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경현 (문단 편집) == 더 크로스 시절 == 소속사의 지대한 관심과 과거의 빛나는 명예와는 달리, 연예인으로서의 김경현은 출발이 썩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1기 보컬인 김혁건의 계약 파기 및 탈퇴로 인한 보컬 교체, 그리고 여기서 비롯된 수많은 [[루머]]와 [[악플]]이 있었는데 훗날 밝혀진 팩트만 서술하자면 아래와 같다. 2003년에 데뷔한 그룹 더 크로스는 1집 앨범 타이틀곡 《[[Don't Cry(더 크로스)|Don't Cry]]》로 많은 10~20대 남성들의 인기를 끌었지만, 대중성을 별로 잡지 못한 데다[* 당시 가요 프로그램에서 45위를 차지한 것이 전부다.] 불법 다운로드까지 겹쳐[* CD나 음반을 직접 사서 듣는 시대였던지라 음원 유료 다운로드 시스템이 없었으며, 2003년 기준 소리바다 불법 다운로드 1위 곡이 바로 《Don't Cry》였다.] 사실상 상업적으로 실패한 상황이었다. '''이는 일개 네티즌의 평가가 아니라, 당시 더 크로스의 소속사였던 GF엔터테인먼트와 리더 겸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이시하가 직접 밝힌 피셜이다.''' 경제적 이익을 내야 하는 소속사에서는 보컬을 한 명 더 영입해 [[SG워너비]]처럼 3인조 체제의 R&B 그룹으로 노선을 바꾸자는 제안을 했고, 여기서 이시하는 찬성했지만 정통 록을 고집하던 김혁건은 반대했다. 이로 인해 소속사-이시하-김혁건의 의견 차이로 대립 상태가 몇 달 동안 이어지던 끝에, 참다못한 이시하는 산으로 들어가 칩거해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이시하와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해가 쌓이던 김혁건이 지인에게 '''와전된 소문을 전해 듣고,''' "이시하와 김경현이 자기 몰래 2집 앨범 작업을 했다는" 글을 팬카페에 올리고 말았다. 하지만 당시에 이시하는 '''작업'''이 아니라 '''칩거'''를 했으며, 김경현은 2004년 2월에 남자 '''솔로''' 오디션에 합격하고 곧바로 전주로 내려가 학업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즉 [[루머]]였던 것.'''[* 실제로 김경현의 학적기록과 활동 시기를 교차해보면 정말 말이 안되는 루머. ] 소속사에서는 급히 김혁건의 글을 삭제하고 해명글을 올리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김혁건의 팬들은 소속사의 해명을 믿지 않아 양쪽의 의견도 전부 듣지 않은 채로, 이시하와 특히 김경현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악플을 달면서 루머를 퍼트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2004년~2005년 당시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주장만을 무조건 따르는 분위기가 굉장히 강했고, 팩트체크라는 개념 또한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김혁건의 팬들의 행동이 정당화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 김경현이 1학기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2004년 6월 중하순 이전에''' 이미 김혁건은 소속사와 계약을 해지해 더 크로스를 탈퇴하였고, 이시하의 언급에 의하면 김경현은 '''2004년 8월 말에''' 더 크로스 새 멤버로 내정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김경현이 다시 전주로 내려가 2학기를 다니고 있었던 '''2004년 9월 중에''' 소속사 측에서 김혁건과 재계약을 시도했지만 불발되었고, 결국 김경현은 김혁건의 계약 해지와 탈퇴가 전부 마무리된 '''2004년 10월 초에''' 더 크로스 2기 보컬로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요약해서 서술하자면 '''더 크로스 보컬 교체와 김경현은 무관했으며, 가장 무고한 사람이 가장 무거운 누명을 뒤집어쓴 셈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