야에 광명 좋다, 추월이 나오. 분벽사창 요적한데 한가하다, 향심이 나오.' 식으로 한다. 그러나 공문서라 하기에는 영 아니었다. 그래서 기생안과 별도로 ‘기생 점고 호명기’가 있었다. 기생안은 말 그대로 기생 이름만 적어놓은 출석부이고, 호명기가 이름 부르는 방법을 적어놓은 것이다. 보통 기생의 머리라 하면 얹은머리만을 떠올리지만 모든 기생이 그런 크고 화려한 머리를 하지는 못했다. 가채는 기와집 한 채와 맞먹을 정도로 고가의 사치품이었기에 돈이 없거나 하급인 기생은 서민들과 같은 머리를 했다. [[넷 우익]]들이 자주 써먹는 떡밥 중 하나. 기생을 꼭 [[창녀]]라고 부르며 위의 기생청을 보고 조선 정부도 창녀를 관리했다면서 [[일본군 위안부]]를 정당화하는데 쓴다. --어디 [[게이샤]]도 창녀라고 해보시지-- 하지만 정작 기생이 단순 성접대를 담당하는 매춘부로 전락한 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가 주도하여 일본식 관리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부터였다는 사실은 외면하는듯 하다. 거기다가 창녀들이 신창조합을 설립하면서까지 기생을 사칭해서 혼동된 것이다. 군산권번 출신 기생이었던 장금도 선생은 '권번 출신 기생들은 뱃지를 찼는데, 그걸 차고 있으면 예술 하는 기생이라는 걸 알았다'고 밝혔다. 손님들도 점잖아서 신체 접촉이라 해봤자 어깨 두드리며 격려해주는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만세이]] 가사에서도 일제가 소녀기생을 해방시켰다 어쩌구 하면서 자랑하는데, 현실은 구전으로 전해지던 것을 기생학교까지 세우며 이어나간 것이 일제다(…). [[게이샤]]와 많이 비교되는데, 애초에 [[게이샤]]는 가무만 하고 그래서 특정 예술 하나만을 죽도록 파기 때문에, 기생처럼 만능은 아니었다. 현재도 게이샤가 되려면 고등학교 교육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니[* 중졸 혹은 고등학교 중퇴 후 게이샤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더 어릴 때부터[* 오늘날은 최소한의 의무교육인 중학교까지는 졸업한 후에야 게이샤 수련을 시작할 수 있으나, 그런 법이 없었던 옛날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생 정도의 나이부터 게이샤 교육을 받았다.] 게이샤 준비를 했던 옛날의 경우, 학식은 더 기대하기 어려웠을 터이다. 아이러니하게 기생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인해 기생이랑 게이샤 이 둘의 수준에 대한 이미지는 뒤집혀도 너무 뒤집혀버렸다. 물론 [[게이샤]]도 위의 각주에서 보듯이 마냥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애당초 게이샤들도 유녀에서 갈라져나왔고, [[에도 막부]] 시대때는 외모 문제로 유녀가 될 수 없거나 퇴물이 된 유녀가 전직하는 직종에, 오이란을 띄워주기 위한 연주자로 현대식으로 비유하면 세션과 백댄서 취급이였다. 전통이나 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유녀처럼 가족들의 빚을 대신 갚는다는 목적(도제)으로 인신매매로 들어온 자들이 상당수였으며, 게이샤가 [[메이지 덴노]]의 치세부터 인기를 끌자 매춘 금지 문제를 어기고 음지에서 게이샤의 후원자들이 성접대를 강요하는 경우가 늘어나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래서 실은 [[일본]]에서도 정부에서나 [[게이샤]]를 전통 문화라며 띄워줄 뿐이고, 통상적인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그냥 접대부 취급이다[* 일반인은 거의 볼 일도 없다보니 게이샤의 실상은 사실 일본인들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 게이샤 문화를 향유하는 옛 화족 출신 부자들이나 가부키 배우 가문 등 상류층의 경우는 아예 [[게이샤]]를 [[매춘부]] 취급하는 경향도 없지않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직접적 매춘은 없어도 적지 않은 게이샤들이 상류층 남자들의 애첩이 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 가령, [[화족]] 집안의 영애였던 전위예술가인 [[오노 요코]]의 경우, 그 자신이 관객들로 하여금 [[알몸]]이 될 때까지 자신의 옷을 잘라내게 하는 퍼포먼스로 세간에 충격을 안겼음에도, 같은 전위예술가인 [[쿠보타 시게코]]가 자기 [[생식기]]에다 붓을 꼽고 서예를 하는(...) 아스트랄한 퍼포먼스를 선보이자, 어처구니없어하면서 '게이샤들이나 하는 짓'이라면서 깐 바 있다.[[http://m.hani.co.kr/arti/culture/book/491592.html#cb|#]]]. 