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명성(1946) (문단 편집) ==== 2001년 ==== 그리고 비극의 2001년 시즌. 구단 측에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문제로 관계가 틀어진 [[마해영]]을 [[김주찬]], [[이계성]][* 아무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소리소문없이 은퇴하였다. 그리고 심판으로 KBO 리그에 돌아와서, 오심 퍼레이드로 악명을 얻는 중. 인지도 면에선 [[김풍기]], [[강광회]], [[박근영]]에 밀리지만 나름 유명하다. [[안경]]을 써서 시력이 안 좋아 그럴 수도 있다.]을 상대로 [[삼성 라이온즈]]에 보복 트레이드해 버렸고, [[임수혁]]은 이미 2000년 시즌 초에 불의의 사고로 다시는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했으며, [[손민한]]이 드디어 가동되면서 힘을 보탰지만 나머지 투수진의 부상 이탈이 늘어나며 상황은 갈수록 첩첩산중이었다. 하지만 4강과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던 상황. 2001 시즌은 유례없는 4위 싸움으로 치열했던 시즌이었다.[* 최종 4위 한화와 최종 8위 롯데와의 승차는 겨우 2게임.] 매 게임 치열한 승부로 인해 김명성 감독의 [[스트레스]]는 계속 쌓이고 있었다. [[2001년]] [[7월 24일]] 휴식일에 [[경상남도]] [[남해군]]으로 낚시를 떠나 [[친구]]를 만나고 오는 도중에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쓰려져 긴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향년]] 54세로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타계했다. 사인은 스트레스성의 심장질환([[심장마비]])로 밝혀졌으며, 평소 흡연과 음주를 자주 즐긴 것이 화근이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갑자기 팀의 선장을 잃으면서 흔들렸고, 이후 자이언츠의 암흑기를 상징하는 [[8888577]]로 이어진다. [[우용득]] 대행 체제에서 27승 22패를 해서 4위 싸움을 끌고 갔지만, 4위와 2게임차 꼴찌를 기록했다. 만일 김명성 감독이 갑작스레 타계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암흑기까지는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KBO 리그 역사상 시즌 도중 감독이 사망한 사상 초유의 사태에 결국 [[롯데 자이언츠]]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경기 연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