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상진(1970) (문단 편집) == 여담 == * 선수 시절의 별명은 [[배트맨]]이었다. 금테 안경과 특유의 턱수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 * [[노안]]이다. 선수 시절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20대 중후반에도 금테 안경을 쓰고 수염이 덥수룩했던 선수였던지라 본의 아니게 [[양준혁]], [[이종범]],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 등 비슷한 나이대의 선수들의 얼굴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나이가 들어 보였던 편이었다. 은퇴 후 [[2017년]] 현재도 같은 팀의 감독인 [[김한수]]보다 한 살 많은데 비해 얼굴은 서로 상당히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 KUSF가 공개한 사진에 의하면 세련된 머리 스타일과 패션 센스를 자랑한다. [[http://www.spocho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036| ]] * 김상진이 배팅볼 투수에서 2차 지명을 통해 OB의 정식 선수가 되고 첫 번째 맞이한 1990년 스프링 캠프 때 연습경기에 등판하여 스스로 연마한 [[너클볼]] 까지 구사하며 1이닝을 2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나름 만족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후 그의 공을 받아준 OB 입단 동기지만 나이는 많던 선배 [[포수]]가 김상진에게 '''"넌 직구가 좋은데 왜 자꾸 너클볼을 던지냐? 너 같이 어린 친구가 벌써부터 너클볼 던지면 직구가 죽는다. 네 직구는 지금 힘도 있고 회전도 좋으니 자신있게 던져라. 너클볼은 나이 들고 던져도 되니까"'''라며 충언을 건넸다고 한다. 그 포수는 바로 두산 감독을 지낸 [[김태형(1967)|김태형]] 이었고, 국가대표 까지 지낸 선배 포수의 한마디에 김상진은 자신감을 얻고 대 투수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043718&memberNo=30936369|출처]] * [[OB 베어스]]에서 전성기를 보낼 때는 [[LG 트윈스|LG]]의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양 팀의 에이스 맞대결이 있었을 때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구장]]에서 열리는 경기의 입장권을 구하는 건 엄청나게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전적은 이상훈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1995년에 이상훈이 20승을 기록했을 때 김상진과의 선발 맞대결에서 이상훈이 3경기 모두 이겼다.--비록 개인 대결은 졌지만 팀은 최후에 웃었다-- 이 때 김상진은 이상훈과 경기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에 의욕이 앞서 [[https://youtu.be/azqEqhk_jyI?t=14m43s|경기를 많이 그르쳤다고 한다.]] 추가로 이상훈은 --개인적으로는 많은 방황을 하며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력서'만 놓고 보면 야구 명문 학교인 서울고 - 고려대 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탄탄한 기본기로 승승장구한 선수였지만 자신은 밑바닥에서부터 성장해 올라갔던 터라 서로 운동한 배경이 달랐기 때문에 자격지심을 느껴 이기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고 한다.[[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380&aid=0000001351|#]] 하지만 정작 이상훈과는 맞대결 종료 후 경기장 밖 사석에서 만나기도 하는 등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상훈과는 말년에 같은 팀에서 뛸 뻔했는데 2003년 말 김상진이 SK에서 방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순철]] 감독과 갈등을 겪던 이상훈이 시즌 개막을 앞두고 LG에서 SK로 트레이드되면서 간발의 차이로 엇갈리고 말았다. 본인도 이에 대해 상당히 아쉬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상훈은 트레이드되고 얼마 후 은퇴했다는 것...] * 트레이드 마크인, 금테 안경과 특유의 턱수염을 지니고 있었으면서, 이상훈의 긴 머리가 부러웠는데 경기 후에 둘이 만나려고 하면 이상훈이 머리 손질을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김상진이 항상 기다려야 했다고한다. 잠실 에이스 라이벌로 불렸지만 [[https://youtu.be/azqEqhk_jyI?t=19m30s|서로 친하게 지냈다.]] * 이름이 같은 [[해태 타이거즈|해태]] 투수였던 [[김상진(1977)|김상진]]과도 현역 시절 2번이나 선발 맞대결했던 적이 있으나, 2번 모두 패배하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해태 투수 김상진은 1999년에 위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한국시리즈에서도 김상진은 [[권명철]]과 함께 에이스였다. 그러나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는게 대체적인 평이다. 7차전 선발이었지만, 프로 입단부터 약점인 번트 수비가 발목을 잡았다. 3회초와 5회초에 투수앞 땅볼이후 1루 송구 에러하는 모습을 보이는등 그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결국 그 경기에서 [[김인식]] 감독이 투수를 [[권명철]]로 바꾼 이유도 가끔 나오던 번트 수비 후 악송구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여서 승리투수가 됐다. * 아들 김웅 군이 [[인천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했다.[* 2021년에 드래프트 지명을 받지 못하고 강릉영동대로 진학.] 부친과 같은 우완투수로, 중학야구의 에이스로 꼽힐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2020년 3학년 진학을 앞둔 아들이 자신의 롤 모델로 [[이정후]]를 꼽았다고 한다. “아들한테 이정후를 롤 모델로 꼽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이종범]] 대선배님이란 사실을 극복해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고 말하더라고요.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아들의 말에 저도 한 마디 보탰습니다. ‘야구인 김상진은 크게 두려울 게 없는데 김웅 아버지 김상진은 신경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다’라고요(웃음).” [[http://m.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0&aid=0000001351|#]] *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한 [[정수근]]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LG 레전드들과 OB 레전드들의 매치였다. [[정수근]]은 OB팀 [[선발 투수]]로 김상진을 꼽았는데, [[박명환]]은 내심 서운했던 듯. * 1990년대 초반 김상진이 막 날개를 펴기 시작했을 때 당시 스포츠 신문에서는 심판[* 타자와 포수를 제외하고는 투수들의 구위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들이 꼽은 볼끝 좋은 두 투수가 김상진과 [[정민철]]이라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 특이하게도 현역 시절 거친 팀 순서와 지도자 시절 거친 팀 순서가 거꾸로다. * 아들이 인스타스토리로 연습경기에 [[아리엘 미란다]]가 나오자 기겁한 적이 있다(...). * 아들 김웅 군이 2년후인 2023 드래프트에서도 지명을 받지 못했으며, 인스타 스토리로 통해 수술소식을 알렸다. * 그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OB, LG, SK 등 수도권 구단에 소속된 세월이 말해주듯 서울사투리에 가까운 표준 억양도 잘 구사하는 반면,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마산출신답게 [[동남 방언]]도 꽤나 남아있음을 알 수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