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대중 (문단 편집) === [[노무현]] === [youtube(iSObmtGMOac)][[제15대 대통령 선거|15대 대선]] 당시 [[노무현]] 의원의 찬조연설 [[파일:노무현_김대중.jpg]] 정치적 동지이자 대통령 선·후임자로서 궂은 일, 좋은 일도 많았고, 서로 사이가 나빴던 적도 없진 않았다. 가장 나빴었던 시절은 노무현 정부 초기 자신의 심복이었던 [[박지원]]이 불법대북송금 사건으로 감옥에 갔던 시기다.[* 그러나 질병치료로 인한 [[형집행정지]] 때문에 형량에 비하여 실질적으로 박지원이 감옥에 있던 기간은 짧았고, 최종적으로 박지원의 형집행정지 기간에 노무현이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박지원을 풀어주면서, 김대중과 노무현은 화해를 하게 된다. 기자들이 보도한 풍문의 후일담으로는 사면 후 김대중이 청와대에 사람을 보내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도 하고,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는 설도 있다. 참고로 박지원은 형집행정지 기간에도 김대중의 자택에 자주와서 살다시피하며, 당시 80대가 되어 건강이 많이 상한 김대중을 사실상 모셨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적으로는 김대중은 노무현을 굉장히 아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노무현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자]] 크게 충격을 받았고 장례식에도 일가족들과 직접 참석해 노무현의 영정 앞에서 직접 분향할 때 엄청나게 통곡을 했고, 노무현의 죽음을 두고 "내 몸의 반쪽이 무너진 느낌이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여담으로 노무현의 영결식에서 하려던 추도사는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인해 현장이 아닌 한 책의 기념문으로만 남게 되었다.[[http://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523500015|#]]] 고문 후유증 등으로 병치레는 많았어도 기본적으로 강골이어서 어느 정도는 건강했던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으며, 결국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8월 18일에 세상을 떠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