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산 (문단 편집) === 일본 유학 === 김산은 둘째 형이 준 돈으로 [[일본]] 유학을 떠난다. 그곳에서 김산은 친구 한 명과 방을 빌려 매일 아침 신문을 배달하는 일자리를 구하면서 [[도쿄제국대학]]에 응시할 준비를 한다. 김산은 학교가 끝나면 매일 4시에 일을 했고, 일본인들의 집을 방문하여 헌 책을 사기도 했다. 일본에 있는 부유한 한국인 유학생들은 김산과 같은 힘들게 일하는 부류의 유학생들을 '룸펜 프롤레타리아'[* 가난하고 일하며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는 뜻으로 쓰였다.]라고 부르면서 놀렸지만, 김산과 그의 친구들은 오히려 부유한 한국인 유학생들을 '달걀 껍데기'[* 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말랑말랑하다는 뜻으로, 옛 조선 노동자들이 양반계급들을 부르던 말이다.]라고 부르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산은 일본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일제 군경과는 달리 글로벌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놀랐다. 1923년 [[관동 대학살]]을 목격한 김산은 큰 충격을 받는다. 이 때 당시 많은 한국인 유학생들이 일본 대신 중국으로 갔는데, 김산도 이들 중 하나였다.[* 다만 김산은 후술하듯이 이미 1920년부터 중국에서 지낸 기간이 더 많았다. 관동 대학살이 일본 생활을 포기하는 데 있어 결정적 계기가 됐을 뿐.] 김산은 일본 유학을 포기하고 소련으로 가 [[공산주의]] 혁명에 투신하기로 결심하였다.[* 원래 [[무정부주의]]자였지만 이 때는 이미 [[공산주의]]로 전향한 시점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