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경수 (문단 편집) === 정치 입문 === 대학 졸업 후 <리더스 비젼>[* 지금은 사라진 30~4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월간지였다.]의 편집부 [[기자]] 생활을 했으나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94년 [[신계륜]] 의원실에서 일하던 학교 선배의 "[[국정감사]] 기간에만 도와달라"는 부탁으로 [[여의도]]에 발을 디뎠다. 어떻게 보면 단기 아르바이트로 정치에 입문한 셈이다. 국정감사 후 신계륜 의원이 정책[[비서]]로 같이 일해보자는 권유를 했고, 이를 승낙하면서 본격적인 [[보좌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두환 군부 독재정권 하에서 국회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싶었다. 그러나 국감 기간 직접 겪어본 국회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국회에서 하는 일이 통쾌하고 보람도 컸다.”(김경수, <사람이 있었네>,2014)] [[15대 총선]]에서 신 의원이 낙선하자 15대 국회에서는 [[유선호(정치인)|유선호]] 의원실에서[* 유선호 의원이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김부겸 후보에게 패해서 낙선.], 16대 국회에서는 [[임채정]] 의원실에서 근무했다. 2001년 말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정무수석]]에 임명된 유선호 전 의원의 요청에 따라 청와대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태어나기도 전에 [[군사분계선|휴전선]]에서 장교로 근무하다가 [[월북]]했던 외삼촌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3개월만에 청와대에서 보따리를 싸서 나가야 하기도 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국민의 정부에서 그런 이유로 잘랐겠나 싶겠지만, 그만큼 청와대에서 근무하기 위해서 신원이 철저해야 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새옹지마라고, 청와대에서 나온 것이 그를 새로운 만남으로 이끌었다. [[이광재]]의 권유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팀 부국장으로 합류하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전략기획팀에서 뛰어난 업무 능력을 보여준 김경수 보좌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거쳐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 대통령 공보[[비서관]] 등을 지냈다. 대선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안면조차 없는 사이였지만, 참여정부 집권 중반기에는 어느새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