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자 (문단 편집) === 민주화 전: 대한민국 기자의 [[리즈 시절]] === 과거 대한민국에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지금보다 훨씬 괜찮았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동아일보]] 기자들이 민주화를 지지하다 대량 해직되는 사태가 벌어지던 무렵까지만 해도 기자들은 개개인의 자부심이 강할 뿐더러 사회적으로도 크게 인정받는 직업이었다. 장충단 집회 방해 사건도 기자들의 보도로 [[정치깡패]]라는 사람들의 실체를 밝혀낼 수 있었고 [[고대생 습격 사건]]의 사진은 [[4.19 혁명]]의 뇌관이 되었다. 이 사건을 취재한 동아일보 최경덕 기자는 훗날 4.19 특집 방송마다 출연하여 "'''요즘 기자들은 기자정신이 없다'''" 라고 일갈하신다. 아울러 20세기 후반 한국의 대표적 [[진보]] 지식인으로 유명한 '''[[리영희]]''' 교수도 [[조선일보]] 기자였고 담당 편집자와 [[베트남 전쟁]] 보도를 두고 분쟁을 빚다 퇴사하게 되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그 편집자가 바로 그 악명높은 [[김대중(기자)|김대중 주필]]이다. 7, 80년대 가장 유명한 기자이며 [[한국기자상]], 한국잡지협회 잡지기자상, 아시아-태평양상 특별상(마이니치 신문 주관) 등을 받으며 197, 80년대 울산 앞바다 석유 경제성 문제, 환경오염 문제, 인권 문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종횡무진 보도하던 마치 영화같은 인생을 살았던 [[조갑제]] 기자도 [[부산광역시]] [[국제신문]] 기자 출신이다. 같은 시기의 [[조선일보]]만 하더라도 정부의 언론 탄압과 여론 조작에 반대하는 기자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잘려나가게 되고 이 사람들이 만든 것이 '조선일보 해직기자단' 이다. [[전두환]]의 지시에 반발하며 언론 자유와 정의를 지키겠다고 하다가 쫓겨다니거나 끌려간 사람들도 허다하다. 개발독재 시기 언론들은 지금처럼 논조가 다양하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소위 진보개혁이라 불리던 경향신문도 그 시절엔 다를 바 없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1966년 박정희 정권이 이지태 눈에 거슬리는 기사를 실었다는 이유로 경향신문 사장이 강제 구속되고 '''회사 자체가 강제로 정수장학회로 넘어가버렸다'''. 현재의 성향이 된 건 1998년 한화그룹으로부터 독립한 뒤부터다. 예외적으로 [[동아일보]]가 진보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다. 이쪽도 박정희 정부의 광고 탄압 끝에 기자를 해직시킨 [[흑역사]]가 있다. 언론의 논조가 차츰 보혁의 구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87년 6월 항쟁 후. 대표적인 게 해직기자 출신들이 만든 [[한겨레]] 신문의 등장으로 조금 더 진보를 지향하는 언론이 생기게 되고 기존 언론 중 일부와 신생 언론이 동참하게 된다. 그 대신 언론의 상업화(기존 언론도 포함)도 급속히 진전되어 신문사의 광고의존도가 급속히 높아지고 특히 [[조선일보]] 같은 일부 신문의 경우 한동안 전체지면에서 광고지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기도 했다(강준만, 한국대중매체사 621P 부분인용). 당시에도 함량미달의 사이비 기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면 내각]] 시절에도 지금과 같은 막장 기자들이 꽤 많았고 1980년 [[언론통폐합]]의 표면상 목적도 사이비 기자들을 없애겠다는 것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