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상진(1977) (문단 편집) === 11번 잔혹사 === 생전의 그를 끔찍이도 아꼈던 진흥고 직속 선배 [[이대진]]은 김상진이 세상을 떠난 후 잊지 않겠다는 뜻에서 한동안 등번호 11번을 달고 경기에 임했지만, 2004 시즌을 끝으로 스스로 번호를 반납해버렸다. 이유인 즉 자신의 성적이 너무 부진해서 하늘에 있는 후배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당시 이대진 역시 어깨 수술을 받고 타자 전향까지 하는 등 부진한 상황이었다. 이대진이 11번을 반납한 이후, 2011년 시즌 [[손영민]]이 11번을 물려받기로 했었는데, [[이범호]]의 FA 영입 보상선수로 [[한화 이글스|친정 팀]]에 돌아간 [[안영명]]의 등번호이던 1번을 달면서 결번으로 남아 있다가 2010년도 신인 [[투수]]인 [[김대웅]]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2011년 시즌 종료 후 김대웅이 방출되며 다시 결번이 되었다가 2012년 부터는 좌완 투수 [[임준섭]]이 달았고, 이후 임준섭이 [[한화 이글스|한화]]로 트레이드 되면서 반대급부로 KIA 유니폼을 입은 [[김광수(1981)|김광수]]가 11번을 달았다. 2016년에는 [[유창식]]이 물려받았지만 [[2016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대형 사고를]]를 쳤다. 유창식은 [[한화 이글스]]에서도 [[구대성|레전드]]의 [[15|번호]]를 달았던 유망주 인 만큼 참 씁쓸한 부분. 뒤이어 진흥고 후배 [[김진우(1983)|김진우]]가 11번을 받았지만 그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하면서 2017년 시즌 후 육성선수 전환과 함께 반납하고 말았다. 이렇듯 한 때 해태의 강타자 [[김성한]]의 등번호이기도 했던 김상진의 생전 등번호 11번은 2018년에는 결번으로 남아 있다가 2019년에 [[박정수(야구선수)|박정수]], 2020년에 [[이민우(야구선수)|이민우]]의 배번으로 정해지는 등 여러 모로 곡절을 겪고 있다. 2020 시즌에는 [[이민우(야구선수)|이민우]]가 이 번호를 달았고 시즌 초엔 호투했으나 이후엔 부진하면서 선발 로테이션에서 아예 빠져버렸고 2022년엔 아예 [[한화 이글스|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됐다. 2022년 시즌에는 김상진 사후 출생한 2000년생 투수인 [[김도현(2000)|김도현]]이 11번을 달고 있다가 군에 입대한 뒤 [[송후섭]]이 번호를 이어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