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락 (문단 편집) == 생애 == 918년 [[태조(고려)|왕건]]의 [[역성혁명]]이 성공하여 고려가 건국된 뒤 건국 2등공신이 된다. 927년 원보(元甫) 재충(在忠)과 더불어 견훤이 고생해서 손에 넣은 [[대야성]]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후백제]]의 장군 [[추허조]] 등 30여 명을 사로잡았다. 927년 말 [[견훤]]의 정예병이 [[신라]]를 쳐서 [[경애왕]]을 자살하게 하고 [[경순왕]]을 옹립했다는 소식을 들은 왕건이 군사를 이끌고 후백제군과 [[공산 전투]]에서 싸울 때 후백제의 매복 작전에 걸려들어 위급해졌고, 김락은 [[신숭겸]], 전이갑, 전의갑 등과 함께 왕건을 구하고 전사했다. 훗날 고려의 제16대 임금 [[예종(고려)|예종 문효대왕]]이 [[서경(고려)|서경]]의 [[장락궁]]에서 열린 [[팔관회]]에 참관하였을 때 허수아비 둘이 관복을 갖추어 입고 말에 앉아 뜰을 뛰어다녔다. 이상히 여겨 물으니 둘은 신숭겸과 김락으로 태조가 견훤과 싸우다가 궁지에 몰렸을 때 대신해 전사한 [[공신]]으로 공을 높이고자 팔관회에서 추모하는 행사를 벌였는데 태조께서 자리에 두 공신이 없는 것을 애석하게 여겼다. 그래서 풀로 두 공신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복식을 갖추고 자리에 앉게 하였더니 두 공신은 술을 받아 마시기도 하고 살아있을 때와 같이 일어나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를 신하들로부터 전해들었다. 이러한 설명을 듣자 예종이 감격해 신숭겸과 김락을 추모하는 [[노래]]인 '[[도이장가]](悼二將歌)'를 지어 두 사람의 넋을 기렸다.[* 두(二) 장군(將)을 애도하여(悼) 노래(歌)하였다고 도이장가(悼二將歌)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