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형도 (문단 편집) === 반박 === 기형도가 성소수자라는 주장은 그의 사망 장소와 독해자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문학적인 수사와 은유로 점철된 시를 제외하면 심증도 물증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 당장 바로 위의 장정일의 증언이 그러하듯 기형도의 지인들의 증언과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게이설은 신빙성이 극히 떨어진다. >죽음의 장소 때문에 기형도가 게이였다느니 무슨 불치병이 있었다느니, 혹은 자살한 것이라느니 하는 억측이 사정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떠돌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와 붙어 지내던 친구들이 다 생존해 있는 판인데 황당하고 기가 막힐 일이다. 특히 가족들이 많이 상처받았다. 시의 각광도 죽음의 센세이셔널리즘 때문이라는 말도 많았다. 독자의 환상도 존중받아야겠지만 없는 사실의 창작은 좀 곤란한 일이다. >---- >-[[김갑수(시인)|김갑수]](시인 겸 평론가), <입 속의 검은 잎> 서평 > 그 흔한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좋아하던 여성이 있었다. 여류작가 K였다. K는 그 무렵 내가 일하던 신문에 소설을 연재했던 관계로 담당기자인 기형도와 비교적 자주 접촉하고 있었다. 이따금 K와의 통화로 짐작되는 통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지만 나는 짐짓 모른 체했다. >어느 날 한밤중 신문사 근처 음식점에서 회식에 참석했다가 볼일이 남아 있어 신문사에 잠깐 들렀는데 기형도가 문화부에 혼자 남아 누군가와 소곤소곤 통화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술김에 약간의 장난기가 발동해 조용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는데 기형도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얼른 전화를 끊고 희미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깊은 밤중에 누구랑 전화하는 건가?” >“모르셔도 돼요.” 기형도는 고개를 외로 꼬며 들릴 듯 말 듯 대답했다. >“여자 아닌가, 맞지?” 내가 웃음을 머금고 짓궂게 다그치자 기형도는 말없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취재노트만 분주하게 뒤적였다. >이번에는 목청을 깔고 진지하게 말했다. “자네와 통화한 사람, 혹시 K 아닌가?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그래. 그래야 사랑으로 발전할 수도 있잖아? 그런데 말이야. K, 좋은 여성임엔 틀림없지만 자네와 나이 차이가 너무 심해. 여자가 남자보다 열 살이나 위라면 누가 봐도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잖아?” >기형도의 옆얼굴이 금세 홍조를 띠는 듯 보였다. 그는 이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항의하듯 말했다. “열 살은 무슨 열 살, 아홉 살 차이밖에 안 되는데…” >---- >-정규웅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http://shindonga.donga.com/3/all/13/108298/1|#]] 또한 결정적으로 기형도 본인의 텍스트에도 스스로의 이성애를 자연스레 표현한 구절이 발견된다. 기형도의 작품을 모아놓은 「기형도 전집」 을 보면 >안내양은 날 사랑하는 걸까? 얼굴만 좀 예쁘면 연애걸 수도 있겠는데.(p.316~317) >00과 만나 잠시 이별의 암시를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내가 대했던 많은 대화들에 대하여 그녀의 슬픔이라는 몇 줄의 눈물로 보상받는 꼴이 되고 말았다. 오, 또 이렇게 되었다. 언제나 나는 진실로 연애다운 사랑을 할 것인가. 통나무집에서 그녀가 키스를 요구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중략) 지난 81년 겨울 '하얀 집'(라면집)의 김00씨가 생각났다. 나에게 파카를 벗어준 머리가 길고 담배를 즐겨 피우던 키 큰 여자.(중략)그 여자, 내가 지금 추억만으로써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는 상현달 같은 여자.(p.327) 이렇듯 기형도가 이성으로서 호감을 가진 여인들이 여럿 언급된다. 그러나 남성에게 그러한 감정을 가졌다고 밝히는 텍스트는 어느군데도 없어 게이는 물론이거니와 [[양성애자]]로 보기에도 힘들다. 그 외 기형도 시인 20주기 추모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에도 기형도의 연애사에 관한 대목이 몇 줄 나온다. 원래 시인의 성격이 연인에 관한 자신의 연애사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니는 편이 아니었다고. 따라서 오늘날 학계에서는 기형도가 게이라는 주장은 근거없는 낭설로 여겨진다. 기형도라는 인물이 지하에서 동성애 운동을 펼치거나 동성애 탄압의 아이콘도 아니었음에도 기이하게 동성애 추문에 시달린 특이 케이스 중 하나. 고인의 명예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유가족들도 세상을 떠난 가족이 게이설로 시달리는 것에 오랫동안 아픔을 겪었다고 하니 새로운 학문적인 접근이 아니라면 가벼운 언행으로라도 시인이 게이라는 주장은 일절 삼가는 것이 좋다.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남성 기자]][[분류:옹진군 출신 인물]][[분류:행주 기씨]][[분류:1960년 출생]][[분류:1989년 사망]][[분류:뇌졸중으로 죽은 인물]][[분류:돌연사한 인물]][[분류:서울시흥초등학교 출신]][[분류:중앙고등학교 출신]][[분류:연세대학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가톨릭 신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