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무관 (문단 편집) === [[LG 트윈스]] 코치 시절 === || [[파일:external/sportsworldi.segye.com/20111116002422_0.jpg]] || 앞에 있는 선수는 2012년 신인 [[서상우]]. 2011년 시즌 후 [[김기태(1969)|김기태]]가 감독으로 취임하자 [[LG 트윈스]]에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10241825203110=|1군 타격코치로 입단]]했다. ~~터지지 않는 LG의 많은 우타자들의 포텐을 터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LG와 별다른 인연이 없었기에 의외라는 평이었으나 사실은 인천고 직계 후배이자 같은 삼미 원년 멤버였던 [[김진철(야구)|김진철]] 스카우트팀장 인맥으로 들어온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이대호]]도 나간 마당에 또 한명의 타선 버프를 책임쳤던 김무관 타격코치마저 나가자 절망 상태에 빠졌는데, 다수의 팬들은 예견된 일이었다며 꼴런트를 신나게 깠다. 떠난 건 김무관이 먼저인데다 매년 눈에 띄는 성과를 냈지만 연봉은 1억 원을 넘지 않았다는 것. 코치의 연봉이 1억 원을 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롯데가 김무관 코치에 대한 처우가 나빴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김무관 코치의 독보적인 업적을 낸 만큼 롯데 프런트도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했어야 했다. 과거 김무관을 데려올 때 구단에서 먼저 러브 콜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연봉을 깎아서''' 데려왔다고 한다. 아무튼 김무관 코치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 LG는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했고, LG로 옮긴 이후 억대 연봉을 받았다. 또 서울 생활의 메리트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호]]의 연습경기에서 활약을 보고 [[일본프로야구]] 코치들이 "어디서 그런 좋은 스윙을 배웠냐? 그 스윙을 익히려면 1~2년은 힘써야 되는데..."라고 평가를 내렸다. 시범경기가 중계되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타격코치가 고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던 [[이대형]]의 저주받은 하체가 확연히 고정된 모습을 보여 줘 수많은 LG 팬들이 쥐레발을 떨게 만들었다. 그 놈의 엉덩이부터 1루로 달려가는 타격이 어느 정도나마 고쳐진 모습이라 벌써부터 무관매직 소리가 나오기 시작. 하지만 시즌에 들어가자 팬들을 희망에 부풀게 만들었던 [[이대형]]은 어느샌가 그놈의 깝깝한 타격 자세로 복귀해 겨우 2할에 머무는 모습을 보여 줬던지라, “역시 안 될 놈은 안되는구나” 라는 말이 나오는 실정이었다.[* 이대형은 기아로 이적하자마자 김용달 코치가 전성기 시절 가르쳐준 타격폼에 약간의 변화만을 주어 다시 대성했다. 김무관 코치의 유일한 실책쯤 되겠다.] 대신 [[이병규(1974)|이병규]]의 초반 부상 이후 LG의 4번 타자가 된 [[정성훈]]이 4경기 연속 홈런을 비롯한 귀신같은 활약으로 팀 상승세를 이끌어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더욱이 [[정성훈]]이 인터뷰를 통해 특별히 김무관 타격코치의 지도에 감사를 표하자 무관매직의 실존이라며 감격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물론 [[FA로이드]]가 더 크기는 하겠으나 [[정성훈]] 이외에도 [[오지환]], [[이병규(1983)|이병규]] 등이 전보다 명백히 밀어치는데 능숙한 모습을 보여줘 김무관이 가진 지도력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수비형 ~~수비밖에 못 하는~~ 포수 [[김태군]]도 서서히 밀어치는 타격으로 타율이 올라갔고, 엘지의 하위 타선들은 철저한 밀어치기를 통해 어떻게든 바깥쪽 공에 대한 대처능력을 올렸다. 그리고 2013 시즌에는 [[오지환]]이 리드오프로 자리매김했고, 타격에 재능이 없다던 [[손주인]]이 LG 이적 후 각성하는 등 무관 매직은 여전히 실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대신 김무관도 못 고치는 [[이대형]]의 타격은 다들 포기하는 상황. [[이대형]]까지 고치면 그건 매직이 아니라 닥터 무관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2014 시즌에는 LG의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노장들을 대체할 2군 내 타자 유망주들의 기량을 2군에서 끌어올리기 위한 선택으로 보여진다.[* 공식적으로 [[김기태(1969)|김기태]] 1군 감독의 말에 따르면, 코치로서 지도자 생활을 한다는 것은 종국에는 감독을 할 수도 있는 것인데, 1군 감독을 맡기 위해서 2군 감독 경력은 필수나 마찬가지고 김무관 코치의 경력과 나이를 봤을 때 2군 감독을 할 시기였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김기태(1969)|김기태]] 본인도 어느 정도 타격 쪽에는 조예가 있다 보니 2군에서 타자 유망주 육성에 전념하도록 한 것으로 판단된다.] 2014년 4월 [[김기태(1969)|김기태]] 감독의 자진 사퇴 후 [[양상문]] 감독 체제로 전환되면서 [[조계현]] 前 수석코치가 새로운 2군 감독으로 임명되자, 1군 타격코치로 복귀했다.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1할 타율에 4할 출루율이라는 괴리한 기록을 쓰던 작뱅을 4번타자로 만들었고, 스나이더에게 콘택트렌즈를 씌워 포스트시즌 맹활약을 만드게 한 주역이긴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