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보현(북한) (문단 편집) == 여담 == 당시 노인으로서는 장수하여 84세의 고령으로 사망했다. 비슷한 시기를 산 이승만과 함태영 정도는 아니더라도 평균 수명이 60대 정도였던 당시로서는 오래 살다간 셈이었다. 심지어 자기 아들인 [[김형직]]보다 29년이나 더 살다 갔다. '''[[김일성|자신의 손자]]가 [[6.25 전쟁|씻을 수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저지르고 그 책임을 [[남로당]]에게 돌려 숙청하는 꼬라지까지 다 지켜보고 간 것이다.''' 사실 관료로써 재능이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고 이 때문에 농사지어 겨우 먹고 사는 처지가 되었다가 말년이 되어서야 손자의 덕을 봐서 드디어 자리를 얻었지만 이미 북한 정부가 수립될 때 쯤이면 나이가 들었던 탓에 은퇴한 인물이라 김일성과 그 형제를 기른 것을 빼면 그리 특출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북한]]에서 우상화를 위하여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면서까지 우상화 되고 있다. 완전히 별 거 없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의 할아버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급특별고문역보좌관'이라는, 이름만 그럴듯한 보직을 받아 죽을 때까지 김일성에게 예우를 받으며 살다 갔다. 농업 간부 재교육을 위한 김보현대학은 1994년 그의 이름을 따서 개칭한 명칭이며, [[만경대(북한)|만경대]]의 묘지에는 그의 반신상이 세워져 있다. [[김일성]]에게는 할아버지이지만 1912년 생인 김일성보다 5살 연하로 1917년 생인 [[박정희]]의 아버지인 [[박성빈]]과 1871년 생 동갑내기이다. [[박성빈]] 쪽이 [[박정희]]를 무려 46살에 낳았기 때문이다. 물론, 김보현과 김일성 사이에 들어가는 [[김형직]]은 1894년 생으로 박성빈의 차남 박동희(1895~1967)와는 불과 1살 차이밖에 안 난다. 처 이보익과 함께 김일성을 "일성아" 혹은 "성주야"라고 부를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이었다. 그외에 사적으로는 [[김책]], [[최현]], [[최용건]] 등 뿐이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보현, version=11, paragraph=3)] [[분류:1871년 출생]][[분류:1955년 사망]][[분류:김일성 가문]] [include(틀:포크됨2, title=김보현(북한), d=2023-02-10 14:17:3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