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도현(1852) (문단 편집) === 대한제국 시기 === 김도현은 의병을 해산한 뒤 청기면 소청리에 은거했고, 1897년 [[대한제국]] 성립 후 전개된 [[광무개혁]]에 반대를 표명하는 상소를 올렸다. <의상팔조소>라는 제목이 붙은 이 상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나라의 망함은 부녀자가 마땅히 걱정할 것이 아니며, 씨줄이 부족하거나 그 몸에 미칠 화를 면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양산의 무너짐은 무거운 짐을 짊어진 자에게 말할 바가 아니지만, 불가피 전하는 것은 그 나라에 예가 행해지지 못할까 해서입니다. 신은 궁벽한 산속에서 초라하게 살고 있는 한낱 평민으로 어찌 감히 종묘사직의 천고대세를 더불어 논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나라가 없은 즉 집을 보존하기 불가하며, 임금이 없은즉 몸을 보존할 수 없으니 몸과 집의 존망은 임금과 나라의 유무에 관계되는 것인즉 떳떳한 충정이 격동하는 바 어찌 근심 걱정을 하지 않으며, 어찌 천지와 부모의 앞에서 부르짖을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 >크게 생각하건대, 우리 성상은 신성하고 예지로운 덕망으로 조종의 간대한 일을 이으시고 열성조의 삼가 공손한 마음을 체득하시어 태평의 치세를 가히 이루었는데, 불행히 근래 간흉들이 나라를 그르쳐 맑고 평안한 날이 없어 적게는 바르고 화평하지 못한 날이며, 많게는 변란이 일어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이는 문을 열어 적을 부르고 양식을 갖추어 적을 키운 것과 같습니다. 법령으로 기강을 세우는 일을 강한 이웃의 입에 맡기고, 시설을 다시 고치는 것도 흉악한 무리들의 손에 부탁하며, 국호를 개정하고 직위와 칭호를 함부로 고치며, 관직을 바꾸고 역기를 물나하게 하여 을미년 8월의 참화와 11월의 늑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무비를 갖추지 아니하고 성문을 지키지 않으면서 이름만 독립이요 그 실상은 마침내 멸망에 이를 따름입니다. 신은 청컨대 해서는 아니 될 8조를 죽음을 무릅쓰고 올립니다. > >첫째, 국호를 고치는 것은 불가합니다. (이하 생략) >둘쨰, 황제라 칭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이하 생략) >셋째, 관직을 폐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이하 생략) >넷째, 역기를 문란케 함은 불가합니다. (이하 생략) >다섯째, 난역을 토벌치 않는 것은 불가합니다. (이하 생략) >여섯째, 수원을 복수하지 않음은 불가합니다. (이하 생략) >일곱째, 군기를 정비하지 않음은 불가합니다. (이하 생략) >여덟째, 성문을 굳게 하지 않음은 불가합니다. (이하 생략) > >신은 가만히 생각하니 금일 힘써야 할 정사는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상의 밝음으로 지시하여 바로잡고, 고통스럽더라도 기력을 모아 조선이라는 국호를 회복하시고, 다음으로 황제의 칭호를 없애시고, 관직을 정비하여 어질고 능력있는 인물을 임명하고, 역기를 바로잡아 문란함을 없애고, 난적을 토벌하여 간악한 도적을 징치하고, 원수를 갚아 국치를 설원하고, 군대를 정비하여 밖으로 경계를 갖추고, 성문을 굳게 하여 엄하게 지킨 연후에야 나라는 가히 나라다울 것이며, 백성은 가히 백성다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백년 종사가 쉴 곳이 어딘지를 알지 못할 것이며, 미미한 신의 한 가닥 목숨도 죽을 곳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 >신은 다른 기술과 능력은 없지만 단지 한 가닥의 어리석은 충정은 있습니다. 병신년 거의에서 복수의 뜻을 조금이나마 품었으나 전도되고 낭패되어 곤액을 많이 받았습니다. 집은 패망하고 몸은 암혈에 구차하게 의지하면서도 지금의 나라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을 보니 상망이 언제까진지 모를 것 같아 차라리 분수를 지켜 안전을 도모하기보다는 지위를 떠나 한번 간장의 피를 토하여 용안을 범해서 죽임을 당하더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신은 황공함을 이기지 못해 더욱 절실하고 절박한 마음에 두려움이 지극합니다. 이후 그는 1902년과 1904년에는 의병을 일으킬 것을 촉구하는 통문을 영남 인사들에게 발송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경북 북부 일대 유림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로 부상했고, 1901년 도산서원의 퇴계 이황 위패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도산서원의 임시원장으로 추대되어 위패를 다시 봉안했다. 또한 1903년에는 경북관찰사 이헌영으로부터 오읍도집강으로 위촉받아 영양, 청송, 진보, 영덕, 영해 등 다섯 고을의 화적을 토벌하는 데 참여헀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김도현은 [[이만도]]의 초청을 받아들여 예산으로 가서 상소운동을 계획했다. 그는 안동, 풍기, 영주, 순흥, 봉화, 영양, 영해, 진보, 청송, 예안, 영양 등 각지의 유생들을 널리 규합한 뒤 영남 각 지방에 통문 <통삼남각성문>을 발송한 후 상경했다. 