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기택(탁구) (문단 편집) == 기타 == * 27세에 출전한 [[1988 서울 올림픽]] 결승전에서 당시 21세였던 후배 [[유남규]]에게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준결승전에서 클람파를 꺾은 감각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 라켓의 러버를 일부러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는데[* 탁구 선수들에게 러버의 컨디션은 라켓의 반발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최적의 반발력으로 경기에 나서기 위해 보통 경기 몇 시간 전에 러버를 교체하거나, 또는 떼었다 다시 붙이는 작업을 한다.] 이는 '''최악의 수가 되어 돌아왔다.''' 장기인 속공을 앞세워 1세트를 21-17로 선취했으나, 2세트 경기 도중 핌플러버의 돌기가 그만 손상되는 바람에 [[https://youtu.be/1YIB9zVAmTg?t=449|경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조달환]]은 배드민턴 라켓의 거트가 끊어진 상황에 빗대어 설명했는데, 이는 무리가 있는 설명이다. 배드민턴 라켓의 거트가 끊어지면 거트의 장력을 이용해야 하는 배드민턴 종목의 특성상 끊어진 라켓으로는 셔틀콕 자체를 타격해도 네트를 넘어가지 못할 정도로 텐션이 풀려버리기 때문에 경기 진행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그렇기에 국가대표 선수들은 최소 3자루 이상의 예비 라켓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반면 탁구 속공 전형의 선수들은 핌플러버의 돌기가 손상되었을 경우 손상된 부분으로 공을 타격하면 공의 궤적이 가라앉는 것이 사실이나, 정상적이어야 할 샷에서 미스가 나거나 경기를 온전히 자신의 페이스대로 진행하는 데 무리가 있을 뿐 경기 진행 자체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운동 선수들이 올림픽 포디움에 올라가 메달을 거는 것은 개인의 욕심보다는 [[국위선양]]으로 비춰지던 당시 사회 통념상, 결승전이 한국 선수들끼리의 맞대결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쉽사리 당시의 분위기를 깨고 경기 중단을 요청해 러버를 교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후일 밝혔으며, 이를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러버를 교체했다고 해서 자신이 그 게임을 이겼다고는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최후의 수단, 즉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지도 못하고 패했다는 것이 아쉽다고 한다. 실제로 1점만 실점하면 메달 색깔이 바뀌는 벼랑 끝에 몰린 4세트 듀스 접전 와중에도 김기택은 라켓의 러버만 쳐다보는 모습을 보였고 러버의 이상은 잊어야 게임을 이길 수 있다며 해설위원들에게 지적을 당하기도 했다. * 과묵해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굉장히 달변에다가 유쾌한 성격으로, 중요한 탁구 경기들마다 해설 위원으로 섭외되었다. [[분류:1962년 출생]][[분류:청주시 출신 인물]][[분류:청주고등학교 출신]][[분류:한성대학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탁구 선수]][[분류:펜홀더]][[분류:1991년 은퇴]][[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탁구 메달리스트]][[분류:1988 서울 올림픽 탁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병역특례자/탁구]][[분류:탁구 해설자]][[분류:대한민국의 탁구 감독]]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