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경철 (문단 편집) === [[5.18 민주화운동]] 이전까지의 일생 === 태어났을 때는 건청인이었으나, 6살에 바위에서 놀다 떨어져 심하게 다친 것이 화근이 되었다. 3개월 넘게 치료를 받은 후 경철 씨 어머니는 의사에게 항생제(마이신) 주사 놓는 법을 배워 집에서 경철 씨에게 주사를 놓았다. 그런데 하루에 한 번씩 반 병을 놓아야 하는 것을, 어머니가 빨리 낫게 하고 싶은 마음에 그만 하루에 두 번, 한 병을 다 놓았다.[* 아무리 주사 놓는 법을 배웠어도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현재의 법이면 이건 불법 투약에 불과하다.] 당연하지만 약물 남용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경철 씨는 뇌막염을 앓다가 후유증으로 끝내 [[청각장애인]]이 되어 버렸다.[* 즉 후천적 청각장애인이다. 이런 사람을 중도실청자(中途失聽者)라 한다.] 귀가 들리지 않다보니 결국 말도 못하게 되고 말았다. 김경철 씨는 자라면서 제화기술을 배웠고 서울에 올라가 양화점에 취직해 기술을 익혔다. 광주에 돌아와서는 본격적으로 시내 다방과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주문을 받고 구두를 수선하는 일을 했다. 28살이 되던 '''1980년'''엔 같은 처지인 여자를 만나 결혼했고 둘 사이에 딸이 태어났다.[* 딸은 건청인이라고. 이런 사람을 [[코다#s-10]]라고 한다.] 얼마후 딸의 백일잔치를 했고 며칠 뒤에 가족모임을 가졌다. 처남이 [[영암군|영암]]에 간다기에 배웅을 나갔다가, 함께 일하는 친구들과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그날은 하필 5월 18일이었다.'''[*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17~18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