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무관 (문단 편집) === [[롯데 자이언츠]] 코치 시절 === || [[파일:/image/109/2010/08/13/201008131210773451_1.jpg]] || || [[롯데 자이언츠]] 코치 시절. || 2001년부터 [[롯데 자이언츠]]의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코치로서의 이름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롯데 자이언츠]] 타격코치 시절부터다. 사실 [[8888577|암흑기]] 초기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군과 2군을 오가며 코치로 일한데다 팀이 한창 최하위를 찍던 시절이라 별 주목받지 못했고, [[양상문]]이 감독으로 재임하던 2004~2005년 2시즌 동안은 잠시 팀을 떠나 있다가[* 이 시절 인천고의 타격 인스트럭터로 잠시 일한 바 있다. 그리고 김무관이 1군에 없거나 팀을 떠나 있던 시절 롯데의 1군 타격코치는 [[이종두]], [[윤덕규]], [[김응국]]이 맡았는데, 하필이면 이 때 팀이 최악의 암흑기를 달리던 시점이라 하나같이 평가가 좋지 못했다.] [[강병철]] 감독 체제로 바뀐 2006년에 다시 타격코치로 돌아왔는데, 이 때 이후로 타격코치를 맡아 [[이대호]], [[강민호]], [[전준우]] 등 수준급 타자들을 많이 키워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최악의 암흑기를 거치고 황폐화된 막장 팀의 코치를 맡아, 2000년대 후반 [[롯데 자이언츠]]의 막강한 타선을 구축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에 '''[[롯데 자이언츠]] 팬들 사이에서 거의 유일하게 안 까이는 코치'''다. 그도 그럴게 롯데 타격의 암흑기는 김무관 코치가 1군을 떠나있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마해영|마]]-[[임수혁|임]]포 해체 이후 똑딱이 일색이었던 롯데 타선을 [[이대호|거]][[카림 가르시아|포]]와 [[전준우|똑]][[손아섭|딱]][[조성환(1976)|이]]가 조화를 이룬 최강 타선으로 재구축한 건 분명 김무관 코치의 업적이다. 당시 수훈 선수 인터뷰를 하는 타자들은 너도나도 김무관 코치의 지도덕분이라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김무관 코치가 떠나고 후임으로 타격코치를 맡게 된 [[박정태]] 코치 시절에는 주구장장 밀어치기만을 강조한 결과 타선의 장타력이 크게 줄면서 타격이 폭망했다[* 밀어치기의 강조는 사실 [[박정태]] 본인의 의중이라기보다 양승호 감독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박정태]]나 [[양승호]] 감독이나 모두 밀어치기를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박정태]] 코치는 레전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주님태]]라며 무섭게 까였다. ~~있을 때 잘해~~ 김무관 코치는 2000년대 이후 [[박흥식(야구)|흥식매직]]과 함께 국내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는 타격코치이다. ~~SK팬: 걍 돌아가~~ 김무관 코치 1군 재임시절 롯데자이언츠 팀타격 성적은 다음과 같다. 06 → 10 년으로 가는 동안 팀득점 상승 추이에 주목 2001년 : 팀타율 0.280 팀홈런 121, 718득점(133경기). 팀타율 1위 2006년[* 시즌 중반 1군 승격] : 팀타율 0.250 팀홈런 88. 488득점(126경기).[* 역대 최악의 투고타저 시즌. 그나마 김무관 코치 승격 후 상당히 오른 타율이 이 정도이다.] 2007년 : 팀타율 0.270 팀홈런 76. 533득점(126경기). 2008년 : 팀타율 0.282 팀홈런 93. 624득점(126경기). 2009년 : 팀타율 0.277 팀홈런 121. 637득점(133경기). 2010년 : 팀타율 0.288 팀홈런 185. 773득점(133경기). 2011년 : 팀타율 0.288 팀홈런 115[* 가르시아가 떠났다]. 729득점(133경기). ~~그리고 김무관 코치가 떠난 2012년부터 롯데는 거짓말같이 추락했다. 코치 때문만은 아니고 주축 선수들이 떠난 탓이 크지만.~~ 2008년부터 가을야구에 진출한 롯데의 성적은 대부분 로이스터의 노피어야구 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06년부터 시작된 팀타격의 상승 곡선과, 그 시기 강민호 등 주축 타자들의 성장 추세를 보면 김무관 코치의 공을 절대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시기에 전성기를 보낸 주요 타자들은 다음과 같다. 물론 이들의 성적 중 어디까지가 타격코치의 몫인지는 명확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롯데에는 김무관만 있었던 게 아니다. 야수 육성과 리빌딩 능력은 역대급이었던 [[강병철]]도 있었다. * [[강민호]]: 05년 0.243 2홈런 → 06년 0.251 9홈런 → 07년 0.271 14홈런 → 08년 0.292 19홈런 → 09년 부상 → 10년 0.305 23홈런 * [[이대호]]: 06년 트리플크라운.[* 김무관코치 부임 첫해에 포텐이 폭발한 것은 사실이나, 김무관코치가 시즌중반 승격되기 전 시즌 초부터 이미 폭발중이었다.] 10년 트리플크라운+7관왕 * [[전준우]]: 09년 0.220 2홈런 → 10년 0.289 19홈런 → 11년 0.301 11홈런 * [[홍성흔]]: 09년 롯데 이적 후 4년간 선수생활 최고의 시즌을 보내었다. ~~3년연속 타격2위 콩라인~~ * [[카림 가르시아]]: 용병이므로 코치 덕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하긴하다. * [[손아섭]]: 08년에 첫 3할을 치며 두각을 드러내었다. 사실 김무관 코치 떠난 이후가 진짜 전성기. 사람 좋아 보이는 모습과 달리 성격이 있다. 2009년 롯데와 SK가 한때 빈볼시비 등으로 인해 양 구단 간 감정이 한창 좋지 않았던 시절, [[조성환(1976)|조성환]]이 SK [[채병용]]의 공에 광대뼈를 맞고 실려가자 순간 분노해 문학구장 덕아웃을 뒤엎은 적이 있다. [[나는 갈매기]] 문서와 해당 [[https://www.youtube.com/watch?v=SGVa4GKxqqs|영상]] 참조.[*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몇 년이 지난 2015년 김무관은 빈볼 사건 당시 상대팀이었던 [[SK 와이번스]]의 타격코치로 오게 된다. ~~그리고 팀 타선을 홀라당 말아먹었다~~ ~~과거 빈볼사건에 대한 복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