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디지 (문단 편집) == 활동 == 통칭 Deegie, 데뷔 초기에는 Insane Deegie나 Tequila Addicted[* 원맨 프로젝트의 개념. 일부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된 트랙에서만 사용했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음지에서 활동했을 때는 DG.esq라는 이름을 쓰고 이외에도 있는 등 이름을 상당히 많이 썼으나 본인 내키는 대로 바꿔댄 것이라 큰 의미는 없다. 2008년 정식 컴백 이후에는 대강 김디지란 이름을 사용 중. 무브먼트 크루의 멤버이자 특유의 똘끼와 재즈식 힙합에 소질이 많은 천재형 프로듀서로 많이 알려져있다. 실용음악과의 영향인지 재즈풍이 들어간 힙합을 추구하며 정규 2집에서는 오케스트라풍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스스로의 랩을 저질 랩으로 규정하며 실제로 랩을 못하는 대신 가사 전달성과 작곡, 프로듀서, 엔지니어에 집중하고 있고 일단 재즈에 대한 넓은 지식과 프로듀서로서의 자질은 타고났다고 평가받고 있다. [* 1세대 원로 래퍼이자 실력파 래퍼로 잘 알려진 데프콘도 힙합플레이야와의 인터뷰에서 존경하는 뮤지션이자 함께 작업하고 싶은 뮤지션들 중 프로듀싱 부분에서 김디지를 꼽았을 정도다.] 그런데 가사의 경우 문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보면 가사를 잘 쓴다고 하기엔 좀 그렇다. 사회 비판한다고 쓰는 가사도 뭔가 욕설로 도배해 놓긴 했는데 뜯어보면 그냥 당연하고 막연한 가사로 점철돼 있는, '없어보이는 컨셔스랩'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 [[2015년]]에 내놓은 'Insane.D Deegie 3 (The Orchestra)'의 수록곡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가사를 보면 그냥 총체적 난국. [[얀키]]와 함께 무브먼트 크루의 대표적인 금수저 힙합퍼중 한 명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 유학을 많이 다녔다. 한국에 있을 때는 어디서 건반 하나 얻어서 원래부터 하고 싶던 음악에 대한 피가 끓었으나 그거 하나로 뭐 할 것도 크게 없었고, 가장 하고 싶던 랩도 당시에는 듀스 등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랩 외에는 알 길도 없어서 뭐가 어떻게 하는지 모르다가 대강 힙합은 비트구나...하고 생각하고 건반을 활용해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0대 캐나다 유학 생활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캐나다에 널린 스튜디오에서 무급 인턴으로 음악을 배우고 그외 생계비나 유흥비 등은 다른 알바로 때웠다고 한다. 귀국한 후 [[Pe2ny]], [[DJ soulscape]], Fantastik Dos로 활동하고 있는 명덕크랩 등과 함께 PDPB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당시 힙합씬 내에서도 간지와 저항성 등을 추구하며 진지한 얘기를 많이 했으나, 디지가 주도하는 팀은 욕설과 외설적 퍼포먼스로 점철된 공연 그룹이었다. PDPB라는 이름조차 또라이 그룹이 있다는 얘기에 취재가 와서야 서로들 이름... 우리 이름... 우물우물하다가 나오는 대로 뱉고 난 이후 핏덩어리가 돼버린 피바다, 피차 드러운건 피하고 보자 등의 뜻을 갖다 붙인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 그룹은 김디지의 욕설과 좋지 않은 행태로 팀원들이 혀를 내두르자 스스로 독립하여 원맨 프로젝트 Tequila Addicted로 활동한다. [[2000년]] 클럽 MP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MP 힙합 超에서 적나라한 내용의 No Sex, No Love라는 곡을 선보이며 비로소 본격적인 작업물을 대중 앞에 선보이기 시작했고 다음해인 [[2001년]] 첫 앨범인 Insane Deegie를 내놓는데, 역시 재지한 음악에 저질 가사가 어우러진 적나라한 음반이었다. [[2001년]] 겨울 EP 성격이 강한 앨범 The Last Winter Story를 마지막으로 외국계 무역회사 과장으로 일하고 달의 땅을 분양하는 등 비즈니스에 손을 대며 음악에서 당분간 손을 떼는 듯 했으나 중간 중간 세 장의 부틀렉 음반을 내놓기도 하였다.[* 참고로 부틀렉으로 내놓은 두 장의 앨범은 일부 물량만 풀고 재고를 모두 불태워버려 지금은 구할래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 돈주고 구할 방법이라고는 중고앨범 판매를 통해 사는 방법말고는 없다.] 두번째 부틀렉 앨범에서는 단순한 재즈 샘플이 아닌 라이브 재즈 세션곡에 랩을 얹는 등 어느 정도 변화한 음악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성향이 2집을 걸쳐 프로젝트 앨범 The Musium에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에 대해선 디지 스스로도 '재즈 샘플따서 곡만드는 건 이미 프리모가 다 보여줬다'고 언급하고 있다. [[2009년]] 발표한 비정규 싱글 개는 이전의 앨범들처럼 부틀렉으로 내놨으며 '''666장 한정으로 6,660원에 판매되고 이후 667장 부터는 18,180원에 판매'''하는 괴이한 유통방식으로 판매되었다. 