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본좌 (문단 편집) == 음란물 공유 == 원래 '토토디스크'라는 [[웹하드]]에서 kimcc란 닉으로 활동(일명 김C, 가수 [[김C]]로 오해받았다), 대한민국 야동의 선구자였던 stoangel[* 대한민국 야동의 역사를 열었던 시조격 인물로서, 처음으로 셀 계열과 렌탈 계열을 구분하고 오픈냅을 뚫어 본격적인 유통로를 개척했다. 십수년이 지나고 VR 야동이 등장했을 때도 서양쪽 유통의 본원인 비공개 트래커와 동양쪽 본원인 중국의 회원제 사이트를 찾아내 선구자 역할을 했다. 특이한 점은 본디 섹스산업이란 상업성을 띠기 마련이거늘, stoangel은 그것으로 돈 벌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모아둔 포인트도 날아갔다고 한다. 그의 은퇴시기에 맞춰 김본좌의 본격적 활동이 시작된다.]의 제자이다. 라이벌로는 devine이 있었고 몽키스패너란 노모전문 업로더까지 해서 손발은 완성되었다. 초기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2004년 하반기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업로더 활동을 개시했다. 토토디스크에서 [[2003년]] 11월부터 [[2006년]] 10월 구속될 때까지 거의 3년간 양질의 [[AV(영상물)|AV]]를 매일 수십 편씩 복제해 업로드하였으며, [[일본]] 오픈냅에서 신작 AV가 립되어 공유되면 그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웹하드에 올렸다. 유료 웹하드인지라 이를 통해 돈까지 벌었는데 그 추정액이 약 5천만 원 이상이라고 한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당시 토토디스크는 [[웹하드]] 중에서 복돌 야동이 가장 다양하고 많은 것으로 유명했다. 김본좌 사건 이후 토토디스크가 검열을 강화하면서 왕좌의 자리는 넷폴더로 넘어갔다.] 2005년 10월 세가디스크라는 웹하드에서 이익금을 반반으로 나누는 조건 하에 스카웃받아 토토와 동시로 AV를 올렸지만, 이익금을 제대로 못 받아 2006년 8월 10일에 업로드를 그만두고 2개월 뒤 구속됐다.([[http://m.hankooki.com/m_sp_view.php?WM=sp&FILE_NO=c3AyMDA2MTAxODE1MDI1NjU4NzcwLmh0bQ==&ref=&isNv=|#]]) 구속 이후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에 퍼진 [[AV(영상물)|일본 AV]]들의 70% 이상을 홀로 대량 유통시킨 인물이라고. 김본좌가 유포한 동영상은 [[대한민국 경찰청|경찰청]] 기록상 1만 4천 편에 이른다고 한다. 김본좌의 구속 당시 신문기사에 의하면 김본좌는 '''신작을 빨리 업로드해달라는 다운로더들의 성화 덕분에 하루도 제대로 쉰 날이 없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