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기덕(1960) (문단 편집) == 생애 == [[1960년]] [[12월 20일]]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국민학교]] 3학년, 열 살 때 [[경기도]] [[고양시|고양군]](지금은 고양시)으로 이주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나온 뒤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농업학교에 진학했다. 그래서 공식 최종 학력이 [[초졸]](총회신학대학교 중퇴)인 그는 15살 때부터 [[구로공단]]과 [[청계천]] 일대의 공장에서 무거운 구리 박스를 지고 다니면서 일하고 기술을 배웠다. 그 당시 중학교에 너무나도 가고 싶었으나, [[6.25 전쟁]] 상이군인으로 다리를 절었던 아버지가 나가서 돈이나 벌어오라고 매일 밤 그를 구타했다고 한다. 20세에는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에 지원, [[부사관|하사관]]으로 임관하여 5년간 복무했다. 제대한 후에는 공부해서 [[총신대학교|총회신학대학교]]에 입학했으며, [[남산(서울)|남산]] 근처에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시각장애인]]인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30세쯤, 군 복무시절 저금한 돈과 각종 일을 하며 모은 돈을 모두 가지고 [[프랑스]]로 떠나 3년 동안 [[파리(프랑스)|파리]]에 거주하면서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독학으로 [[회화]]를 공부했다. 그런데 말이 회화 공부지, 거의 풍찬노숙(風餐露宿)의 떠돌이 생활의 연속으로, 생닭을 사서 뜯어먹을 정도였다. 32세 무렵, 낯선 땅 [[프랑스]]에서 떠돌이 무명 화가로서의 삶에 [[회의#s-2]]를 느끼던 김기덕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급속도로 영화에 빠져들었다. PD는 [[KBS]]에서 《[[생방송 전국은 지금]]》(1987)과 [[이계진]]의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1989)과 [[SBS]] 《[[출발 서울의 아침]]》(1991), [[SBS]] 《[[핫라인 70분의 선택]]》(1995)을 본 후, 1996년 이후에는 [[영화 감독]]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한다. 1993년(이 해에 결혼도 했다) 봄, [[대한민국]]으로 귀국한 김기덕은 우연히 [[영화진흥위원회|영화진흥공사]]의 시나리오 공모 광고를 보게 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입문하기로 결심한다. 이후 [[http://www.scenario.or.kr/|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교육원의 교육과정을 마친 후 1995년 '무단횡단'이란 시나리오로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정식으로 영화계에 입문했고, 그해 [[저예산 영화]] 《[[악어(영화)|악어]]》로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