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석원 (문단 편집) == 능력 == 일본군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무조건 공격, 아니면 무조건 사수를 고집했다고 평가하는 오류[* 심지어 전선에서 병사들이 피흘리는 동안 혼자서 후방에서 맥주 마시며 노가리 깠다 카더라는 소설까지 나돌기도 했다.]가 있다. 49년 미 군사고문단 보고서에 의하면, 작전을 짤 때 [[http://panzerbear.blogspot.kr/2008/12/blog-post_29.html?m=1|예비대를 두지 않았고]] 경계순찰도 없으며 제대로 된 저항선조차 구축하지 않아 북한군이 본격적으로 공격하면 사단이 붕괴할 위험이 크다고 강도높게 비판하며 초급장교만도 못한 수준이라고 비판하였다. 이 보고서에는 예비대도 하나도 없고 경계 순찰도 없으며 김석원의 후임으로 온 유승렬, [[백선엽]]은 반대로 예비대를 확보해놨다고 적혀 있다. 물론 이는 김석원과 미군의 사이가 썩 원만하지는 않았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당시는 한국군 사단장이 위관급 미군 고문관을 상석에 모시고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일본군 군사고문을 겪어봐서 미군 군사고문의 지도에 익숙한 [[만주군]] 출신 젊은 장교들과 달리 김석원은 연배와 계급이 높아 미 고문단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저 고문관으로 대했으며, 잘못되었다 싶으면 거리낌없이 불호령을 내리던 사람이라 미군과 사이가 극도로 안 좋았다. 부패나 공금횡령은 명태사건 뒷처리 방식만 봐도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당시 김석원을 싫어했던 고문관 [[제임스 하우스만]]이 김석원에 대한 비방과 중상모략을 주도했는데, 이승만이 김석원 장군을 참모총장에 임명하려는 것도 제임스 하우스만이 강력히 반대했으며, 김석원을 임명한다면 미군사고문단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황해도부터 동해까지 260km가 넘는 거리를 겨우 4개 사단이 담당했고, 이를 보조할 경찰도 많은 숫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김석원의 1사단이 1948년 11월부터 책임진 구역은 황해남도 청단~경기도 고랑포까지, 전체 전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94km에 달했다. 게다가 개성 인근이었기 때문에 송악산 전투 등 더 많은 교전을 치러야 했다. 미군들이 지적한 예비대 배치 미비건은 사실 예비대를 만들 여건이 안 되었던 것이며, 당장 38선의 소규모 교전들에 대응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후임자들이 예비대와 방어선을 갖춘 것도 작전계획을 새로 수립하면서 전시에는 개성을 포기하고 임진강선으로 철수, 사단 방어정면을 1/3로 줄이기로 결정했기에 가능했다.[* 이게 정상적인 부대 배치 상황이다. 이렇게 1사단 배치 상태를 바꾸지 않고 전쟁을 맞았으면, 개성-문산 방어선은 당일에 뚫렸을 확률이 매우 높다.] 김석원의 능력을 낮게 보는 국내 증언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가 몸 담았던 일본군 자체가 [[전간기]]식 군대였던 데다,[* 김석원의 청장년기가 [[러일전쟁]]을 막 마치고 [[1차대전]] 당시 청도에서 독일군과의 전쟁을 치뤘던 시기이긴 하다. 다만 미군과 소련군들이면 모를까 중국과 조선에서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스펙이었다.] 식민지인으로서 대좌까지 진급한 입지전적인 인물인 만큼 소신이 매우 강했고 나이가 많아 [[미군]]이 요구하는 입체적 현대 전술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등 일본군 출신 노장의 단점과 한계가 없진 않았다. 특히 대륙전선 일본군은 연대급 제대별로 각종 기만과 응급대책, 기동을 통해 중국군을 제압 후 지역을 장악하는 식의 전술을 구사하며 심지어 화공과 허허실실과 공성지계 등 현대 군사작전이라기보단 근대 이전 삼국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김석원을 논할 때 꼭 나오는 "중국군을 허세로 물리쳤다"던가, "패잔병들을 수습해 돌아서게 했다"던가, "포항 철수작전에서 빈 트럭을 왕복시켜 적을 기만했다" 같은 이야기가 딱 이 스타일이다. 정일권의 회고록에도 김석원에 대해 일본군 출신의 고루한 전술을 사용한다는 고문관의 의견과 이승만 대통령의 염려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진천 전투]]에서도 사단장 김석원이 전선에 나가 연락이 되지 않아 군단장([[김홍일(군인)|김홍일]] 장군)이 직접 수차례 방문을 해야 했다고 한다. 