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김대중/일생 (문단 편집) === 퇴임 후 === 한국 갤럽 조사에서 퇴임하는 해 지지율이 30%를 넘는 유이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또다른 한 사람은 같은 [[민주당계 정당]] 소속 대통령인 [[문재인]]이다.], 최저 지지율 역시 24%로 17년 기준으로 가장 높은 기록이다. 퇴임 이후에도 [[김대중평화센터]]를 설립하고 [[김대중도서관]]을 개장하는 등 고령의 나이에도 대내외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과거의 애환을 풀어나가는 활동도 진행하였는데,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으며, 선술한 대로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에게서 [[박정희|아버지]]의 탄압에 대한 사과를 받기도 했다. 이때 김대중은 박근혜를 가리켜 "동서 화합의 적임자"라는 덕담을 해주기도 했다. 원로 정치인으로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와 북한 [[핵실험]]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으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당적으로는 임기 말기였던 [[2002년]]에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으며, 그 이후로는 사망일까지 쭉 [[무소속#s-2]]이었다. 그 대신 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을 지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김대중]]은 퇴임을 한달 앞둔 [[2003년]] 1월, "향후 퇴임 뒤 국내 정치문제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퇴임 이후 실제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열린우리당]]이나 [[새천년민주당]]에서 인사를 와도 덕담만 할 뿐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는 하지 않았다.[* 반면 [[장남]] [[김홍일(1948)|김홍일]]은 [[새천년민주당]] 당적을 계속 유지했다. 이를 두고 정치적 해석이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노무현 탄핵 사태]] 때 탄핵에 반대함으로써 [[새천년민주당]]과는 다른 입장을 걷기도 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2&aid=0000022780|여야, 전직대통령에 구애 경쟁]],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5&aid=0000673224|정치권 "DJ를 우리쪽으로‥"]]] 하지만 이후 [[2007년]]에 [[열린우리당]]은 하락세를 견디지 못하고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당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때 김대중은 [[열린우리당]]을 비판한 바 있다. 민주당 분당 사태, 대북송금 특검, 안기부 X파일 사건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동시에 [[86세대]] 정치인들에게 "국민들의 뜻에 부응하지 못했다.", "86정치인들이 정치를 계속하고 싶으면 가방을 메고 대중 속으로 뛰어들어가 국민에게 잘못한 것은 사과하고 직접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1735118|열린우리당 대통합때 사과할 건 했어야]]] 고령에다가 과거 고초를 겪었던 후유증으로 다소 잔병치레[* 당뇨, 고혈압, 고관절염 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렸다. 물론 팔순이 훨씬 넘은 몹시 많은 나이에 고문 후유증, 수감 후유증까지 생각하면 병이 없는게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를 하긴 했지만, 선천적으로 몸이 강골인데다 아내 [[이희호]] 여사가 헌신적으로 도운 덕분에 퇴임 후에도 건강하게 잘 지낸 편이었다. 그러나 2009년 5월 23일, 후임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사망]]하면서 큰 충격을 받고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던 도중 노무현의 소식을 접하자 한 말이 "내 몸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다."라고 인터뷰를 했을 정도였다. >민주정부 10년(1998년 ~ 2008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ㅡ2009년 5월 29일, [[동교동]] 자택에서. [[파일:external/blogimg.ohmynews.com/1095484297.jpg|width=400]]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때는 [[휠체어]]를 타면서까지 참석했다. 그리고 비서들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끝끝내 헌화를 스스로 하면서 오열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다소 무리하는 모습을 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