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석원 (문단 편집) === 백범과의 일화 === 해방 이후인 1945년 11월 23일 [[김구|백범]]이 귀국하자 그는 일본육사 26기 동기들과 경교장으로 찾아갔다 한다.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에 군정청의 급한 일이 생겨서 집을 막 나서던 백범과 마주쳐서 한 사람씩 자기 소개를 하고 인사를 나누었는데 김석원이 자기를 소개하자 백범이 '''"김석원? 아 그렇지. 내 김 동지 얘기는 많이 들었소. 반갑소. 이제 광복이 되었으니 우리 힘을 합쳐서 한번 잘해봐야지. 하하하."''' 그러면서 손을 굳게 잡고 흔들었다 한다. 회고록에서 김석원은 백범과는 초면이었는데 내 이름을 아는지 고마웠고 그때 같이 갔던 동기들이 매우 의아해 했다고 한다.[* [[지청천]]이 백범 김구에게 이야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이승만보다는 배포가 큰 것 같은 백범에게 심리적으로 더 쏠려있는 형편이었고 백범과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출신인 백범 김구가 일본군 장교 출신을 환대했겠는가 싶겠지만, 광복 후 혼란기에는 어느 정파건 <새 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명분 아래 진영 꾸리기 바빠서 포섭대상의 출신이 친일파건 독립운동가건 크게 안 따졌다. 이는 마찬가지로 국부군/독립군 출신의 김홍일 장군의 시선에서도 드러나기도 하고. 김구도 결국엔 친일파 출신들의 협력을 받기도 했다. 당장 김구가 귀국 후에 지냈던 [[경교장]]부터가 친일파 기업인 [[최창학]]이 헌납한 곳이다. 백범이 이후 남북협상을 위해 북으로 떠나기 전 찾아가서 '''"선생님, 이번 남북협상에는 참석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며 만류했으나, 다행히 아무 일 없었고, 그 뒤 김석원을 불러 얘기하기를, '''"평양의 을밀대에서 그들의 군사훈련하는 광경을 봤는데 문득 김 동지 생각이 생각이 나더군. 내가 군대에 대해 뭘 알아야지. 아마 김 동지하고 같이 가서 봤더라면 우리에게 많은 참고가 되었을거야."'''라고 했다 한다. 자서전 <노병의 한>에서 '''백범이 정권을 잡았더라면 나라 일이 좀 더 잘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고 술회하며 이 박사 집권 후 백범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백범 생전에는 위로를 겸해서 가끔씩 찾아가는 것과 백범 사후 한식과 추석에 성남중고교 학생들을 대동하고 묘소를 청소하고 참배한다는 사실뿐이었다고 회고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