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기전 (문단 편집) === 소년운동가로서의 활동 === 그 후 1921년 3월에 진주의 청소년 40명이 진주소년회를 결성하여 3월 27일에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계획하였으나 검거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이에 깊이 감명을 받아 1921년 10월 '개벽'지에 '可賀할 소년계의 자각'이란 글을 썼다. 이때부터 소년운동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하였다. 그 전부터 천도교 청년회에 몸담고 있다가 1921년 4월부터 소년부를 조직해 5월부터 천도교 청년회 소년부 총재를 역임했다. 그때부터 박내홍, [[방정환]]과 의기투합하여 어린이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어린이에게 경어쓰기 운동'도 펼쳤다.[* “아동 중에는 조선 아동의 꼴이 세계 중 제일 너저질”하다면서, 어린이들을 ‘이놈’, ‘저놈’하고 부르는 대신 경어를 쓰자고 제안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 정문에서 어린이들이 들어오면 늘 공대어로 맞이하였다.] 1922년 5월 1일에는 보성전문 5년 후배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날]]'을 제정하였고, 세계 최초의 어린이헌장인 '소년운동의 기초사항'을 선포하였다. >본 소년운동협회는 이 어린이날의 첫 기념되는 5월 1일인 오늘에 있어 고요히 생각하고 굳이 결심한 나머지 감히 아래와 같은 세 조건의 표방을 소리쳐 전하며 이에 대한 천하 형제의 심심한 주의와 공명과 또는 협동 실행이 있기를 바라는 바이라. >①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②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③ 어린이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할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이날 서울 도심에는 “어린이 해방”이라는 붉은 글씨가 선명하게 쓰여진 깃발이 나부꼈다. 선전문 20만장이 전국에 일제히 배포되었고,[* 그 선전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었다. "① 어린 사람을 헛말로 속이지 말아 주십시오. / ② 어린 사람을 늘 가까이 하시고 자주 이야기하여 주십시오. / ③ 어린 사람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십시오. / ④ 어린 사람에게 수면과 운동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십시오. / ⑤ 이발이나 목욕 같은 것을 때맞춰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 ⑥ 나쁜 구경을 시키지 마시고 동물원에 자주 보내 주십시오. / ⑦ 장가와 시집보낼 생각 마시고 사람답게만 하여 주십시오.] 어린이날 제정 기념식장에는 1천여 명의 소년들과 소년운동 관계자들이 가득 모였다.[* 천도교소년회·조선소년단·조선소년군·불교소년회 등 40여 개 소년운동단체 대표가 모여 조선소년운동협회라는 하나의 연대체를 결성했다. 이 날 행사는 바로 조선소년운동협회가 개최한 것이었다.] 당시 어린이날이 5월 1일이었던 이유는, 그날이 국제 [[노동절]](메이데이)이라는 데 있었다고 한다. 소춘과 소파는 어린이날의 제정이 어린이의 인권존중과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운동적 의미가 강하다는 이유로 일부러 어린이날을 노동절(메이데이)과 같은 날로 택했던 것이다. 그 후 어린이날은 5월 1일에서 5월 5일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5월 5일이 [[카를 마르크스]]의 생일이라는 데 있었다고 한다. [[http://blog.donga.com/confetti/archives/4148|관련 글 참조]] 그의 어린이운동에 대한 이념은 수운 [[최제우]]의 ‘사인여천’(事人如天), 즉 한울을 공경하듯 사람을 공경하라는 가르침에서 비롯된다. "어린 아이를 때리지 말라.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리라"는 동학의 인내천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점에서 유교의 장유유서 윤리를 비판하였으며, 어린이해방이야말로 민족의 진정한 해방을 가져다주는 열쇠라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민족으로 정치적 해방을 부르짖고 인간적으로 계급적 해방을 부르짖는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하되 우리가 먼저 우리의 발 밑에 있는 남녀 어린이를 해방치 아니하면 기타의 모든 해방운동을 사실로써 철저하지 못하리라 한다. ('개벽' 35호, '개벽운동과 함치되는 조선의 소년운동'에서) 어린이운동의 이념을 다지는 데만 열과 성을 다한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하기로도 유명하였다. 동네 아이들뿐 아니라 집안에서도 아들딸에게 꼬박꼬박 존대말을 썼다. 그래서 동네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하였다. 물론 어린이들에게 존댓말만 하는 데서 그친 것은 아니고, 유소년 노동 금지, 어린이 모두에 대한 취학 기회 부여, 어린이 존재를 염두에 둔 각종 시설 설치 등을 주장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