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사만 (문단 편집) == 생애 == [[1919년]] [[충청북도]] [[괴산군]] 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재직중 중퇴하고 변호사시험에 응시하여 합격 하였다. 이후 서울, 부산 등지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였고, 서울지법 판사, 부산지법 판사 직무 대리직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청북도 괴산군 선거구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지만 [[자유당]] [[안동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5년]] [[민주당(1955년)|민주당]]이 창당될때 합류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선거 도중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이후 안동준이 공민권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자 치러진 [[1961년 재보궐선거]]에서 괴산군 선거구에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 훗날 15대 대통령에 오르는 [[김대중]]도 해당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단 '''3일'''만에 의원직을 잃었다.[* 실제 재임기간은 약 '''14시간'''.] [[5.16 군사정변]] 이후 [[민주당(1955년)|민주당]]이 해산되자 [[민정당]]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제5대 대통령 선거]] 5일 전인 [[10월 10일]], [[영주시|영주]]에서의 연설에서 '''[[대구광역시|대구]], [[부산]]에는 빨갱이가 많아요. [[김일성]]이가 오면 만세를 부를 거에요.'''라는 발언을 하며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매카시즘 공세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논란이 거세지며 [[민정당]] 측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윤보선]] 후보의 낙선과 동시에 민정당에서 제명당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이후 [[자유민주당(1963년)|자유민주당]]에 입당하여 같은해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괴산군 선거구에 입후보 하였으나 위의 지역감정 조장 발언 후폭풍으로 [[민주공화당]] [[안동준]]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안동준 후보에 밀려 또다시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를 은퇴하고 [[제천시]]에서 변호사를 지냈다. 이후의 행적은 관련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언제 사망했는지 알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