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무성 (문단 편집) == 성품 == >김무성 대표는 갈등을 부드럽게 만드는 통합의 리더십 갖췄다. >---- >- 정의당 [[심상정]] >김무성은 누구보다 폐활량이 큰 정치인이다. >---- >- [[이윤석(정치인)|이윤석]] 계파와 인맥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한국형 정치 리더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모셨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스타일을 닮은 점이 많다. 2016년까지 비박계인데도 당권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은 비박계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김무성-유승민으로 이어지는 나름 강력한 계파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친박(진박)을 이길 수 없었으니 망정이지 2016년까지의 새누리당 당세를 생각하면 김무성의 계파는 굉장한 수준이었다.] 좌성태 우학용으로 대표되는 좌장들을 중심으로, 그의 주위에는 그를 따르는 비박계 의원들이 즐비해 있다. 비단 계보원들 뿐 아니라 [[문재인]], [[박지원]], [[심상정]] 같이 성향상 정 반대의 진영과도 인간적으로는 가까이 지내는 걸 보면 상당한 친화력과 붙임성의 소유자로 보인다. 그의 측근이었던 [[장성철]] 시사평론가는 김무성 전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만큼 김무성의 인격을 긍정적으로 평했다. 다른 의원들과 달리 확실히 주말 휴무를 보장했고, 야근을 할 일이 있다면 보좌관들은 전부 집으로 보내고 혼자 사무실에서 일을 하던 스타일이었다. 이 때문에 근속 연수도 상당히 긴 편에 속했고 관례를 깨고 인턴들에게도 퇴직금 정산까지 확실히 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의원실 전 직원을 불러서 지위고하 막론하고 의견을 구하고, 그 의견에 대해서 가부로 부쳐 결정한다고 한다. 이렇게 비일비재하게 사안을 결정하다보니, 말단 직원들도 눈치 안보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또한 김무성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런 사안 결정방식에는 김무성이 속해있었던 상도동계 방식을 착안한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김영삼 대통령도 이러한 방식으로 사안을 결정했다고 한다. 초면인 기자에게 격의 없이 반말을 하는 모습이나 깊은 고민 없이 직설적인 말을 툭툭 내뱉는 모습만 보면 권위주의에 찌든 정치인으로 비춰지는 면도 있으나, 실제로는 국회 내에서 그 누구보다 타협을 중시하는 면도 있다고 하며 김무성-유승민 투톱 체제 당시, 국정 운영이 원활해 야당에서도 평가가 꽤나 좋았다고 한다. 직접 만나 겪어 본 사람들은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고 평하기도 하며, 따뜻함을 느낀다고 한다.[* 정계은퇴 이후 김무성이 박근혜를 비판하면서 박근혜의 전임자인 이명박을 상당히 높히 평가한 적이 있는데 원내대표 시절 세종시 수정안으로 한참 싸울 때 MB가 자신을 청와대로 불러서 관련된 상의를 하다가 "김 대표 우리 막걸리 한 잔 하자"며 대뜸 막걸리를 가져와서 말 놓고 형님 동생하며 회포를 푼 일화를 소개하며 MB는 기업가 출신이고 소통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직언을 해도 곧잘 받아들이고 참모진과 당의 의견을 정책에 많이 반영하는 스타일이였는데, 박근혜는 어려서부터 공주님처럼 자란 데다 오직 [[최순실]]하고만 소통해서 독불장군에 상명하복식 충성을 요구해서 잘 안 맞았다고 한다. 그만큼 김무성이 소통을 중시하고 인간적인 대화를 즐기는 스타일인 셈이다.] 정치 행보나 스타일은, 이상과 신념에 집착하지 않고 힘에 부치면 뜻을 접는 현실주의형이다. 좋게 말하면 현실주의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든 주장을 뒤집는 모습에서 비굴함이 엿보이는 건 사실이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고개를 숙이는 경우가 많았다.[* 근데 이건 김무성 입장에서 보면 할 말이 좀 있다. 정계 은퇴 후에 각종 방송에 출연해서 밝힌 바로는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과 담판을 짓기 위해 청와대에 전화를 걸었는데 연락을 받은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이 "형님 왜 이러십니까, [[문고리 3인방|다]] [[최순실|아시면서...]]"라며 난처해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대통령을 제끼고 최고위원회의를 열면 친박 진영의 [[서청원]], [[이인제]], 그리고 비박계 대권 주자로 도약하겠다고 분탕질을 하던 [[김태호(1962)|김태호]]가 번번히 딴지를 걸고 그나마도 유승민이 같은 편이 되주었지만 유승민이 쫓겨나다시피 한 다음에 후임으로 온 [[원유철]]은 친박으로 전향한 것을 넘어 서청원보다 더 심하게 김 대표를 몰아세우는 바람에 홀로 외로운 싸움을 했었다. 이런 게 쌓이고 쌓이다 20대 총선 공천파동 때 이건 아니다 싶어서 [[새누리당 대표 직인 날인 거부 사태|옥새 들고 날아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참고로 위에 언급된 현기환 전 수석이나 친박계 최고위원들은 그나마도 말이 통하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친박 중에서도 가장 말이 안 통하고 꼬장꼬장한 사람이 바로 [[이한구]] 전 공천관리위원장이었는데 이 때문에 친박 진영에서도 핵심이라 분류되던 최경환이나 윤상현은 독불장군에 고집센 이한구를 탐탁치 않아 했다고 한다. 이한구의 나이나 정치 짬밥이 이들보다 높고 사실상 정계 은퇴를 앞둔 상황인지라 함부로 건드리기에도 어려웠던 상황.]정치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러 모로 연구 대상인 입체적인 캐릭터다. 더불어, 가정에 대한 애착에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도 아내도 모두 반대했던 정치 일에 뛰어든 탓에, 밤 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경우가 잦아 아내와 자식들에게 심리적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SNS에서 게재되는 사진들 역시 정치 행보보다는 가족, 특히 손주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