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무성 (문단 편집) === 정치 성향 === 여러가지 막말에다 꼰대 발언으로 논란을 만들긴 했지만 2010년대 중후반까지 생존해 있는 대표적인 새누리당 내 비박 및 [[민주계]](김영삼-이회창의 노선을 따르던 '''개혁보수 세력''') 인물이다. 이전의 민주계들은 이회창의 은퇴 후 보스를 잃어 혼란을 맞게 되었고, 이명박때 18대 총선에서 수가 많아진 친박의 견제를 받다가 박근혜 시점 들어서는 거의 새누리당에 남아있지 못 했는데, 유승민과 같이 비박의 대표 이미지를 맡았다. 김무성은 상도동계, 유승민은 이회창계 였다는 점이라는 특징도 있다.[* 다만 이회창도 비록 부하는 아니었지만 김영삼이 정계로 끌어들인 인물이었다.] 그 외에는 80년대에는 [[통일민주당]](현재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의 개혁보수/[[민주계]]/[[상도동계]] 세력의 근원)에서 3당 합당에 반대하여 중간에 떠난 인물들과는 달리 김영삼을 계속 모셨다. 과거만 하더라도 논란 항목에 써있듯 '난 [[노무현]]'''이'''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상태를 의심해봐야 한다.', '[[5.16 군사정변|5.16]]은 혁명이다' 등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저격수로 명성을 떨쳤으나, [[비박#s-4|비박계]]의 대표 주자가 된 2010년대 중반쯤부턴 노 전 대통령이 묻힌 [[봉하마을]]도 들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 열창과 함께 5.18 민주화 운동도 치켜세우고 있다.[* 김영삼 총재 밑에서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하는 걸로 [[민주계]]로서 정치 인생을 시작했기 때문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현재 다른 보수 진영 정치인들과는 다를 수도 있다. 애초에 이명박근혜 이전, 민주계가 보수정당을 장악하던 김영삼-이회창 시기엔 한국 보수세력이 거의 민주세력/개혁보수 세력이었기에 5.18 때면 별 논란 없이 민주당과 함께 가서 나란히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잘만 불렀다. 물론 이 부분에선 김무성 말고도 비슷한 입장을 보이는 보수 정치인들(대표적으로 이재오, 서청원, 홍준표)이 꽤 있다.] 과거 발언들에 대해서도 '내가 돌 맞아도 할 말 없다'는 식으로 사과하는 등 급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난 그분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하며 고인의 차남인 김현철 교수와 함께 상주를 섰을 정도다.[* 다만 김현철 교수와는 원래 사이가 나쁘기로 유명했다. YS가 투병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김현철 교수가 '김무성 의원은 친박, 비박 사이에서 줄타기나 하지 말고 1년 이상 입원 중인 아버님 병문안부터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오'라고 디스한 적이 있었을 정도. 이후 김무성이 병문안을 하긴 했지만 YS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한 거치곤 정작 YS가 투병 중일 때 소홀했었단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즉, 이러한 옛일을 미루어 볼 때 YS가 세상을 떠난 뒤 그리 지극정성을 보였던 건 고인에 대한 존경심도 있겠지만, 친박/비박 갈등이 고조되고 자신이 친박에서 비박으로 포지션이 바뀌면서 고인이 과거 가지고 있었던 부울경 지역의 지지세를 노린 정치적 제스처였을 공산도 배제할 수는 없다.] 어찌되었든 유승민과 더불어 여태껏 살아있던 입지있는 민주계/개혁보수 세력이었고, 유승민과 함께 '''[[비박]]'''을 상징하는 유력 정치인이었기에 새누리당의 민주계는 박근혜의 횡포에 맞서 필사적으로 김무성을 당 대표로 올려놓고 유승민을 원내대표로 세웠다. 박근혜 정부동안 국민들이 박근혜의 능력에 대해서 여론이 안 좋아지는 시기에, 비박으로서 보수진영에서 유력한 대선주자로 뜨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김무성-유승민을 박근혜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친박과 연대한 단체인 어버이연합이나 박사모 등이 유승민과 김무성을 향해 깽판을 부렸고, 결국 친박은 민주계를 어떻게든 밀어내고 축출하면서 민심도 잃게 되어 김무성도 몰락, 민주계의 마지막 기대도 사라진다. 의외로 [[사형]]에 반대하는 등, 진보적인 면도 있다.[* 사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지점은 각 나라의 정치지형마다 차이가 있는 편이다. 이를테면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는 낙태에 대한 견해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지점이지만, 기독교국가가 아닌 한국에서는 그냥 각 개인의 신념에 따라 다른 편이라 보수적인 사람이 의외로 낙태를 찬성하는 경우도 많다. 정치인의 '의외의 면'은 이런 부분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2016년엔 [[새누리당]]에 '난 경제는 중도, 안보는 보수'라며 경제적으로 좌클릭해야 한다는 뉘앙스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대권병 걸려서 좌우 가리지 않고 있다'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으나, 대권을 생각해 중도 & 진보 쪽의 마음을 얻기 위한 행보인 것인지 아님 진짜로 심정적 변화가 있는 건지는 본인이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김성태, 오신환, 하태경 등 김무성 대표와 가까웠었던 의원들이 대체로 온건파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아 그들과 보조를 맞추는 것일 수도 있다.[* 나중에 하태경과 오신환은 범[[친유]]계가 되었다.] 그리고 [[바른정당]]으로 이적하고 나서는 과거와는 달리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은 삼갔다. 이후 복당하면서는 예전대로 우경화하는 중이다. 2017년 5월 캐리어를 보좌관에게 '노 룩 패스'하는 병크를 터트렸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권위주의 타파가 정계에서도 중요한 트렌드가 된 현실을 완전히 역행함으로서 본래 있던 '권위적인 꼰대' 이미지를 완전히 굳혀버렸기 때문이다. 정말 보좌관과 그만큼 격의없는 관계였다면 억울할 소지가 있겠지만 공인으로서는 분명 경솔한 행동이었고 해명 요구에도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며 더 논란을 키웠다. 국회 내 가장 대표적인 [[개헌]]론자 중 하나이다. 여기서 개헌이란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뜻하며, 본인 스스로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다고 한다. 대개 대권과 먼 인물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를 추진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무성의 경우 한창 대권주자 1위를 하던 당대표 시절부터 개헌을 주장했다. 이런 것을 보면 소신을 가지고 행동하는 편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