예상대로 정식발매될 수 없을 법한 강도 높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사]]가 과격해서 녹음하던 도중 스튜디오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발매가 늦춰졌다고 한다. 초반에 싱글치고 엄청나게 푸짐한 트랙 리스트로 사뭇 기대를 불러모았으나 정작 뚜껑을 열자 제대로 된 곡은 6곡 정도에 나머지 트랙은 스킷 등으로 채워져 있어서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다. 일단 제목만 공개한 뒤 각종 커뮤니티들에서의 반응을 보고 이를 수록한 뒤 일장연설을 펼치는 Fxxxing VJ[* 제목만 보면 [[버벌진트]] 디스처럼 보이나(실제 곡 부제가 '디지가 버벌진트에게.... 당신의 거울'이다.) 나중에 밝혀진 제목은 Feeling VJ였다. [[4분 33초]]에서 모티브를 따온 곡.]나, 라디오 토크쇼를 듣는 듯한 10분 토론은 그야말로 리스너 우롱의 극치. 디스의 대상도 상당히 광범위했는데 조PD, 이정현,[* 이 둘은 디스가 아니라 패러디의 의도라고 훗날 발언했다. 그러나 f word를 당당히 집어넣는 바람에 상대편은 디스로 받아들였다.] [[문희준]], [[MC 스나이퍼]],[* 부틀랙 앨범 <417일간의 세계일주> 수록곡 <난 니가 정말 싫어>에서 적나라한 디스를 선보였으며, MC 스나이퍼도 3집 수록곡 <[[대화]]>에서 이를 언급했다.] [[조선일보]], __전직 대통령, 고위 관직자, 국회의원, 경찰__[* '오냐 씨발 것들아'라는 노래에서 언급.] 등을 [[디스]]했으며 특히 조선일보와 정치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강했다.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Damn EX-Presidents[* 원제는 대통령 X까이지만 앨범에 수록되면서 제목이 변경됐다.]'를 청와대 앞에서 기습공연하려다가 연행되는 되었으며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가지고 조선일보를 비난하는 곡인 'J.N.P'를 부르기도 했다. 이런 관점은 이후에도 이어져 내려와 디지털 싱글인 "Mad Bull"이나 비정규 싱글 "개"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난적인 메세지를 볼 수 있다. 아래는 디지의 2004년 부틀렉 앨범 '클리토레스'에 수록된 '오냐 씨발 것들아'[* 이 때 당시 디스 대상자는 [[노무현|대통령]], [[16대 총선|국회의원]], 비투표자 등이였다. 이 앨범의 인터뷰에서 김디지는 삼성이 소니를 제치는 등 한국의 경제력이 올라가고, 종합주가지수가 850선이 넘어감으로써 분명 한국이 풍요로와야 하는데, 다들 돈이 없고, 배고프고 힘들며, 한국에 출장올 때마다 물가가 올라가니, 이로 인해 믿었던 노통과 노통보다 더 문제였던 [[한나라당|국회]][[새천년민주당|의원]][[열린우리당|들이]] 정치를 못해 이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 비판했다. 또한 탄핵이 터지니깐 막상 투표 안한 사람들이 더 뭐라 ~~지랄~~한다고 하였다.]라는 곡의 일부이다. >Yo 잘들었어? [[2008년]]도까지 기다려 이 개새끼들아,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말라서 못 나오는데 씨발 그 때까지 입 좀 닥치고 있어 개새끼들아 그리고 [[2008년]], 끝내 직장 생활로 모은 돈으로 정규 2집을 발매하고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기에 이르렀다.[* [[토야마 코이치]] 처럼 정치권을 까기 위해 출마했다고 한다. 본인은 노무현 탄핵 정국 당시 딱 1살 모자라서 출마 못하는 바람에 [[피꺼솟]]했다고.] 선거 기간 내내 자기를 안 뽑아도 좋으니까 제발 투표장 가서 투표 좀 하라고 외치며 유세를 하였다.[* 참고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18대 총선]]은 당시 집권여당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측된 데다가 선거일 당일 폭우가 내려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당시 전국 투표율은 50%도 안되는 46% 남짓을 찍었고(...) 그가 나왔던 이 지역구의 경우, 심지어 40%도 안되는 무려 39.1%(...)라는 역대급 투표율이 나왔다.] 결과는 1,782표 득표로 지지율 1.89%. 7명의 후보자중 4위.[* 참고로, 당시 당선인은 [[한나라당]] [[이종구(정치인)|이종구]] 후보.] [youtube(8NuIMCJ1VD0)] [[3월 15일]] [[토요일]], [[대한민국 국회]] 앞에서 게릴라 콘서트 겸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끌려갔으나 곧 풀려난 후 [[홍대거리|홍대]] 놀이터에서 더 놀다 갔다고 한다. 덧붙여, 어딜봐도 합성같아 보였지만 진짜였던 포스터도 꽤나 이슈가 되었다. [[파일:김원종(벽보).jpg]] 문재인 대통령 헌정곡을 낸 적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