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세진 (문단 편집) === 체육 교사가 꿈이었던 선수가 최대어가 되다 === 자란 곳은 [[충청북도]] [[옥천군|옥천]]으로 어릴때는 완전 약골이라 몸이 약하기로 유명해서, 오죽하면 초등학교 시절 아침 조회 때 운동장에서 쓰러지곤 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부모님의 권유로 체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육상을 방과 후 활동으로 시작하고 이후 높이뛰기를 하다가 소질을 발견한 학교 배구 감독의 권유로 배구 선수로 전향하게 된다. 하지만 유년 시절에 배구계에서 김세진의 이름은 큰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키가 작아 세터에 지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들어서면서 15개월 만에 키가 21cm나 성장해 오늘날 197cm의 장신이 되어 공격수로 전환하게 된다. 이후 월등한 신장을 바탕으로 고교 무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라는 평가는 받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꿈은 선수로 명성을 날리기보다 그냥 대학교에 들어가서 체육학과를 무사히 졸업한 후 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고향에서 체육교사로 일하는 것이었고, [[한양대학교]]로 [[스카우트]]되어 입학했을 적에도 그 생각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한양대학교]] 1학년 때 그를 [[스카우트]]한 [[한양대학교]]의 [[송만덕]] 감독이 [[왼손잡이]]가 될 것을 권유했고, 김세진이 감독의 의견을 따르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재능을 알아본 [[송만덕]] 감독과 이재구 코치[*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한국전력]]에서 [[신춘삼]] 감독 경질 후 [[신영철(배구)|신영철]] 감독이 부임하기 전에 감독대행을 맡았던 그 사람 맞다.]의 혹독한 훈련을 통해 왼손잡이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김세진은 왼손잡이라는 이점에[* 사실 당시 [[한양대학교]]의 시스템을 볼 때, 김세진이 들어갈 자리가 라이트 외엔 딱히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양손을 다 쓸수 있던 김세진을 왼손으로 돌린 것으로 보인다. 김세진이 막 입학자 신분으로 대통령배에 뛰었을 당시에는 레프트는 [[강성형]](89학번, 현대자동차)과 이병희(91학번, 고려증권 → 한국전력), 센터는 장홍석(89학번, LG화재)과 윤종옥(90학번, 대한항공) 등 선배들이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 김세진은 자연적인 왼손잡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특이한 스타일이었다. 국대 후계자였던 [[장병철]]의 스파이크 궤적과 비교해보면 확연해지는데, 왼손잡이 선수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역회전 움직임도 없었고 크로스보다는 직선 공격을 주로하는 어떻게 보면 손만 왼손으로 바꾼 오른손잡이 장신 라이트 공격수의 그것과 유사했다. 그것이 오히려 김세진의 높이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이 때문에 나쁜 토스의 처리는 월드스타 공격수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좋지 않았다. 성인배구 들어와서야 주 손이 아닌 반대 손으로 엄청난 공격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경험부족과 테크닉이 익숙하지 않던 시절에는 나쁜 토스를 처리할때 흔히 말하는 삑사리, [[홈런볼]]이 잦았던 편.] 키 2m의 압도적인 피지컬을 앞세워 대학 2학년부터 국가대표에 발탁되기 시작했고, 배구의 명가 [[한양대학교]]의 자존심을 잇는 선수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1994년 월드리그에서 공격성공률 1위를 기록하면서 [[https://en.wikipedia.org/wiki/1994_FIVB_Volleyball_World_League|공격상]](Best Spiker)을 받은 이후부터 그의 별명은 일약 월드스타가 되었고,[* 1994 월드리그 최우수 공격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당시는 최종 라운드에 오르지 못한 팀의 선수라도 조별 라운드에서 거둔 성적이 말소되지 않고 그 기록 그대로 대회가 끝날 때까지 적용됐다.] 이는 1995년 월드리그에서 [[대한민국]]을 사상 처음으로 6강 결선에 올려 놓음으로써 절정에 달했다. 당연히 [[배구/한국 세미프로|모든 실업 팀들]]이 군침을 흘리던 스타였는데, 애당초 그를 둘러싼 스카우트 전쟁은 이미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G화재]]의 [[https://www.joongang.co.kr/article/3003279#home|승리로 끝나서]], 대학 동기인 [[홍익대학교]] 센터 구준회와 함께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G화재]]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1995년]]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삼성화재]]가 배구 팀을 창단하면서 김세진의 진로는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G화재]]에서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삼성화재]]로 극적으로 변신하게 되었고, 그렇게 김세진은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삼성화재]]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사실 김세진을 삼성화재에서 영입하는 건 타팀들도 이견이 거의 없었지만 [[신진식]] 영입에 대단히 추태를 부리고 말았다. 자세한 건 [[신진식]] 항목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