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석원(기업인) (문단 편집) === 정치 외도와 비리 === 쌍용그룹 창업자이자 4선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 [[김성곤]]이 [[10.2 항명 파동]]으로 불명예스럽게 정계를 은퇴하고 중앙정보부로부터 수모를 당하고 자식들에게 "'''절대 정계에 발 들이지 마라'''"고 유언을 했음에도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을 수 없었는지 1995년 쌍용그룹 회장직을 남동생 김석준에 넘기고[* 아버지 김성곤 때에는 재벌회장과 국회의원을 대놓고 겸할 수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 김석원 대에는 겸직이 불가능해 둘 중 하나를 명목상으로나마 내려놓아야 했다. ]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선거구)|달성군]] [[선거구]]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선친 [[김성곤]]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당시 신한국당이 대구에서 서구 을([[강재섭]])과 함께 당선된 곳이다.] 그러나 1996년 [[대한민국 검찰청]]이 전두환의 은닉재산을 추적하는 도중에 [[쌍용양회]]의 지하창고에서 [[사과박스]] 25개에 담긴 비자금 61억이 발견되면서 엄청난 의혹의 중심에 서게된다.[[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10011|관련기사]] 그러나 정권의 외압에 의해서 이 사건은 의혹만 남기고 수사가 중단되어 버렸다.[* 이때 정권의 외압에도 불구하고 계속 수사를 강행하다가 좌천되자 미련없이 사표를 던지고 검찰을 뛰쳐나간 인물이 바로 [[김용철(1958)|김용철]] 변호사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후 [[삼성그룹]] 법무팀에 스카웃되갔다가 이건희의 숨겨둔 비자금을 폭로하였다.] 그리고 이 와중에 [[1997년 외환 위기]]로 쌍용그룹이 위기를 겪자 2년만인 1998년 [[제15대 국회의원|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김석원의 사퇴로 치러진 [[1998년 재보궐선거]]에서 [[엄삼탁]]을 누르고 당선된 사람이 [[박근혜]]다. 자동차에 미친데다가 이걸로도 모자라 이것도 제대로 수습 못하고 정치판에까지 뛰어들었고, 그러는 사이 쌍용차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쌍용차를 제외한 제지, 시멘트, 건설, 정유 등 기존 계열사들은 흑자였기에 그가 자동차에 미쳐 쌍용차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인수했더라도 고급차, 고가차에만 몰두하지 않았다면 쌍용그룹은 망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1997년 쌍용차의 부채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커졌고 결국 IMF가 터진지 일주일만에 [[대우그룹]]에 쌍용차를 매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쌍용차가 남기고 간 1조 8천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부채를 감당하기 힘들었고 결국 재계 6위였던 [[쌍용그룹]]은 1998년부터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주주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김석원을 회장직에서 해임하면서 2000년에 해체되고 말았다. [[쌍용그룹]] 항목 참조.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한 후 그룹이 해체된 후에는 국회의원 재선은 물론이고 어떠한 정치적 영향력도 못 쓰고 있다. 즉, '''기업과 정치 둘다 잡으려다 둘 다 잃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