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자조선 (문단 편집) == 근현대의 인식 == 20세기에 들어서 고고학이 발전함에 따라 기자조선의 실재를 비판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밝혀지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의 민족주의적 사학자 [[신채호]], [[박은식]], [[장도빈]] 등은 기자에게 대대로 제사를 지내왔고 받드는 그런 역사를 [[사대주의]]라면서 대차게 깠다. 다만 이때는 기자조선의 존재까지 부인하지는 않았는데, 신채호는 자신 나름의 '[[삼조선]]설'에 따라 기자조선을 삼조선 중 하나인 번조선(番朝鮮)의 한 왕조로 보았다. 기자를 언급하는 문헌 자료들이 적잖게 남아 있는 이상은 (특별한 발견이 있기까지는) 기자조선의 연대기를 그냥 두고 볼 것이며, '''기자라는 사람이 3,000년 전에 있었고 우리나라에 왔었다''' 정도로만 알면 된다 정도였다. 아예 기자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없었다는 의견은 좀 더 이후에 부각되기 시작했다. 단국대 사학과 명예교수 윤내현은 기자의 나라가 위만에게 멸망했다고 본다. 한편, 기자의 세력을 단군조선의 토착 세력으로 보아 고조선 내에서 권력 이양이 일어나고, 중국과 교류한 것이 후에 동래설로 와전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김용섭, 《동아시아 역사 속 한국문명의 전환》]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방식이 도입된 이래, [[동북공정]] 등의 역사왜곡을 행하는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 사학계는 고고학적 발굴과 정면 배치되는 허무맹랑한 기자조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병도]]는 기자조선을 부정하고, 대신 '''한씨조선'''(韓氏朝鮮)이 있었다고 주장했다.[[http://cafe.naver.com/booheong/153292|링크1]],[[http://cafe.naver.com/sam10/127851|링크2]]. 하지만 이러한 견해에서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기자조선이지, 고조선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쉽게 말하자면 기자가 이주해 온 것이 분명하다면 정황상 그가 다양한 신 문물을 가져왔어야 할 것인데,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시대라 문화적인 부분은 그렇다 치더라도 유물 측면에서도 딱히 다른 문화의 급격한 유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약점인 것이다. 더군다나 단순히 귀화인이나 다른 나라에서 넘어온 정치 거물 정도도 아니고, 새로 이주해온 땅의 기존 사회 지배 계층으로 유입되었다면 분명히 눈에 띄는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현재 고고학적으로 중국계 청동기의 도래는 기자조선과는 시대가 맞지 않고, 그마저도 굉장히 점진적인데다 도입에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기자가 있었던 지역에서 발견되어야 하는 '기후명(㠱侯銘) 청동기'[* 기후(㠱候)라는 글자가 적힌 청동기. 㠱=箕.] 또한 고조선 강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고조선이 대중국 외교 및 [[중원]] 진출을 시도하면서 본래 위치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국의 시조를 기자로 선전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기자조선이 사실이라는 뜻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칭'''이다.] 실제로 고대의 중국에 기자라는 인물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가 동쪽으로 피난했다는 기록도 남아있으므로 이를 유리하게 이용했다는 가설이다. 중화질서에서 단순히 중원 동쪽의 [[오랑캐]]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현자의 가르침을 받은 문명국으로 대우받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으며, 이같은 선전의 효과는 위의 자치통감 기록에서도 드러난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72468|#]] 만약 기자 설화가 단순한 중국의 왜곡이었다면 현지인들이 부정하는 반응이 있어야 자연스러우나 한반도에서 기자 신앙은 오랫동안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도 생각해 볼 점이다. 한편 고대 한국어로 '왕'이라는 뜻의 '길지'(吉支)라는 말[* 백제의 왕호 [[건길지]], 고구려의 왕호 '개차' 등등]이 이 기자와 관련이 있다는 설이 있다. [[조선]] [[선조(조선)|선조]]대에 발간된 [[광주천자문|광주판 《천자문》]]에서는 皇자와 帝자에 대해 '님금'이라는 훈을 달았으면서 王자에 대해 '긔ᄌᆞ 왕'이라는 '훈'과 '음'을 달고 있는데, 이때의 긔ᄌᆞ가 바로 吉支(길지)라는 학설이다. 이 학설에 따르면 고대 한국어로 '왕'을 일컫던 '기자'라는 단어가 중국의 [[기자(중국)|기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어느 시점에서 혼동이 일어나면서 '기자조선설'이 생겨났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 가설대로라면 고구려의 기자 숭배는 고구려와 토착 지배세력간의 연결고리로 볼 수 있다.] [[상고한어]] 음을 기준으로 생각해도 箕子의 고대음은 /*k(r)ə tsəʔ/(Baxter-Sagart의 재구) 혹은 /*kɯ ʔslɯʔ/(정장샹팡의 재구)으로, 고대 한국어 어형 '吉支', '吉士', '吉師' 등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