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규면 (문단 편집) === 이후의 행적 ===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양서적 판매원으로 일하던 그는 연해주 지역 빨치산 위원회를 지원하는 일을 담당했다. 전러중앙집행위원회는 1933년 12월 원동 해방 10주년을 기념하여 연해주 해방전쟁에서 그의 공로를 포상했다. 그런데 소비에트 연해주위원회 비서 프셰니친이 돌연 그를 체포하려 하자, 그는 동지들의 도움을 받아 연해주를 탈출해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그러나 1937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대숙청]]을 단행하면서 그의 셋째 아들 김인덕이 소련 당국에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1967년 소련당국으로부터 [[러시아 혁명]] 50주년 기념 적기훈장을 수여받았고, 1969년 2일 모스크바에서 병사했다. 향년 88세. 그의 유해는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김규면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