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경수 (문단 편집) === [[19대 총선|두]] [[6회 지선|번의]] 낙선, 그리고 [[20대 총선|당선]] === 2011년 야권 통합을 추진한 시민운동모임 ‘혁신과 통합’ 때부터 [[문재인]]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기 시작했다. 이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당시 주변에서 2011년 4·27 [[경남]] [[김해시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서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이 강했지만 고심 끝에 “꽃이 되기보다는 단결과 연대의 거름이 되고 싶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한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는 [[한나라당]] [[김태호(1962)|김태호]] 후보에게 패배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19대 총선]]에서 본인이 직접 [[경상남도]] [[김해시 을]] 선거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 [[새누리당]] [[김태호(1962)|김태호]] 후보와 맞붙어 47.88%의 적지 않은 득표율을 얻었으나 아깝게 떨어졌다. 이후 [[18대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의 대선 후보 수행팀을 전두지휘했다.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일했던 사이지만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경수 의원의 사이가 딱히 가깝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혁신과 통합'을 시작으로 [[18대 대선]]에 이르러서 문 대통령이 김 의원에게 대선 후보 수행팀장을 맡을 정도로 둘은 가까워졌다. 첫 대선 실패 이후 문 대통령은 어딜가나 김 의원과 함께 움직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6.4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와 경쟁했지만 이번에는 꽤 큰 표[* 353,795표(22.8%p)]차이로 낙선했다. 하지만 당시까지 보수세가 강했던 [[경남]]이었고 보수계 중견 정치인인 [[김태호(1962)|김태호]]와 [[홍준표]]의 전국적인 지명도 등의 차이를 감안하면 선출직 정치인으로서는 신인에 가까운 김경수 입장에서는 선전한 편이었고, [[김해시]]와 [[창원시]] [[성산구]]에서는 오히려 홍준표를 앞섰다. 또 이 선거가 이후 김경수에게는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도지사 선거 전부터 "미소천사"라는 전국적 팬클럽이 조직되었는데, 선출직 경험이 없는 정치인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였다. [[노사모]]가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16대 총선에서 낙선하긴 했지만 이미 재선 국회의원 경력이 있었다. 그후 절치부심 끝에 밑바닥부터 [[김해시]] 을 지역구에서 활동을 했고 민심을 얻어가는 데 성공했다.[* 낙선 후 지역 마을 회관에 회갑연이 열리면 귀신같이 찾아가 어르신들이랑 부대꼈다고 한다. 처음에는 민주당 사람이라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지만, 나중 가서는 볼도 꼬집고 술도 얻어마시는 등, 그야말로 밑바닥 민심을 긁어모았다고 한다. 그 결과 지역구 내에서는 '우리 경수'라고 불린다고. 이는 김경수 뿐 아니라 [[박재호]], [[전재수]] 등 부산, 경남지역 민주당계 정치인들의 특징으로, 오랜 세월동안 한 지역에서만 기반을 다진 지역밀착형 정치인들이 대부분이다.] 2012년 선거 때는 사실상 본인도 [[김해]]를 잘 알지 못했을 때 출마했다면 2016년 선거에서는 차원이 다른 상황에서 선거에 임했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이만기]][* 당시 현역이었던 김태호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상대가 이만기로 바뀌었다. 이만기는 2004년 총선에서 [[민주당계 정당]]인 [[열린우리당]]으로 출마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낙선하였고, 이후 한나라당 - 새누리당 계열로 자리를 옮겨 출마한 것이다.] 후보를 꺾고 무려 62.4%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더불어민주당|민주당]] 후보들 중 전국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 2위는 대구 수성구 갑에서 62.3%의 득표율로 당선된 [[김부겸]] 의원인데, 득표수로만 따지면 김부겸 의원이 1등이라고 전해진다.] [[김해시 갑]]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의 현역 의원 [[민홍철]] 후보가 재선에 성공하고, 함께 실시된 김해시장 재보궐선거 및 시의원 보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허성곤]]이 당선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김해시]]에서 완승하기도 했다. 당선되고 난 뒤 민홍철 김해 갑 국회의원 당선자, [[허성곤]] 김해시장 재선거 당선자, 김종근 김해시의원 보궐선거 당선자, 동시에 [[낙동강 벨트]]에서 살아남은 [[양산시 을]]의 [[서형수]] 당선자와 함께 [[봉하마을]]로 가서[* 이들만 간 게 아니라 경남권에 나섰던 이들 및 당직자들도 함께 갔었다고 한다. 다만, 2년 전에 눈물을 흘리면서 갔던 [[김영춘(정치인)|김영춘]] [[부산진구 갑]] 국회의원 당선자는 이번엔 다른 부산 당선자 4명과 함께 참배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봉하마을]]은 20대 국회부터 김해 갑에 속해있지만[* 현재 민홍철 의원 지역구가 김해 갑이다.] 원래 김해 을 지역구였고, 김경수 의원의 뿌리 깊은 연고 때문에 아직도 다양한 행사 때 김경수 의원이 주최측의 역할을 맡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인수위원회를 대신할 국정자문위원회에서 기획분과를 맡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