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반굴 (문단 편집) == 대중매체에서 == 화랑이라는 점 때문에 대부분의 영상매체에서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묘사되는데, 아들 [[김영윤]]이 있었던 것을 보면 실제로는 20대는 넘었을 것이다. * 1992년 [[KBS]] 드라마 <[[삼국기]]>에서는 비교적 [[고증]]에 충실하게 묘사되었는데 여타 매체처럼 반굴이 단기 돌격을 하다가 전사하는 것이 아니라 보졸들과 함께 대열에서 나란히 싸우다가 난전 중에 전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 2003년 개봉한 영화 <[[황산벌(영화)|황산벌]]>에서는 '''왜 [[김관창|관창]]만 뜨고 반굴은 안떴는지'''에 대한 아주 명쾌한 답이 나온다. 선뜻 나설 용기가 없는 반굴을 설득하는[* 반굴은 처음에는 "고위층이 죽어야 한다"는 아버지 말에 아버지가 죽으려는줄 알고 "아부지가 죽을라캅니꺼? 사나입니데이" 같은 말이나 하며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후 장면에서 [[김품일]]한테 떠밀리는 관창이 "진짜 개죽음 아이지예?"하며 애써 독한 얼굴을 짓는 것과 대조적이다.] 아버지 [[김흠순]]은 "니 폼나게 죽으면 니 천년을 산데이!", "먼저 가는 놈이 장땡이다, 니 사나이제?!", "내가 가서 죽으면 약빨이 안 먹힌데이..." 같은 소리나 하고 있고 기껏 마음 다잡아 먹고 적진 앞으로 돌진했지만 괜히 창 휘두르면서 "칼 받으라"카고 자기소개 한답시고 [[김유신]]의 조카이자 사위[* 근데 김유신의 사위라는건 <[[화랑세기]]>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한국]] 상고사가 <화랑세기>에 의해 얼마나 오염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라 했다가 거시기에게 "개족보" 소리나 듣고 [[계백]]에게 나오라고 소리 지르다가 "니 주둥아리에서나 존댓말 나오라 캐라!"라는 소리나 듣던 중 결국 백제군이 성벽에서 던진 창 1번에 꿰여 허무하게 죽는다. 문제는 [[시체]]가 신라 진영으로 전달될 때 '''김유신과 다른 [[장군]]들이 그걸 못봤다!'''[* 그 때 김유신은 날만 궂으면 삭신이 쑤신다는 늙은 병사들을 찾아가 "비 오려나" 물어보던 중이었다.] 사실 2번째로 나선 관창만 목격하게 되는데 어처구니없이 죽은 반굴과는 달리 관창은 어찌어찌 계속 살아남아서 좋은 본보기도 보여줬다. 등장부터 퇴장까지 줄곧 어리버리한 모습에 백제군의 놀림감만 되는 등 실상 이 영화에서 [[개그]]스러운 분위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이후 반굴과는 달리 진지하고 날카로운 모습으로 나오는 관창이 등장하면서부터 조금씩 극의 분위기가 어두워지며 심각해진다. 어쨌든 천년 지나서도 지금까지 역사에서 언급됬으니 김흠순의 말이 실현됐다. * 2012년 [[KBS]]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는 제57회에서 등장해 단기로 나아가는데 [[백제]]군 성채 앞에서 계백의 휘하 장수와 겨루다 [[사망]]한다. 사망 후에야 화랑이라는 걸 알게 된 백제군 장수들이 모두 놀란다. 시신이 [[신라]]군으로 돌아간 뒤에는 아버지 김흠순이 그의 [[시신]]을 안고 울고 반굴의 죽음을 알게 된 [[화랑도]]들이 달려와 그 시신을 목격하는데 관창이 "그의 죽음을 칭송하지 못할망정 왜 비통하게만 있느냐"며 김유신 이하 신라군 장수들을 질책한다. [각주] [[분류:660년 사망]][[분류:신라의 화랑]][[분류:삼국통일전쟁/사망자]][[분류:김해 김씨]]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