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경철 (문단 편집) === 사망 === >막 두들겨서, 곤봉으로 두들겨서. 경철이는 너무 많이 맞아 갖고. 악을 쓰다가, 얼마나 두들겨 버렸던가. 수 쓴다고, 거짓말한다고, 어떻게 두들겼는가. (시신을)볼 수가 없는데, 그것을 맞고 죽어버렸나봐요.(울먹이며) >---- >임금단(고 김경철 씨 어머니)(2013, 뉴스타파) 5월 18일 7공수여단은 무차별 살육작전에 나섰다. 시위했던 전남대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시위 안 한 학생이나 학생이 아닌 시민까지 무차별로 군홧발로 차고 진압봉으로 두들겨 패고 끌고갔다.[* [[김영택(1936)|김영택]] '''[[동아일보]]''' 기자 증언.] 그런 상황에 김경철씨 역시 휘말렸다.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던 김경철 씨는 7공수여단 부대원들에게 붙잡혀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받았고, 연행된 직후 국군통합병원을 거쳐 적십자 병원으로 옮겨졌다. [[파일:김경철씨사인.jpg]] 해당 사인명들을 그래픽으로 옮긴 것이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는 얼마 가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진료비 청구서의 금액이 2,100원이었다는 것을 보면 제대로 손써 볼 틈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물가를 감안해 보면 진료비 2,100원은 오늘날의 25,000원 가량인데, 사망시간이 5월 19일 새벽 3시인 것을 보면 사실상 '''응급실'''로 후송된 것으로 보인다. 응급실이 예나 지금이나 비보험에 간단한 [[의료행위]]가 주업무인 것을 생각해 보면 정황상 접수만 했을 뿐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아니면 치료를 해보기도 전에 사망했거나.] 고인의 사인명은 후두부찰과상과 열상, 뇌안상검부열상, 우측상지전박부타박상, 좌견갑부관절부타박상, 진경골부, 둔부와 대퇴부타박상이었다. 쉽게 말해 '''[[외상(의학)|뒤통수가 깨지고 눈이 터지고 팔과 어깨가 부서지고 엉덩이와 허벅지가 으깨진 것이다]]'''.[* 출처: 광주사태 사망자 검시결과 보고, 408쪽, 12.12•5.17,•5.18 국방부 보고서 70쪽,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094030|국방부 장관 증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705981|5·18 '충정명령'은 무차별진압 작전]]][* 5.18 자유공원의 입구에는 이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매우 참혹한 모습이다.] 이후 시신은 [[상무대]]로 옮겨졌으며, 광주 서구 화정동 백일사격장[* 숫자 101이 아니고 사람 이름 백일이다. 육군보병학교가 광주에 있을 때 육군이 초대 육군보병학교장인 [[김백일]]의 이름을 따 사격장 명칭으로 삼은것이다.] 인근에 암매장되었다가 며칠 뒤 겨우 발견될 수 있었다. 한마디로 가족의 동의도 없이 시신을 멋대로 가져다 암매장해 버린 것이다. 이런 기막힌 죽음을 당한 후 그의 가정은 파탄이 났다고 한다. 아내는 울기만 하다가 갓난아기인 딸도 놔두고 친정으로 떠나버렸으며, 결국 김경철 씨의 하나뿐인 딸은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