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대중/일생 (문단 편집) ==== 정권 말기의 곤욕 ==== 정권 말기에는 ‘홍삼 트리오’로 불린 '''세 아들이 모두 권력형 게이트'''에 휘말리면서 큰 곤욕을 치렀다. 먼저 그의 장남인 '''[[김홍일(1948)|김홍일]]'''이 로비로 1억 5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고, 측근(?) [[최규선]][* 이 사람은 기발한 이벤트 연출과 박학다식, 그리고 남의 말을 잘 경청해주는 사교술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형제인 전경환부터, 팝가수 [[마이클 잭슨]], [[김홍걸]], 이명박 캠프의 일부 인사까지 인맥을 넓혀 영달을 누려온 '''처세의 신'''이라 할만한 사람이다. 특정 정권 인사의 측근이라고만 부르기에는 그 네임밸류가 아까운(?) 인물!!]이 각종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된 '최규선 게이트'가 발생했다. 3남 '''[[김홍걸]]'''도 2002년 ‘최규선 게이트’ 수사 당시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36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차남 '''[[김홍업]]'''은 이용호 게이트를 수사하던 검찰이 그의 이권 개입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하면서, 청와대 비서관들을 통해 인사에 개입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고 댓가를 받은(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문제가 될만한 자금은 철저하게 피하는 기민한 처신 덕분에, 검찰에서 차남의 '''주변인물 수백명을''' 샅샅히 뒤졌지만[* 개중에는 검사가 회사를 운영하는 김 씨 동창생을 협박해 김 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강요한''' 의혹도 있다. 이 동창생은 2007년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이 겪은 일을 녹음해두었다고 한다.] 제대로된 금전적 물증은 찾지 못했다.[* 2005년 사면 조치를 받은 김홍업이 2007년 국회 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돼 재기하고 당내활동도 활발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부분에서 기인한다.] 이 스캔들의 여파로 2002년 5월 6일, DJ는 당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야 했다.[* 참고로 [[1999년]] [[옷 로비 사건]] 역시 김대중 정부의 도덕성에 타격을 가한 것이었으나, 파괴력 측면에서는 '''정권말에 검사들이 "의욕적으로" 덤벼든''' 3형제 스캔들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었다.] 2002년 6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월드컵]]에서 축구 대표팀의 4강 진출 성공에 온 국민이 기뻐하였지만, 그 날은 대통령의 아들 3형제가 홍삼게이트 때문에 [[교도소]]로 이송되는 날이기도 하였다. 이날 김대중은 [[광주월드컵경기장]]을 찾았는데, DJ와 고락을 함께한 주민들의 축하와 격려가 쏟아졌지만, 카메라에 잡힌 그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