부하였던 [[문형태]]도 김석원이 구시대적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진천 전투]], [[포항 철수작전]] 등에서 보여지듯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재주가 탁월했고 작전계획도 세심하게 짰다고 한다. 창군기부터 3사단 고문관을 역임한 애미리크 중령이 1951년 김 장군을 찾아와 '''3사단 수석고문관 재직 2년 몇개월간 모신 13명의 사단장 중 김 장군만큼 애국심 강하고 멋있는 작전계획에 따라 훌륭한 지휘 통솔을 하는 사단장도 드물었다'''며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김 장군은 이것으로 미군과의 불화설도 조금은 해명되지 않겠느냐며 회고록에서 자평했다. 실제 그의 포항철수작전은 미군 지휘부의 극찬과 함께 한국군에 대한 신뢰를 얻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진천 전투는 당시 수도 18연대장 장춘권 장군의 증언에 따르면 대규모 부대가 북한군과 제대로 교전하여 승리한 전투인데 김석원 장군의 진두지휘와 적절한 작전으로 이길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군 보고서가 아닌 국내 자료들, 즉 [[채명신]] 장군 회고록 <사선을 넘고 넘어> (p.71-74)와 [[이재전]] 장군의 [[국방일보]] 기고문 등 당시의 여러 초급 장교들의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김석원은 강력한 카리스마와 솔선수범, 과감한 지휘로 지연전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으며 젊은 장병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백선엽]]도 자신의 자서전에서 김석원이 수도사단장으로 복귀했다고 하니 자기 아래에서 그에게로 가는 부하들이 많았다고 적었다. 본인은 전시에 자신이 믿는 상관 밑에서 싸우겠다는데 말릴 수도 없어서 그냥 가게 했다고.[* '군과 나'에서 해당 대목을 보면 연대장 이하의 부하들이 우르르 빠져나간 게 여간 섭섭했었는지 남겠다는 부하에게 너도 따라가지 그랬냐며 삐진 티를 팍팍 낸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4032751#home|#]] 김석원의 명성은 장교만이 아니라 당시 병사들의 참전수기 등에서도 공통으로 증언되는 이야기이다. 일례로 포항여중 전투에 참전한 71명 학도병들은 원래 김석원 휘하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는데, 김석원이 3사단장으로 임명되어 떠나게 되자 그는 '''"학도병들이 무장해제하고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다"'''고 집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하지만 이들 71명은 자신들을 받아준 김석원 밑에서 계속 싸우기 위해 포항까지 찾아갔다. 김석원은 이들을 반기며 후방 사령부가 있는 포항여중으로 보냈다.[* [[포항여중 전투|그러나 이들은 기존 인민군 5사단에 12사단과 766유격부대의 공세로 동해안 전선 40km나 후퇴하고 3사단이 포위섬멸 위기에 처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김석원 장군이 제3사단장으로 전임되자 우리 학도병들은 그분을 따르기로 작정을 하고''' 8월 8일에 포항에 도착했습니다. 포항여중에 있는 3사단 사령부로 찾아갔는데, 거기에는 김대의 대위가 연락장교로 사병 몇 명을 데리고 와있었고, 그밖에 20여명의 군악대원 밖에 없었어요. 이날로 M1을 지급받고 이튿날 대원을 데리고 시내를 구보로 달리다가 안강전방 CP로 가는 김석원 사단장을 만났어요. 반가와하시면서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고 합디다. - 한국전쟁사 CD(2003/육군 본부, 육군교육사령부)에 수록된 학도의용군 중대장 김용섭 학도병의 증언. 요약하자면, 김석원은 작전계획능력은 전간기에 머물렀으나, 작전시행능력은 탁월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계획을 정밀하게 짠다고 해도, 그 계획을 시행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김석원은 6.25전쟁 이전부터 지속된 38선 인근 분쟁으로 소모되고 훈련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병사들의 능력을 120% 이상 끌어내 무훈을 세웠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교리에 머물러있던 일본군의 풍모를 간직한 구시대의 노장이라는 한계도 분명했다. 다행히도 그 구시대적인 교리가 아직 유용하던 시점에 조국에 공헌할 수 있었고 시대와 더 어긋나기 전에 일선에서 물러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