그러나 12월 10일 서울에 도착해보니 약속한 날짜에 모인 이는 서너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이만도와 함께 다시 통문을 보내 불의의 죄를 토벌하고 천하만국에 대의를 밝힐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는 고종에게 상소를 올리고자 했다. <의청토적복소>라는 제목의 상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은 대대로 한미한 가문의 사람으로 궁벽한 초야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 날 과거시험 보는 날 멀리서 전하의 용안을 뵈올 때 충애지심이 가슴 속에서 발하여 전하의 다스림을 도와 태평성대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임오년 변란 이후 과거를 폐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군대의 일에 마음을 두고 갑작스런 일을 막으려 하였습니다. 듣자하니 조정에서는 원수 나라와의 통교를 개화라 부른다고 들었습니다만, 개화 두 글자는 바로 망국의 조짐입니다. 갑오년 6월에 역신들이 궁궐을 범하여 임금님을 욕되게 한 것이 말로 다할 수 없으며, 우리 선왕들의 전장을 혁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을ㅇ미년 8월에는 원수 오랑캐가 궁궐을 범하여 국모가 화를 입었으니 더욱 참을 수가 없었으며, 성상께서는 또 삭방을 당하는 변란을 맞았습니다. > >신들은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분수를 어기고 거의하여 교남의 여러 고을이 한 목소리로 서로 상응하였습니다. 그러나 임금의 군대가 차례로 내려와 점차 의병들은 흩어지고 많은 군사들의 쇠잔한 목숨은 살육되었고, 문헌과 고택이 소멸되었는데도 전하를 좌우에서 가로막아 덮으니 어찌 들어 알 수 있겠습니까. 대저 토적복수는 천지의 경의이며 백성의 떳떳함이지만 도리어 저지되었으니 원통합니다. 신은 우리 전하의 이와 같은 명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설사 이와 같은 명령이 있었더라도 단언코 이는 수이와 난적이 억지로 협박하여 그런 것이니 적을 반드시 토벌하고 반드시 복수하는 거사는 장차 앞으로 있을 것입니다. > >신은 요행히 동쪽 구석에서 목숨을 부지하며 밤낮으로 북쪽 궁궐의 전하를 생각한지 10년 이래로 임금을 연모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홀연히 10월 20일의 변고가 저 [[이근택]],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 오적의 손에서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4천년 예의지국을 마음대로 원수 오랑캐에게 귀속시켰으니 이 무슨 변고란 말입니까. 전하꼐서는 40년 동안 임금으로 계씨면서 홀로 5백년 종사의 중함을 생각하지 않으시고 나라를 남에게 주려 하십니까. 팔도의 백성을 금수에게 주어서 약육강식이 된 후에는 살아남을 이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천하에 어찌 이런 망극함이 있사옵니까. > >오호라! 오늘의 형세는 거의 여지가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방도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만국공법에 손을 벌려 다른 나라의 군대를 빌려 힘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구차히 목숨을 도모하여 조종에 죄를 얻느니 차라리 피를 뒤집어쓰고 창자를 갈라 사직을 보전하는 것이 나을 것이며, 손을 거두어 포박을 받아 후세에 놀림당하기보다는 차라리 배성일전으로 존망을 결정하여 이기는 것만 못하옵니다. 엎드려 바라오니 전하께서는 뼈아픈 결단으로 복수보국의 계책으로 호령을 내리시어 중외의 군대와 백성들에게 전하의 본 뜻을 밝게 알릴 것 같으면 비록 궁벽한 시골 사람조차도 모두 눈물을 흘리며 더욱 나라를 위해 죽는 기개를 더할 것입니다. 또 억울하게 견제당하는 사정을 외국 공관에 알린다면 천하만국도 역시 우리나라의 억울함과 저 왜노의 속임수를 마땅히 공법으로 시행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다면 원수를 갚고 토우를 회복하고 난역을 제거하여 명분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통절히 생각하시어 깊이 받아들여 주십시오. 신은 변고를 듣고 통곡하며 칼날과 가마솥이 눈앞에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오나 적과 더불어 살 수 없다는 것은 신의 뜻이고 신의 바람이옵니다. 전하꼐서 복수보국하고자 함이 위와 같다고 말씀하신다면, 신은 비록 만 번 죽더라도 감히 회한이 없을 것이며, 하늘을 향해 울부짖음도 없을 것이며, 백번 절하며 죽음에 이르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상소를 올리지 못했다. 이만도가 앞서 상소를 올렸다가 별 비답을 받지 못하고 쫓겨났기에 동지들이 올려봐야 소용없다고 만류했기 때문이다. 그는 각국 공관에 포고문을 발송해 조선을 도와달라고 호소했지만 별다른 응답을 받지 못했다. 이에 그는 자결하려 했지만 동지 조병희의 만류로 실행하지 못하고 귀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