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도현(공군) (문단 편집) == 생애 == 울산 [[학성고등학교]]를 졸업 후[* 재학 당시 학생회장이었다. 고교 선배로 [[남영신]] 전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과 [[서동욱(1963)|서동욱]] 울산 남구청장이 있다.] [[1992년]] [[공군사관학교]] 44기로 입교, [[1996년]] [[임관]] 당시에는 종합 성적 4등으로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상을 수상할 정도로 우수한 생도였다고 한다. 졸업 후 [[F-5]]의 [[전투조종사]]로 복무하다 2005년 2월부터 블랙이글스에 합류했다. 2006년 5월 5일, [[제10전투비행단|공군 수원비행장]]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제53특수비행전대|블랙이글스]]의 에어쇼가 있었고, 김도현 대위는 [[A-37|A-37B]]에 올라 이륙했다. 행사 당일 11시 51분경, 각종 비행을 선보이다 나이프 엣지(Knife Edge)라는 기동을 시도한다.[* 2기의 기체가 마주보며 날아오다 좌우로 교차 후 360도 회전하며 상승하는 기동.] 하지만 김 대위의 기체는 갑작스럽게 엔진 압축기 실속이 일어나 왼쪽 엔진이 꺼지면서 상승하지 못하고, [[활주로]]로 추락했다. 파일럿 김도현 대위는 현장에서 순직하였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06/nwdesk/article/1988383_29291.html|#]] 추락사고 후, 공군은 [[대한민국 공군참모차장|공군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한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사고 조사에 나섰다. 조사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아래와 같다. [[콕핏]]에 남은 그의 시신은 화재로 인해 외형이 훼손되었지만 형체는 남아있었으며, '''오른손에 조종간을 쥐고 왼손에 스로틀 레버를 잡은 상태'''였다고 한다.탈출하지 않고 남은 이유는 관람석에 앉은 1,000여 명의 아이들을 포함한 3,000여 명의 관객들 때문이었다. 그가 탈출하고 기체의 방향이 약간 틀어졌더라면 [[2002 우크라이나 에어쇼 참사|관람석에 기체가 떨어졌을 수도 있었다.]] [* 탈출에 성공했다하더라도 관람객들이 큰 피해를 입었으면 그는 불명예 강제 예편에 구속까지 당하는 건 물론 운이 좋아 석방된다 하더라도 트라우마 때문에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것이다.] 추락 당시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A-37이 저고도에서 운용되는 기체니만큼 저고도에서의 탈출이 불가능하지는 않았을테지만, 마지막까지 기체를 조종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사고 원인은 기체 자체의 노후화였다. 더욱이나 '''사고 당일'''이 순직한 김도현 대위의 '''결혼기념일'''인지라 안타까움을 더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