기생과 게이샤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여성 예능인들은 좋게 포장해도 결국 접대와 유흥이 주 목적이였고, 신분조차 천민이였기에 매춘 문제와 성접대 문제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했고, 직접적 매춘이 안된다면 후원 개념이랍시라고 정부나 애첩으로 삼아 빼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실제로 몸을 팔지 않았다 해도 그래봤자 [[창녀]]나 다를 게 없다'''며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기는 하고, 기생이 활동하던 당시에도 이런 인식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성매매는 하지 않았을지라도 성적으로 착취당한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논리에서인데,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그 시절을 비판하는 의도였다고는 하지만, [[넷 우익]] 같은 부류들이 거꾸로 악용할 위험이 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성매매]]의 개념을 넓게 잡아 버리면 섹시한 이미지로 활동하는 연예인도 졸지에 성매매 종사자가 된다. 성적인 이미지를 파는 것을 비판하는 의도였다고는 하지만, 성희롱 악성 댓글을 정당화할 빌미를 제공한다. 또한 일반적인 서비스직 여성들도 넓은 의미에선 성매매를 한다는 억지 주장도 나올 수 있다. 과거에는 기생을 일컬어 웃음을 파는 이라고 했는데 이게 서비스용 미소를 말하는 것이므로 오늘날의 내레이터 모델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 지금도 시골 어르신들은 잔치집에서 축가 알바를 하는 사람들을 기생이라고 하시는데 멸칭이 아니라 과거에 잔치집에서 노래 부르는 일을 기생이 담당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 여담이지만, [[전여옥]]이 [[이문열]]의 소설 <[[선택(소설)|선택]]>을 비판하면서, 작품의 주인공 [[장계향]]을 두고 '''"그녀 또한 [[매춘부]]와 다름 없지 않은가"'''라고 발언해 안동 장씨 집안에서 격렬히 항의했다. 실제 [[장계향]]은 당시의 요리 레시피를 집대성한 [[음식디미방]]의 저자로,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시대의 한계 속에서도 그럭저럭 많은 것을 이룬 진취적인 여성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이문열]]은 [[장계향]]을 [[페미니즘]] 비난자로 설정하는 [[고증오류]]를 범했다. 여기에 낚인 전여옥은 "양반가 여성이나 천민 여성이나 착취당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맥락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지만, 둘 다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는 병크를 범한 셈.] [[일본]]의 유녀 문화와 유녀의 상위 계급인 [[오이란]]은 조선의 기생 문화와 동일시 되기 힘든데 기생은 본문에 서술된 것처럼 매춘금지의 영향으로 단순 공인 매춘부는 아니였기 때문. 그러나 일단 예능과 가무를 하고 접객을 한다는 공통점이 많아 일본 사극을 한국식으로 리메이크를 하면 오이란 및 게이샤(유녀)는 거의 기생으로 바뀌는데 굳이 오이란을 현지화 내지는 그나마 대응되는 기생의 계급은 이패기생이 적당하다. 이패기생은 음지에서 매춘을 한데다가 이패기생부터 상류층을 손님으로 상대했기 때문이다.[* 삼패기생은 창기에 일반인을 상대했다고 하지만 화랑유녀같이 정말 싼값에 팔리는 길거리 창부들과 동일시하기 힘들었다. 삼패기생도 일단 기생이기때문에 어느정도 재력이 있는 중산층부터 만날 수 있었다. 즉 일본의 유녀 문화와 조선의 기생 문화는 출발점이 다르기때문에 동일시할 수 없으나 굳이 비교한다면 삼패기생은 일반 유녀, 이패기생은 중상급 유녀. 오이란은 일패기생급 능력과 미모를 갖춘 이패기생에 가깝다.] [[구운몽]]의 등장인물인 [[계섬월]]과 [[적경홍]]은 작중 중국 출신이지만 창기로 묘사된 것을 보아 조선의 기생도 인식이 박했음을 알 수 있다.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있는집 자식이 기생 출신(이 경우 특히 고급 기생이 많았다.)인 여성과 결혼한 사례들이 적잖게 있었다. 심지어 기생 출신임을 모르고 결혼한게 아닌, 잘 알면서도 결혼을 했는데, 이렇게 기생 출신인 여성과 결혼한 이들중 아직 살아있는 경우도 많다보니 자기 친척들 중에 기생 출신이 있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