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석원(기업인) (문단 편집) === 몰락의 화근: [[쌍용자동차]] === 그는 [[자동차 애호가]]로 유명했다. 그는 이미 13세 때부터 불법적으로 운전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 유학 시절 레이싱 스쿨을 수료했고, 스스로 "레이서들과 겨룰 자신이 있다"고 공언하곤 했다. 또 자동차를 직접 분해·조립할 수 있을 만큼 자동차에 미쳐 있었다.[* 김석원 회장 재임기에 쌍용자동차의 디자인 과정에 참여했던 켄 그린리는 무쏘를 소개하는 왓카?(What Car?)지의 지면을 빌어 김석원 회장이 자동차에 미쳐 있었다(a car nut)고 언급하기도 했다.[[https://twitter.com/addict_car/status/1635297069836693506?t=h3eD6ekwNHmOfkNNgydk5A&s=19|#]]] 1986년, 대기업인 현대차, 대우차 등과의 경쟁에서 자금 동원력에서 한계를 느낀 동아자동차의 하동환 회장이 회사를 매물로 내놓자 김석원 회장은 곧바로 동아자동차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당시 자동차 사업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던 삼성도 인수전에 참전했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를 운영할 꿈에 부풀었던 김석원 회장은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배팅했고 1986년 11월 동아자동차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한국경영자총연합회,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부회장을 겸하였다. 김석원 회장은 국내 유일의 [[포르쉐 959]] 오너로 유명했는데,[* 이후 포르쉐 959 오너는 국내에 총 3명이 되었다.] 동아자동차를 인수한 직후 그가 가장 먼저한 일이 연구개발 명목으로 회사 법인 차량으로 [[포르쉐 959]]를 수입한 것이었다. 국내에 단 한 대 뿐인 차로 유명한데, 1986년 12월 인천항에 도착하여 동아차 연구소 직원들이 차를 인수받자마자 인천으로 달려온 그는 차를 타고 곧바로 서울 자택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후 언론에 그는 코란도와 무쏘를 타고 출퇴근하는 회장으로 이미지 메이킹되었지만 실제로 그가 몰았던 차는 포르쉐 959와 메르세데스 벤츠 S600이었다. 이후 체어맨 리무진까지 더해 도합 3대의 차를 굴리게 되었지만 체어맨을 인수한지 2달만에 회사를 팔아야 했다. 김석원 회장은 동아자동차를 인수한 이듬해인 1987년 6월 영국의 스포츠카 회사인 팬더 웨스트윈즈(Panther Westwinds)를 인수했다. 팬더는 이미 70년대말 부도가 났고, 이를 자동차광인 진도모피그룹 회장 김영철이 인수했다가 1987년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이 다시 인수한 것이었다. 1988년 동아자동차를 쌍용자동차로 사명을 변경하고, [[코란도 훼미리]]를 출시했다. 원래 코란도는 동아자동차에서 개발하여 출시를 하려했지만, 당시 5공 정부가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를 내세우며 불허하면서 출시가 보류되었었다. 이때문에 동아 하동환 회장은 회사를 매각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쌍용이 동아차를 인수한 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해제되었고, 이후 코란도를 출시할 수 있게 되었다. 동아자동차는 원래 상용차인 버스와 지프, SUV를 만들던 회사였지만 김석원 회장의 관심은 스포츠카와 럭셔리 고급 세단에 있었다. 팬더 웨스트윈즈에서 개발하였으나 지나친 생산비 때문에 생산을 보류하고 있던 스포츠카 '팬더 칼리스타'를 마침내 1992년 1월 출시했다. 이외에도 동아자동차를 인수하자마자 갑자기 후지중공업, 이스즈, 닛산디젤 등 일본차 제조업체와의 기술 제휴를 끊어버렸고[* 표면적으로는 한국의 반일감정을 들먹이며 일본 기업과 기술제휴 관계를 맺기 싫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고급차에 눈이 멀어있던 상태였기 때문. 당시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중산층을 타겟으로 하는 자동차 생산에 주력했었다. ], 동시에 잘 진행되던 3세대 [[스바루 레오네]] 라이센스 생산 계획을 엎어버리면서 준중형차 시장을 선점할 기회[* 당시에는 준중형차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 중형차에 낮은 배기량의 엔진을 장착하다시피하여 심장병 소리 듣는 비인기 차급이었으나, 1990년부터 고성능을 앞세운 [[현대 엘란트라]], [[대우 에스페로]], [[기아 세피아]]가 차례대로 출격해서 '''셋 다 잘팔렸으니''' 쌍용차 입장에서는 땅을 치고 후회할 일.--레오네 후속이 '''임프레자'''이니만큼 더더욱...--]를 스스로 걷어차는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다만, 그랬다면 일본 기업에 기술이 종속되는 문제가 심했을 것이고 당시 다른 기업들도 독자화를 하거나 기술을 사오는 등의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그 움직임에 편승한 것으로 보인다. 1991년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 기술 제휴를 맺었고, 벤츠와 합작으로 럭셔리 세단 [[쌍용 체어맨]]의 개발에 착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