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민기(1977) (문단 편집) === 프로 경력 === 1997년 고졸우선지명을 받아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주로 [[중간계투]]로 등판했으며, 간간히 마무리 전환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영 좋지 않아 다시 계투로 돌아갔다. 데뷔 초창기에는 선발로 뛰었고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선발 투수]]로 나서기도 했다. 유망주로써 기대와 달리 프로에선 기대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했으며, 2002년 좀 날아다니는 거 같더니 제구가 안 잡혀서 계속 부진했다. 2008년까지 매 시즌 꾸준히 1군에서 모습을 보였지만 2006년(55경기 6홀드 6세이브), 2007년(69경기 17홀드 1세이브)을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믿을 만한 중간계투라는 인식을 심지 못했다. 그나마 커리어하이였던 2007 시즌의 평균자책점도 4점대다. 이 두 해는 극심한 투고타저 시즌이었으니 더더욱. 연도별 성적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시즌에 참담한 방어율을 찍었다. 이런 선수가 300경기 넘게 등판했다고 하니, 당시 LG의 투수 자원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기를 패전조 내지 롱 릴리프로 뛰었고, 이런 선수는 어디에든 한 명쯤 있기 마련이다. 전성기 구위는 꽤 괜찮아서 선발 중간계투 마무리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막 굴렀는데, 구위를 말아먹는 제구 때문에 시즌 막바지 가면 결국은 패전처리. 선발투수로서의 커리어하이는 2002년인데 LG 선발 중 가장 낮은 방어율인 3.18을 기록하며 토종 에이스 역할을 했었고 LG 트윈스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에 기여를 했다. KBS에서 베테랑 야구 캐스터로 활동한 덕수상고 대선배인 [[유수호(1947)|유수호]]는 김민기에게 "게으른 성격 때문에 더 크지 못했다"는 쓴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그로 인해 [[방화신기]] 2기 멤버 중 한 명, 김민기름으로 불렸다. 2009년엔 부상으로 3경기밖에 나오지 못했고, 결국 2010년 5월 26일 투수 [[정성훈(1977)|정성훈]]과 함께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되었다. 이후 기회를 노리며 [[김성근]] 감독이 있는 SK 이적을 타진했지만, 부상이 악화되어 은퇴했다. 통산 성적은 307경기 33승 39패 14세이브, [[평균자책점]] 5.04. 그나마 인상적인 기록이 하나 있는데, 1999년 5월 17일 잠실 두산전에서 7회에 1이닝 4K를 잡아낸 게 있다. 이후 7,288일이 지난 2019년 4월 30일 잠실 kt전에서 [[차우찬]]이 5회초에 4K를 잡아 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