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두한(야인시대) (문단 편집) === 여복 === >그 남자들, 몇 시간을 싸웠는지 몰라. 그리고.. '''젊은 남자가 너무 멋있었어.''' >----- >[[설향]] >'''그나저나~ 정~말 멋지세요, 두한 오라버니~. 나~ 오라버니한테 오늘~ 완~전히 반해버렸다니깐요?♥''' >------- >김두한이 신마찌에서 몸 팔던 조선인 유녀를 구출해 데리고 간 끽다방의 여종업원 실존 인물 [[김두한]]은 큰 키에 다부진 육체를 가졌지만 외모는 전형적인 미남 스타일과 다소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성년 이상의 김두한 역을 맡은 [[안재모]]와 [[김영철(배우)|김영철]] 모두 비교적 작은 체구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형 외모의 소유자들인데,[* 사실 1부 > 2부로 가면서 배역이 안재모에서 김영철로 교체돼서 급 노안이 되긴 했지만 이는 교체 시기의 문제이지, 김영철도 [[미중년|미남상의 배우다.]]] 여기에 주인공이라는 포지션까지 겹치다보니 작중에서 [[김두한]]은 상당한 미남으로 묘사된다. 그만큼 따르는 여자들도 상당수인데, 청년기 시절 공식 히로인만 무려 세 명이며, 비록 [[서브 히로인]] 반열에도 못 들어갔고 이렇다 할 비중도 없지만 실제 [[김두한]]의 가족인 [[이재희]]와 [[김을동]]도 등장했다. 그리고 중년기까지 합치면 [[애기보살]]도 포함된다. 그야말로 축복받은 여성편력의 사나이. 이 외에 신마찌 결투 직후 현장에 떼거지로 몰려들어 그곳을 떠나는 김두한을 설렘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는 술집 여자들이나 김두한이 신마찌 유곽에서 구출한 조선인 유녀를 끽다점으로 데려와 고향으로 돌아갈 만큼의 돈을 내어주는 것을 보자마자 원래 좋아하던 [[김무옥(야인시대)|김무옥]]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고 김두한에게 반해버린 그곳의 여종업원 등, 엑스트라 여캐들조차도 김두한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창작물 속 여복 많은 주인공이 으레 그런 것처럼, [[박인애]]와 [[애기보살]]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김두한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설향]]의 경우 처음부터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펼치다 보니 아직 어린 나이였던 김두한은 이런 [[설향]]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했고[* 김두한이 주먹 세계 왕초에 등극한 때의 나이가 19세였으므로, 이 시기의 나이는 고작 10대 중후반이었다.], [[나미꼬]]는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김두한에게 적대받았다.[* 물론 적대 관계에 있었던 혼마찌패의 수장인 [[하야시(야인시대)|하야시]]의 처제라는 이유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게다가 김두한에게 직접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박인애]]는 김두한을 [[연좌제|독립군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정하지 않는]] 집안 등쌀에 못 이겨 중추원 참의의 자제인 이군과 정략적인 결혼을 했으나, 불행한 나날을 견디다 못해 파혼하는 등[* 결혼 후 반복되는 [[의처증]] 증세를 보이면서 [[박인애]]가 밴 아이를 유산하는 동안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등, 누가 [[친일파]] 집안 출신 아니랄까봐 썩 좋은 남편이 되지 못했다.] 안타까운 결말을 맞는다. 다만, 작중 [[김두한]]의 집안 배경을 보면 이들과 맺어지지 않는 것이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인데, 김두한은 나름 뼈대 있는 명문가인데다가 독립운동가까지 배출한 [[신 안동 김씨|신 안동 김씨 집안]]의 자손이었고, 강직한 성품을 지닌 그의 친할머니도 어린 시절부터 김두한에게 항상 이런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김두한과 플래그를 형성한 히로인들의 신분을 살펴보면 [[설향]]의 경우는 기생이고, [[나미꼬]]는 일본인이며, [[박인애]]는 [[친일파]] 집안의 딸이었으니, 설사 김두한이 결혼을 강행한다 하더라도 그의 가족들과 문중에서 이들을 김두한의 배우자로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낮았던 것. 그래서 결국 친할머니의 중매를 통해 정식으로 혼인하여 배우자가 된 사람이 바로 이재희지만, 이 쪽도 그리 행복하지만은 못했다. 나라를 위한 큰일을 한답시고 집안 일을 등한시한 김두한을 헌신적으로 내조했으나 오히려 한국전쟁 당시엔 딸 [[김을동]]과 함께 김두한에게 버려지다시피 했던 것.[* 실제로 [[김을동]]도 아버지가 집안을 거의 내버려두다시피해서 고생하며 살아온 탓에 아버지가 죽고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김두한을 미워했다고 한다. 할아버지 김좌진 명의로 나오던 독립유공자 연금을 고아원에 기부하고 있었다는 걸 안 뒤에야 김두한을 어느 정도 용서했다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울에 남아있다가 결국 인민군들이 집에 쳐들어오고 말았는데, 집안에 걸린 [[김좌진(야인시대)|김좌진]]의 사진을 본 인민군 장교가 위대한 독립운동가의 집안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애기보살]] 역시 같은 시기에 서울에 남겨졌다가, 김두한과 관계가 깊다는 이유로 서울을 침공한 인민군들에게 [[납북]]까지 당하고 말았는데, 이런 부분은 [[야인시대]]의 김두한이 비판받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